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高適)은
한때 계주(薊州) 일대에서 군려(軍旅) 생활을 한 경험이 있기에
군중(軍中)의 정황들에 대해 비교적 익숙하다.
이 시(詩)는 변새(邊塞) 지방에 원정을 가서
싸움에 임하는 병사들의 괴로움과 고통에 대해 읊은 시(詩)이기도 하며,
그 이면에는 사졸(士卒)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군영(軍營)에서
쾌락을 일삼았던 일부 장수(將帥)의 이중적 행태를 풍자(諷刺)한 시(詩)이다.
본 시(詩)는 고적(高適)의 시심(詩心)이 잘 드러난 명작이며,
변새시(邊塞詩)의 으뜸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시(詩) 전체는 네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 단락은 변경의 급보를 듣고
장군과 사졸들이 명을 받아 출정하는 모습의
위무당당함과 사기가 충만한 상황을 묘사하였다.
둘째 단락은 변방의 책임을 맡고 있던 장군이 적을 가벼이 여겨
병사들의 고충은 안중에도 없이
군영에서 가녀(歌女)와 쾌락에만 빠져 있는 모습을 그려냈다.
셋째 단락은 원정 간 남편을 그리워 하는
고향에 남은 아내의 애타는 심정과
살아 돌아갈 희망도 없는 남편의 원정 생활을 병치하여 묘사하고 있다.
넷째 단락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전사들의 영웅적 기개를 드러내고 있으나,
이와 더불어 충성이란 명분에 가리워진
암울하고 비극적인 전장의 상황이 짙게 흐른다.
이 와중에 병사들의 바램은 변방(邊方)의 부패한 장수가 이닌,
이광(李廣)과 같은 명장(名將)이 다시 나와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끝을 맺었다.
燕歌行(연가행): 제비에 날려보내는 노래
漢家煙塵在東北(한가연진재동북): 한나라의 동북지방에서 전쟁이 일어나
漢將辭家破殘賊(한장사가파잔적): 한나라 장군은 집 떠나 잔악한 적을 물리쳤네.
男兒本自重橫行(남아본자중횡행): 남자는 본래 전장에서 종횡무진하는 것을 중시함이니
天子非常賜顔色(천자비상사안색): 천자가 특별히 총애함에 있어서랴.
搶金伐鼓下愉關(창금벌고하유관): 징을 치고 북 두드려 산해관으로 내려가니
旌旆逶迤碣石間(정패위이갈석간): 깃발들은 갈석산 사이로 연이어져 있구나.
校尉羽書飛瀚海(교위우서비한해): 교위(校尉)의 우서(羽書)는 사막을 날듯이 건너오고
單于獵火照狼山(선우렵화조랑산): 선우(單于)의 사냥하는 불빛은 낭산을 비추네.
山川蕭條極邊土(산천소조극변토): 산천은 황량하여 변방 끝에 달했고
胡騎憑陵雜風雨(호기빙릉잡풍우): 오랑캐의 기병들은 비바람 몰아치듯 달려든다.
戰士軍前半死生(전사군전반사생): 병사들은 군진 앞에서 태반이 죽어가는데
美人帳下猶歌舞(미인장하유가무): 미인들은 장막 안에서 여전히 춤추며 노래하네.
大漠窮秋塞草腓(대막궁추새초비): 큰 사막엔 가을이 깊어 변새의 풀들이 시들어 가고
孤城落日鬪兵稀(고성락일투병희): 외로운 성엔 해 지는데 싸우는 병사는 드물구나.
身當恩遇恆輕敵(신당은우긍경적): 몸은 나라의 은혜 입어 항상 적을 경시하지만
力盡關山未解圍(역진관산미해위): 병사는 온 힘 다해 관산에서 싸워도 포위를 뚫지 못하네.
鐵衣遠戍辛勤久(철의원수신근구): 철갑옷 입고 먼 국경을 지키자니 고통과 수고 오래이고
玉筯應啼別離後(옥저응제별리후): 아내는 옥 같은 두 줄기 눈물을 작별 후 흘렸겠지.
少婦城南欲斷腸(소부성남욕단장): 어린 아내는 성남(城南)에서 애간장 끊어지는데
征人薊北空回首(정인계북공회수): 원정 간 남편은 계북(薊北)에서 허망히 고개만 돌려보네.
邊庭飄颻那可度(변정표요나가도): 변방은 아득하니 어찌 건널 수 있으랴
絕域蒼茫更何有(절역창망갱하유): 넓고 먼 외딴 땅에 무엇이 있으리오.
殺氣三時作陣雲(살기삼사작진운): 살기(殺氣)는 하루 종일 서려, 전운(戰雲)을 만들어 내고
寒聲一夜傳刁斗(한성일야전조두): 밤새도록 차가운 조두(刁斗) 소리 전해오네.
相看白刃血紛紛(상간백인혈분분): 바라보니 흰 칼날엔 혈흔이 군데군데 묻었고
死節從來豈顧勳(사절종래기고훈): 예로부터 절개에 죽었지 어찌 공훈을 바랬을까.
君不見沙場征戰苦(군불견사장정전고):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사막에서 싸움하는 고통을
至今猶憶李將軍(지금유억리장군): 지금도 여전히 이(李)장군을 그리워하고 있다네.
주해(註解)...
한나라 동북 지방 변방에서 전쟁이 일어나니,
한나라의 장군은 집을 떠나 잔악한 적을 물리쳤다.
남자는 본래 전쟁터에서 종횡무진하며 적을 토벌하는 것을 중시하니,
하물며 천자가 특별히 그를 독려하는 상황임에랴.
전쟁에서 쓰는 징과 북을 치며 산해관에 도달하니,
깃발은 갈석산 사이에 죽 이어져 있다.
교위(校尉)의 긴급함을 알리는 문서가 사막을 날듯이 건너오고
흉노 부족의 선우(單于) 즉 왕이 사냥하는 불빛이 낭산을 비춘다.
변방의 끝,
황량한 산천이라 오랑캐 기병들이 침범하는 기세는 비바람 몰아치듯 한다.
전사(戰士)들의 태반이 군진(軍陣) 앞에서 죽어가는데
장수(將帥)은 오히려 미희(美姬)를 껴안고
장막(帳幕) 안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있다.
저 아득하고 넓은 사막에서 가을은 깊어 끝 무렵이고
변새(邊塞)의 풀들은 시들해졌다.
외로운 성에 해가 지니 그 분위기는 매우 처량하다.
전투하던 무사들의 수는 날이 가면 갈수록 적어진다.
하지만 장군들은 특별히 황제의 은총을 입은 자이기에 적군들을 늘 가볍게 본다.
병사들은 목숨을 다해 관산(關山)에서 치열하게 싸우지만
결국 포위망을 뚫지 못했다.
갑옷을 입고 멀리 변새에서 숱한 고생한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규중의 아내는 남편과 작별 후에 응당 눈물을 떨구며 그리워할 것이다.
어린 아내는 성남(城南)에서 애간장이 끊어지고,
원정 나간 남편은
계북(薊北)에서 공연히 고개 돌려 고향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이곳 변새 지방에서
바람처럼 날아 고향으로 건너갈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방법이 없다네.
세상과 떨어진 험준한 이 지역은 넓고도 멀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살기(殺氣)는 종일토록 전운을 만들어내고,
밤중 내내 차가운 조두(刁斗)소리 들려온다.
흰 칼날을 보니 혈흔이 여기저기 묻었는데,
예로부터 전사(戰士)는 절개에 죽을지언정 어찌 공훈을 얻기 바랐겠는가.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사막에서 정벌하는 저들의 괴로움을~!.
지금도 병사들은
여전히 용맹스럽고 인자했던 이광(李廣)장군을 그리워하고 있다네.
자구풀이
漢家(한가): 한대(漢代)이지만,
당대(唐代) 작가들은 왕왕 한(漢)을 빌어 당(唐)의 칭호로 쓰기도 한다.
이것은 백거이(白居易)의 시(詩)
장한가(長恨歌)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자신의 조국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는 어려웠던 까닭이다.
煙塵(연진): 봉화의 연기와 흙먼지로서, 전란을 비유한다.
개원(開元) 18년(730) 이후
수년간 당(唐)과 동북(東北)의 거란(契丹), 해(奚)와의 전쟁이 해마다 끊이지 않았므로
연진재동북(煙塵在東北)이라 표현한 것이다.
橫行(횡행): 막힘없이 적진 속을 내달린다는 뜻이다.
이는 사기(史記) 계포전(季布傳)에 번쾌(樊噲)가,
願得十萬衆橫行匈奴中(원득십만중힁행흉노중): “원컨대 십만의 무리를 얻어,
흉노의 가운데에서 마음껏 내달리고 싶다." 라고 말한데서 유래한다.
賜顔色(사안색): 총애하다.
摐金伐鼓(창금벌고): 창(摐)은 악기 따위를 친다.
금(金)은 징(鉦)으로서, 군중의 악기이다.
伐鼓(벌고)는 격고(擊鼓)와 같은 뜻으로, 북을 치다.
옛날에 군대가 행진할 때 징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지휘를 하였다.
楡關(유관): 유관(楡關)은 곧 산해관(山海關)이다.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진황도시(秦皇島市) 동북쪽에 위치한 곳으로서,
당시에는 동북의 군사 요충지였다.
碣石(갈석): 산 이름으로,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창려현(昌黎縣)
북쪽에 위치해 있다.
校尉(교위): 한대(漢代) 무관(武官)의 명칭이다. 무장(武將)을 통칭하기도 한다.
羽書(우서): 옛날 중국(中國)에서 급(急)한 소식(消息)을 전(傳)하는 때에
깃털을 꽂아서 보냈던 것에서 유래,
군사(軍事)상 급(急)하게 전(傳)하는 격문(檄文).
瀚海(한해): 지금의 내몽고 자치구 동북부의 큰사막 즉 고비사막이다.
당대(唐代)에는 해인(奚人)에 의해 점령당한 곳이었다.
해인(奚人): 6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반까지
중국 동부 몽골과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았던 종족(種族).
單于(선우): 고대 흉노 부족 왕(王)의 칭호이다.
獵火(엽화): 사냥할 때 밝히는 불이다. 고대 유목민족들은
출정하기 전에 대규모의 수렵(狩獵)을 행하여 군사훈련을 하였는데,
엽화(獵火)란 이를 지칭하는 것이다.
狼山(낭산): 낭거서산(狼居胥山)으로,
지금의 내몽고 자치구 극십극등기(克什克騰旗) 서북쪽에 있다.
憑陵(빙릉): 세력을 믿고 침범한다는 뜻이다.
美人(미인): 여기서는 변장(邊將) 군영(軍營)의 가녀(歌女)를 카리킨다.
窮秋(궁추): 깊은 가을을 의미한다.
腓(비): 본래는 "아프다" 혹은 "병들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풀이 마르고 시들었다는 고위(枯萎)의 의미이다.
쇠(衰)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玉筯(옥저): 본래는 옥으로 만든 젓가락이다.
고대에는 옥저(玉筯)로써 아녀자가 흘리는 눈물을 비유하곤 하였다.
여기서는 전사(戰士)의 처자가 흘리는 눈물을 비유한 것이다.
薊北(계북): 계주(薊州) 이북(以北) 지방으로,
당대(唐代)에는 계주주치(薊州州治)가 지금의 하북성 계현(薊縣)에 있었다.
邊庭飄颻那可度(변정표요나가도): 이 구절은
"변방에 부는 바람을 타고 어떻게 하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또는 "변방은 넓고 멀어 어찌 측량할 수 있으랴"로 풀이하기도 한다.
更何有(갱하유): 무소유(無所有)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陣雲(진운): 전운(戰雲)과 같은 말이다.
살기등등함이 마치 구름처럼 진(陣)을 이룬다는 뜻이다.
刁斗(조두): 군중(軍中)에서 쓰는 동(銅)으로 만든 그릇으로,
낮에는 취사도구로 쓰다가 밤에는 그것을 두드려서 시간을 알리는 용도로 썼다.
李將軍(이장군): 한대(漢代)의 명장 "이광(李廣)"을 지칭한다.
사기(史記) 이광군열전(李將軍列傳)에 의하면,
그는 무제(武帝) 때 우북평태수(右北平太守)가 되어 흉노를 막아내었는데
용감하게 전쟁에 임했을 뿐만 아니라,
병사들을 매우 아껴 고락(苦樂)을 함께 나누었던 인물이었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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