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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 명시 감상

채두봉(釵頭鳳)... 육유(陸游)와 당완(唐琬)의 안타까운 사랑

육유(陸游)와 당완(唐琬)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


육유(陸游)는 중국 남송(南宋)의 유명한 시인(詩人)입니다.
자(字)는 무관(務觀)으로 쓰고
호(號)는 방옹(放翁)이며,
고향은
오늘날의 저장성(浙江省) 샤오싱(紹興)으로
당시는 월주(越州) 산음현(山陰縣)이라 불렸던 곳입니다.

 

샤오싱(紹興) 즉 소홍에는

남송시대(南宋時代)에 처음 건립되었다는 선위안(沈園)
"심원(沈園)"이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정원(庭園)이 있습니다.
처음 정원이 만들어질 때의 이름은 심씨원(沈氏園)으로,
정원을 만든 심씨(沈氏)
이 지역에서 이름께나 높은 대단한 부자였다고 합니다.

 

중국 최고의 역사서인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는,
중국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즐겨 읽는 역사서로
그중 열전(列傳)은 재미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단연 최고의 인기편입니다.
열전 중에서도 중국인들은 "화식열전(貨殖列傳)"을 특히 좋아하는데,
이런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무릇 사람들은 자기보다 10배 부자(富者)에게는
"헐뜯고 욕을 하고",
100배 부자에게는 "두려워 하며",
1,000배 부자에게는 "그의 밑에서 그를 위해 일하고 싶고."
또한 만배 부자에게는
"그 사람의 노예가 되고싶어 한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저장성(浙江省) 샤오싱(紹興)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심원(沈園)"

왕휘지(王羲之)의 천하명필(天下名筆) 난정서(蘭亭序)로 유명한 "난정(蘭亭)",

그리고 중국 근대문학(近代文學) 선구자(先驅者)로 추앙받는

"노신의 옛집(魯迅故里)" 등...
명소들을 둘러보고 온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심원(沈園)"에 얽힌 애틋한 사연 한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심원(沈園)에는 위에서 언급한 인물
"육유(陸游)"를 기리는 기념관(記念館)이 있습니다.
시인(詩人)이며 관리였던 육유(陸游)의 인생과,
당시 안타까운 사랑으로
세간(世間)에 잔잔한 화제를 뿌렸던,
"당완(唐琬)"과의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남송(南宋)의 대표적 시인 "육유(陸游)"
이종사촌 누이
"당완(唐琬)"이란 예쁜 여인과 결혼을 했는데,
부부간에 금슬(琴瑟)도 매우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슬하(膝下)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못 낳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여긴
시어머니의 구박이 계속되던 어느날,

 

육유(陸游) 모친의 생일이 돌아와 많은 손님들을 초대했는데,
시어머니는 며느리 당완(唐琬)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합니다.

 

"달걀이면서도 달걀이 아니고,
가루음식이면서도 가루음식이 아니며,
노르스름하게 튀긴 것인데
입에 넣으면 말랑말랑하고
겉보기에는 소금을 넣은 것인데
정작 먹으면 달며,
국자와 그릇에 달라붙지 않아야 하고
씹지 않고 넘길 수 있는 음식을 어서 만들어 오너라."

 

시어머니의 이와 같은 명은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애를 못 낳는 며느리를 욕보여
쫓아내려는 구실을 만들겠다는 속셈이었습니다.

 

당완(唐琬)은

시어머니의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부엌에 들어가더니...
달걀을 깨서 노른자만 취한 후 따로 두고.
전분과 물을 섞어 휘저은 후에,
체로 받아낸 후 솥에 돼지기름을 두르고
다시 불로 달군 후,
노른자를 쏟아붓고 휘젓자,
마치, 죽처럼 되었습니다.
여기에 돼지기름을 섞으며 저어 완성시킵니다.
그런 후 소금을 살짝 뿌려서
손님상에 올려 놓았습니다.

 

손님들이 이 음식을 먹어보니...
시어머니가 요구한 조건에도 잘 맞고 맛도 훌륭했습니다.

 

더군다나 이빨이나 국자와 그릇에도
달라붙지 않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손님들은 이 음식의 이름을 즉석에서

"삼부점(三不粘)"이라 짓고서,
당완(唐琬)의 요리솜씨와 현명함을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칭찬을 합니다.
삼부점(三不粘)은 훗날
청(淸)나라 황실(皇室) 요리로도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들들 볶으며 미워했고,
결국에는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핑계로 쫓아냅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가 원치않는 강제 이혼(離婚)을 합니다.
서로간에 정이 두텁던 두 사람은
한동안은 몰래 만나는 식으로 인연(因緣)을 이어갔으나...
그 마저도 얼마 못 가 들통나고
둘은 안타까운 사랑을 가슴에 묻고 이별을 합니다.

 

그후 육유(陸游)는 왕씨(王氏) 성의 여자와
어머니의 강압으로 재혼해야 했고,
당완(唐琬)도
"조사정(趙士程)"이란 문인(文人)과 재혼(再婚)을 합니다.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8년이 지난 서기 1155년 어느날,
육유(陸游)는 친구들과 함께 소흥(紹興)의
아름다운 정원인 심원(沈園)으로 산책을 나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당완(唐琬)도 재혼한 남편 조사정(趙士程)과 함께

심원(沈園)으로 나들이를 오게 됩니다.

 

당완(唐琬)은

육유(陸游)와 마주치자 흠칫 놀랍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 조사정(趙士程)이
"저 남자가 누구냐"고 부인에게 묻습니다.

 

당완(唐琬)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전 남편"이라고 이야기하자,
조사정(趙士程)은 껄껄 웃더니

술과 안주를 육유(陸游)와 함께 온 일행에게 보내고
육유(陸游)를
정자(亭子)로 정중히 초대해 술잔을 나누며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러나, 이 멋스러운 상황은...
가슴에 깊이 묻어 두었던
두 사람의 애틋하고 아픈 과거사(過去事)를

다시 떠올리게 하고 말았으니...

 

조사정(趙士程) 일행이 술자리를 끝내고 일어선 후,
육유(陸游)는 가슴속에서
울렁이는 애틋한 심정을 주체할 길이 없어...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한 편의 사(詞)를
심원(沈園)의 벽에다 붓으로 써넣습니다.

 

채두봉(釵頭鳳)

 

紅酥手黃藤酒(홍수수황등주): 그대 부드러운 손으로 황등주를 따라주었지.
滿城春色宮牆柳(만성춘색궁장류): 성안에는 봄빛 가득하고, 버드나무 너울거릴제,
東風惡歡情薄(동풍악환정박): 사나운 동풍은 우리의 사랑을 날려버렸네.
一懷愁緒幾年離索(일회수서기년리색): 쓰라린 가슴 안고 몇년을 찾아 헤매였던가~!.
錯 錯 錯(착 착 착): 착찹하고 착잡하고 착잡하구나.

 

春如舊人空瘦(춘여구인공수): 봄은 예전과 다름없건만 사람만 부질없이 야위어 갔네~!.
淚痕紅浥鮫綃透(누흔홍읍교초투): 연지 묻은 손수건은 눈물에 흠뻑 젖고
桃花落閑池閣(도화락한지각): 복사꽃 떨어져 누대마져 쓸쓸하구나.
山盟雖在錦書難託(산맹수재금서난탁): 우리 사랑의 맹세 변함없건만, 이 마음 담은 편지 전할 길 없어라.
莫 莫 莫(막 막 막): 안돼, 안돼, 안돼~!.

 

이 시(詩)를 본 당완(唐琬)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채두봉에 붙여”란 시(詩)를 밑에다 써넣고 떠납니다.

 

채두봉(釵頭鳳)에 붙여

 

世情薄人情惡(세정박인정악): 세상도 야박하고 인심도 사나워서
雨送黃昏花易落(우송황혼화이락): 해질녁에 비마져 뿌려 꽃잎 쉬이 떨어졌네.
曉風乾淚痕殘(효풍건누흔잔): 밤새 흘린 눈물의 흔적은 새벽 바람에 말라버리고
欲箋心事獨語斜蘭(욕전심사독어사란): 이 마음 글로 쓰고 싶건만, 난간에 기대어 혼잣말 하네.
難 難 難(난 난 난): 어려워 어려워 어려워라.

 

人成各今非昨(인성각금비작): 그대와 나 제각기 가정 이루어 지금은 옛날과 다르네,
病魂曾似秋千索(병혼증사추천삭): 오랫동안 마음은 병들어 날이 갈수록 쓸쓸하기만 하고,
角聲寒夜蘭珊(각성한야란산): 피리소리 차갑게 들리는 밤중에 난간에 비틀거리며 서있네.
怕人尋問咽淚妝歡(파인심문인루장환): 님이 그 사연 물어볼까 두려워 눈물 삼키며 웃음짓네.
瞞 瞞 瞞(만 만 만): 아냐, 아냐, 아니야.

 

채두봉(釵頭鳳)은 육유(陸游)와 당완(唐琬)이
사랑의 증표로 주고 받았던 "비녀"인 듯 합니다.

 

이후 당완(唐琬)은 이때 일이 마음의 병이 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납니다.

 

5년의 세월이 흐른 뒤
서기 1160년 송(宋)나라와 금(金)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육유(陸游)는 전쟁에 참전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서쪽 한중(漢中)에 머무르며
북벌(北伐)을 계획하며 변방을 사수합니다.

 

그후 60세가 넘은 육유(陸游)는,
관직(官職)을 내려놓고 고향 소흥(紹興)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당완(唐琬)을 만났던

심원(沈園)을 찾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었습니다,
지난날 벽에 써넣은 빛바랜, 자신과 님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며
쓰라린 사랑에 젖곤 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심원(沈園)을 찾은 해가 서기로 1199년인데,
이미 75세의 백발 늙은이가 된 육유(陸游)는
이젠 희미해진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또 한편의 시(詩)를 지어 벽에 써놓으니...
제목은 “심원(沈園)”이라고 합니다.

 

심원(沈園)

 

城上斜陽畵角哀(성상서양화각애): 석양빛 성 위에 화각소리 구슬프고,
沈園非復舊池臺(심원비복구지대): 심원은 이제 그 옛날의 누대가 아니로구나~!.
傷心橋下春波綠(상심교하춘파록): 다리 밑 푸른 물결에 가슴은 아파오고
曾是驚鴻照影來(증시경홍조영래): 기러기처럼 맵시 있던 그대 모습 물 위에 어른거리네.

 

夢斷香消四十年(몽단향소사십년): 꿈 깨어지고 향기 사라진지 어언 사십 년.
沈園柳老不吹綿(침원유로불취면): 심원의 버들도 늙어 버들솜도 이젠 날리지 않네.
此身行作稽山土(차신행작계산토): 이 몸도 장차 회계산의 한 줌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猶弔遺蹤一泫然(유조유종일현연): 남은 그대의 자취 더듬으니 한 줄기 눈물만 흐르는구나.

 

육유(陸游)는 10년 후인 서기 1210년
당시로서는 신선(神仙)이라 불리는

팔순 중반인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한시도 당완(唐琬)을 잊지 않았다고 그가 남긴 시(詩)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심원(沈園)의 육유(陸游) 동상 뒤쪽에 보면,
중국 100대 명필(名筆)에 속한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육유(陸游)를 기리는 초서(草書)로 쓴 달필 글씨가

빛바랜 비석에 세겨져 있습니다.

 

저장성(浙江省) 샤오싱(紹興)을 여행할 기회가 있거든,

유서깊은 정원(庭園) 심원(沈園)에 들러

육유(陸游)당완(唐琬)의 안타까운 사랑에 잠시

젖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