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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 명시 감상

서시(西施)... 나은(羅隱)

나은(羅隱) 833~910

중국(中國) 당(唐)나라 말기(末期) 시인(詩人)이다.
자(字)는 소간(昭諫)으로 여항(馀杭) 또는 신증(新登)사람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횡(橫)이다.
20살부터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했으나 열 번이나 낙방하였다,


이름이 나빠 낙방했다고 생각한 그는

이름을 "횡(橫)"에서 "은(隱)"으로 고친 뒤

스스로 호를 강동생(江東生)이라 하였다.


그의 성품(性品)에 대해서는 좋은 평(評)보다

"순박하게 생겼지만 천박했다(貌古而陋)".
"촌스러운 말씨가 어그러졌다(鄕音乖刺)".
"재주를 믿고 사람들을 깔보았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를 꺼리고 싫어했다(恃才忽睨. 衆頗憎忌)"는 등...

좋지 않은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안하무인적(眼下無人的) 성격(性格)으로

당시 관료들로부터 미움을 받다보니

실력(實力)은 출중했으나 관직(官職)을 얻기가 어려웠다.

 

서기 870년에 호남(湖南)과 회주(淮州), 윤주(潤州) 등지를 돌아다니며

관직(官職)을 얻어보려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17년 뒤인 서기 887년에 강동(江東)으로 돌아온 그는
곤궁(困窮)하고 빈한(貧寒)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55세가 돼서야 당시 절도사(節度使)로 있던 전류(錢鏐)의 막료(幕僚)로

관직(官職)에 입문한다.


그후 전당령(錢塘令), 진해군장서기(鎭海軍掌書記), 절도판관(節度判官)을 거처
염철발운부사(鹽鐵發運副使), 저작좌랑(著作佐郎)과 사훈랑(司勳郎)을 역임했다.
관직(官職)을 얻은 뒤에도

오만방자한 성격은 끝내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나은(羅隱)은 그 뒤로 후양(後梁)의 태조(太祖)
주전충(朱全忠)의 막하(幕下)에서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발탁되었지만

이를 거절할 정도로 자존심(自尊心)도 엄청 셌다.
그는 매우 장수(長壽)한 향년(享年)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나은(羅隱)은 당시 당(唐)나라에 유학(留學)을 온

신라(新羅)의 최치원(崔致遠)과 교류가 두터웠다고 전해지는데,

나은(羅隱)과 최치원(崔致遠)의 만남을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이렇게 적고 있다.


"평소 자신의 재주(才操)를 믿고 스스로 높게 여기며 쉽게 남을 인정하지 않던 나은(羅隱)도

최치원(崔致遠)에게는
자신이 지은 시(詩) 다섯 두루마리를 보여주었다"라고 기록했다.

 

훗날 조선(朝鮮)의 22대 왕(王) 정조(正祖)는 나은(羅隱)의 시(詩)에 대하여

"양동서(兩同書) 10편은 내용 중에 지론(旨論)이 많다.
그가 말한 귀천(貴賤), 강약(强弱), 손익(損益), 경만(敬慢),

후박(厚薄), 이란(理亂), 득실(得失) 등 여러 편에서
천고(千古)의 인물을 품평(品評)한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읽어도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게 한다."라고 호평(好評)을 하면서도,
"앞의 다섯 편에서 노담(老聃) 즉 노자(老子)을 끌어다 끝을 맺고,
뒤의 다섯 편에서는

공자(孔子)까지 빌어다 결론(結論)을 맺은 것은 온당치 않은 것 같다."

비평(批評)을 하였다.


저서로 강동갑을집(江東甲乙集), 회남우언(淮南寓言)과

참서(讖書), 후집(後集)등이 있으며

모두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나은(羅隱)에게는

아들 새옹(塞翁)이란 자가 있었는데 양(羊)을 잘 그렸다고 한다.
그가 그린 그림은

훗날 북송(北宋)의 높은 관리(官理)였던 손면(孫沔)이

애지중지(愛之重之)하며 아끼고 소장했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전한다.

西施(서시).

家國興亡自有時(가국흥망자유시): 집이나 나라의 흥망(興亡)은 정해진 때가 있거늘,
時人何苦咎西施(시인하고구서시): 사람들은 어찌하여 서시(西施)만을 원망하는가~?.
西施若解亡吳國(서시약해망오국): 서시(西施)가 만약 오(吳)나라를 망하게 했다면,
越國亡來又是誰(월국망래우시수): 월(越)나라를 망하게 한 자(者) 또 누구란 말인가~?.

 

가정(家庭)이나 나라가 흥(興)하고 망(亡)하는 것은
다 때가 되어 기운(氣運)이 쇠해서 그런 것이 거늘...
옛 오(吳)나라 사람들 뿐만아니라 후세 사람들도 오(吳)나라가 망한 원인을 두고,
요염한 서시(西施) 때문이라고 원망을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吳)나라을 멸망시킨 월(越)나라는

또 누가 망하게 했는가~?.
그도 서시(西施)처럼 손가락질을 받아야 되지 않겠는가~?. 라고

시인(詩人)은 되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