심양루(潯陽樓)에서 울분을 토해내다 !.
"수호전(水滸傳)"
즉 "수호지(水滸誌)"를 읽어 본 분이라면 "송강(宋江)"을 잘 아실 것이다.
양산박(梁山泊)을 주 무대로
썪어빠진 세상을 향해 저항하는 108명의 호걸(豪傑)들이
이런 저런 사연을 안고 울분을 삼키며 양산박(梁山泊)으로 모여든다.
수호지(水滸誌)는
의리(義理)에 살고 정의(正義)에 목숨 거는 강호(江湖)의 협객(俠客)들이 펼치는
호쾌한 활략과 지략(智略)이 압권이다.
그 108명에 달하는 두령들의 우두머리가 바로 송강(宋江)이다.
송강(宋江)은
키가 작달막 하고 체격도 외소한데다 얼굴은 검고 못 생겼으며
직책(職責)은 산동성(山東省) 운성현(鄆城縣) 관아의 "압사(押司)"였다.
압사(押司)란 직책은
관아(官衙)에서 문서(文書)를 다루는 하급 벼슬아치를 말한다.
자는 "공명(公明)"이며 별호는 "급시우(及時雨)"로 불렸다.
급시우(及時雨)란 "가뭄에 때 맞추어 내리는 비"라는 뜻으로
그가 고을 백성들을 얼마나 세세히 보살폈는지 알 수 있는 별호이다.
수호지(水滸誌)에 보면...
후미진 산길에서 마주쳐 강탈과 그를 해치려던 도적때들도
"내가 산동의 급시우 송공명이요" 하면,
전부 길바닥에 넙죽 업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을 정도로
남녀노소(男女老少) 모두에게서
폭넓은 존경(尊敬)과 칭송(稱頌)을 받았다.
송강(宋江)은 펑소 재산(財産)을 모으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봉급(俸給)은 전부 어려운 사람들을 돕거나
호걸(豪傑)들과 사귀는데 써버려 늘 빈털털이였다.
위에서 언급한 "심양루(潯陽樓)"는
장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 양쯔강(長江) 변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경관(景觀)이 수려한 당(唐)나라 때 지은 누대(樓臺)이다.
옛부터 명사들이 즐겨 찾아 술(酒)과 차(茶)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유흥(遊興)의 장소였다.
하지만 현재는 수호전(水滸傳)에 나오는 송강(宋江)의 활동 무대로 더 유명세를 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수호전(水滸傳)"은 송(宋)나라 즉 북송(北宋)을 배경으로
명(明)나라 때 "시내암(施耐庵)"이 작품을 쓰고,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작자로 널리 알려진
"나관중(羅貫中)"에 의해 보태지고 다듬어진 작품이란 것이 정설(定說)이다.
아무튼 송강(宋江)은 수호지(水滸誌)에서
장삼(張三)이란 자와 간통한 처(妻) 염파석(閻婆惜)과의
불륜(不倫) 관계를 따지며 다투다 실수로 염파석(閻婆惜)을 죽게 한다.
그 죄로 얼굴에 금인(金印)이 찍혀
강주(江州) 즉 오늘날의 구강(九江)으로 유배된다.
그는 유배지 강주(江州)에서
훗날 양산박(梁山泊) 108명에 달하는 두령들 중,
중추적 인물인 "대종(戴宗)"과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를 만난다.
어느날 송강(宋江)은
울적한 기분을 달래려 홀로 심양루(潯陽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자,
썪어빠진 이놈의 세상에서 졸지에 죄인의 몸이 된 자신의 신세가
한스럽고 억울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이에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주체할 길 없어 붓을 들고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누각 벽에 써내려 간다.
이 시(詩)가 지금 소개하는 유명한 "서강월(西江月)"이란 시(詩)이다.
서강월(西江月): 서강에 뜬 달.
自幼曾攻經史(자유회공경사): 어려서 일찍이 경전과 역사서를 읽었으며
長成亦有權謀(장성역유권모): 장성해서는 권모 또한 가지게 되었다.
恰如猛虎卧荒丘(흡여맹호와황구): 마치, 맹호가 거친 언덕에 엎드려
潜伏爪牙忍受(잠복조아인수): 발톱, 이빨 감추며 참고 있는 형세인데.
不幸刺文双頰(불행자문쌍협): 불행히도 두 빰에 금인이 찍혀
那堪配在江州(나강배재강주): 강주에 유배되니 이를 어이 견디랴.
他年若得報冤仇(타년약득보원구): 후일 만약 원수를 갚게 된다면
血染浔陽江口(혈염심양강구): 심양강 어귀를 피로 물들여 놓으리라 !.
송강(宋江)은 벽에 이와같이 자신의 울분을 담은 시(詩)를 써놓고는
술을 연거푸 몇잔 더 들이키고서,
제 흥에 취해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다시 붓을 들어 절구(絶句) 한 수를 덧붙여 놓았다.
바로 세인들의 입에 종종 회자(膾炙)되는 "반시(反詩)"이다.
반시(反詩): 모반(謀反)을 드러낸 시.
心在山東身在吳(심재산동신재오): 마음은 산동(山東)에 있으나 몸은 오(吳) 땅에 있어
飄蓬江海谩嗟吁(표봉강해만차우): 강호를 떠돌며 부질없이 한숨짓네.
他時若遂凌云志(타시약수릉운지): 후일 높은 뚯을 이룰 수 있다면
敢笑黄巢不丈夫(감소황소불장부): 황소(黃巢)도 대장부 아님을 비웃어 주리라 !.
취중(醉中)에 자신의 기개(氣槪)와 포부(抱負)를 밝힌 것인데...
은연 중 반역(反逆)의 의지(意志)가 드러나고 말았다.
즉 "심양강(浔陽記) 어귀를 피로 물들여 놓으리라"와
"황소(黃巢)도 대장부(大丈夫) 아님을 비웃어 주리라" 등의 구절이 특히 그랬다.
본 시(詩)에 나오는 "황소(黃巢)"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에 지난날 황산기행(黃山紀行)을 소개하면서
잠구민택(潛口民宅) 마을에 들러 마을의 역사를 들여다 본 적이 있다.
그때 라씨(羅氏)의 시조(始祖)가
소금장사들이 들고 일어난 "황소의 난(黃巢之亂)"을 피해
휘주(徽州)로 와서 터를 잡은 역사를 소개하며,
최치원(崔致遠)의 행적과 황소의 난(黃巢之亂)을 언급하였기에
여기서 자세한 내용은 생락한다.
아무튼 황소(黃巢)는
반란군(叛亂軍)을 지휘하며 낙양(洛陽)을 단숨에 점령하고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장안(長安)의 황궁(皇宮)으로 거침없이 들이 닥친다.
겁에 질려 도망친 희종황제(僖宗皇帝)의 황좌(皇座)에 앉아 스스로 황제(皇帝)라 칭하며
당(唐)나라를 7년 간 아비규한(阿鼻叫喚)으로 몰아넣었던 인물이다.
송강(宋江)은 그런 황소(黃巢)마저도 대장부(大丈夫)가 아니라고
비웃을 정도로 취흥(醉興)이 거나했다.
이 시(詩)가 우연히 심양루(潯陽樓)에 들른
간교한 "황문병(黃文炳)"이란 자의 눈에 띄게 되고,
그의 고발로 관아(官衙)에 잡혀가 집요한 추궁을 당한 송강(宋江)과 대종(戴宗)은
반역죄(叛逆罪)로 몰려 형장(刑場)에 선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기의 순간,
이규(李逵)를 포함한 산채(山寨)의 두령들이 관아를 덮쳐 구해낸다.
그후 송강(宋江)은 양산박(梁山泊)으로 들어가 협객(俠客)들의 두령(頭領)이 된다.
그 뒤로도 수호전(水滸傳)의 내용은
흥미진진(興味津津)하게 이어지는데...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기엔 의미가 없는지라 이쯤에서 생략하고자 한다.
이와같은 내용이
소설(小說) 속의 장면들과 그 속에 그려진 시(詩)이지만,
수호지(水滸誌)에 애정이 깊은 독자들은
미치 역사 속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수호전(水滸傳)은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오승은(吳承恩)의 "서유기(西遊記)",
난릉 소소생(蘭陵 笑笑生)의 "금병매(金甁梅)"와 더불어
4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로 손 꼽으며,
중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불후의 명작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는 본의 아니게 너무도 황당하고 큰 올가미에 걸려들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지내기도 하고,
억울함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등졌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우리가 늘 부르짖는 정의롭고 투명한 사회는
그토록 어렵고도 이루기 힘든 세상이라는 증거 일 께다.
그래도 세상살이가 조금씩 조금씩 좋아진다고 믿고 있기에...
희망(希望)의 씩은 죽지 않고 움트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랜만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자니...
갑자기 수호전(水滸傳)의 주인공인 송강(宋江)이 토해내던 울분이 생각 나
이밤 이렇게 더듬어 보았다.
남녁에는 매화(梅花)가 피었다고 한다.
훈훈한 봄바람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빠르게 북진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핵 담판에서 실패하고 빈손으로 열차를 타고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북한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한반도에도 기나긴 냉전이 어서 끝나고 훈훈한 봄이 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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