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문(宋之問) 656~712
당(唐)나라 때 시인(詩人)이며 자(字)를 연청(延淸)으로 쓴다.
산시성(山西省) 분양(汾陽)이 그의 고향(故鄕)이며
서기 675년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20세의 어린 나이임에도 호남형의 미끈한 얼굴 덕에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눈에 들어
습예관(習藝館)의 상문감승(尙文監丞)으로 스카웃 된 것이
벼슬길의 첫걸음이 될 정도로
일반 관리들 보다 월등히 앞서 나갔다.
그 후 측천무후(測天武后)의 영신(佞臣) 즉 정인(情人)으로
정사(政事)를 농단(壟斷)하던 장역지(張易之)에게 아첨하여
권세(權勢)를 누리자,
참다 못한 원로대신(元老大臣)들의 간언(諫言)으로
지방관(地方官)으로 쫓겨났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황궁(皇宮)으로 불려졌다.
그는 또다시 측천무후(測天武后)의 총애(寵愛)를 받는 실권자(實權者) 중 한 명인
무삼사(武三思)에게 아첨하여
정계의 요직(要職)을 차지하며 재물(財物)을 모으는 등,
주변의 원성(怨聲)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후 정변의 후유증으로 무후(武后)가 죽고,
뒤이어 즉위한 중종(中宗)은 그의 재주(才操)를 아껴
수문관(修文館)의 직학사(直學士)로 기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군신(君臣)의 신분(身分)을 망각한 체 문학적(文學的)인 벗들과 어울려
자주 주연(酒宴)에 빠졌었다고 한다.
그후 중종(中宗)마저 죽고 예종(睿宗)이 즉위했다.
예종(睿宗)은 송지문(宋之問)에 대한
대신(大臣)들의 상소(上疏)가 빗발치자,
"영신(佞臣)을 추종하고 정사(政事)를 어지렵혔다"는 죄를 물어
송지문(宋之問)을 광동성(廣東省) 치현(欽縣)으로 유배(流配)를 보냈고
얼마 후 사약(賜藥)을 내려 목숨까지 거두었다.
송지문(宋之問)은 시문학적(詩文學的) 측면에서 보면
업적(業績)도 적지 않다.
언시체(律詩體)를 다듬고 정착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여
당대(當代)의 시인(詩人) 심전기(沈佺期), 두심언(杜審言) 등과 더불어
초당(初唐) 후반의 문단(文壇)에서 율시(律詩)를 정착시키는데 공이 컸다.
그의 문집(文集)으로 "송지문집(宋之問集)"이 전해온다.
題大庾嶺北驛(제대유령북역): 대유령 북역
陽月南飛雁(양월남비안): 시월이면 남녘으로 가는 기러기
傳聞至此回(전문지차회): 듣자하니 이곳까지 왔다가 되돌아간다 하네.
我行殊未已(아행수미이): 나의 나그넷길은 끝이 없으니
何日復歸來(하일부귀래): 고향에 돌아갈 날 언제련가...
江靜潮初落(강정조초락): 썰물진 조수(潮水)는 소리없이 흐르고
林昏瘴不開(임혼장불개): 독기 어린 숲은 어두컴컴한데,
明朝望鄕處(명조망향처): 내일 아침 고향 쪽 바라 볼 때에도
應見隴頭梅(응견롱두매): 언덕에는 매화꽃 활짝 피어 있으리...
중국(中國) 대륙(大陸)의 남쪽 땅인
광동성(廣東省)으로 유배(流配)를 떠나
광동성(廣東省)을 병풍처럼 둘러친 높다란 대유령(大庾嶺)을 넘어간다.
어쩌면 두번 다시 고향에 못 올지도 모르는
유배객(流配客)의 심정은 어떠할까~?.
두고 온 처자(妻子)와 늙은 부모(父母)
그리고 사랑하는 벗들...
송지문(宋之問)이 유배길에 오른 때는
한창 매화(梅花)가 꽃을 피우는 이른 봄이었다.
대유령(大庾嶺) 산맥(山脈)을 넘어가는 고갯길에는
때마침 매화꽃으로 유명한
매령관(梅嶺關)을 지나서 가게 되는데...
그는 매령관(梅嶺關)에 흐드러진 매화꽃 앞에서
권력(權力)의 무상함과 덧없음에 통한(痛恨)의 눈물을 쏟으며
이 시(詩)를 지었다고 전한다.
결국 그토록 그리던 고향엔 돌아가지 못 하고
시(詩) 몇 편만 남긴 체 57세의 나이로 사약(死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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