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교(孟郊) 751~814.
당(唐)나라 때 시인(詩人)으로
자는 동야(東野)라 했으며 저장성(浙江省) 무강(武康)이 고향이다.
젊어서는 숭산(崇山)에 은거하면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명인 대학자(大學者) 한유(韓愈)와
학문적(學問的)로 교류를 하며 벗으로 지낼정도로 시문(詩文)에 조예(造詣)가 깊었다고 알려진다.
맹교(孟郊)는 매우 늦은 나이인 45세가 되어서야
벼슬길에 나아가 하남수륙전운판관(河南水陸轉運判官)을 지냈으며,
50세가 되어서야 율양현위(慄陽縣慰)에 올랐다.
그는 오언시(五言詩)에 뛰어났으며,
그의 시(詩)에는 사회(社會)의 모순(矛盾)을 비판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탄식(歎息)한 내용들이 많다.
시(詩)들을 보면 평이한 표현을 피하고
각고(刻苦)하듯 심혈(心血)을 기울여 쓴 시(詩)들이 많다.
이에 소식蘇軾) 즉 소동파(蘇東坡)는 평(評)하길,
시인(詩人) "가도(賈島)"와 함께 "교한도수(郊寒島瘦)"라고 했다.
교한도수(郊寒島瘦)란 "맹교(孟郊)의 시(詩)는 차가우며,
가도(賈島)의 시(詩)는 가늘고 날렵하다"는 말이다.
본 시(詩)는 당(唐)나라 시인(詩人)들의 유명 시(詩)들을 모아놓은
"전당시(全唐詩)"에 실렸을 정도로 명시(名詩)에 속한다.
작가(作家)는 주(註)에서 "영모율상작(迎母慄上作)"이라고 서문(序文)을 달았기에,
맹교(孟郊) 자신이 율양현위(慄陽縣慰)로 재직(在職) 시,
어머니의 방문을 맞이하며 지은 시(詩)임을 나타냈다.
"유자음(遊子吟)"은 모자간(母子間)의 깊은 정(情)을 표현한 시(詩)이다.
시인(詩人)은 매우 늦은 나이에 낮은 벼슬길에 나아갔다.
한유(韓愈)는 "천사(薦士): 즉 인재(人才)을 천거(薦擧)하며"라는 시(詩)에서
"오랜세월 매우 궁핍(窮乏)한 생활을 했다."라며 맹교(孟郊)를 표현하고 있다.
맹교는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기에 그의 어머니는 큰 기대를 했던 듯 하나,
조정(朝廷)에 연줄 없고 가난한 촌부(村夫)의 서생(書生)이다 보니
늦은 나이에 작은 고을의 하급관리(下級官吏)로 겨우 출사(出仕)를 하게 된다.
遊子吟(유자음): 집 떠난 아들의 읊조림.
慈母手中線(자모수중선): 어머니, 손수 옷을 지어
遊子身上衣(유자신상의): 길 떠날 아들에게 입히셨네.
臨行密密縫(임행밀밀봉): 떠날 무렵 꼼꼼히 더 꿰매심은
意恐遲遲歸(의공지지귀): 돌아올날 더딜까 저어하심이어라.
誰言寸草心(수언촌초심): 촌초(寸草) 같은 이 마음으로
報得三春輝(보득삼춘휘): 봄볕 같은 은혜(恩惠)에 어찌 보답할 수 있으랴.
그는 평생토록 자신에게 헌신(獻身)을 다하신 어머니에게,
낮은 벼슬살이가 죄스럽고 송구한 마음을 이 시(詩)에 잔잔히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맹교(孟郊)는 벼슬보다 오히려
시(詩)로써 세상에 이름이 크게 일어 후세(後世)까지 전해지고 있으니...
당시 글줄께나 쓰던 높은 관리(管理)들의 공통적(共通的) 소망(所望)이던
후세(後世)에 이름을 남기는 것에는 크게 성공(成功)한 셈이 되지 않겠는가~!.
주자(周子)의 십회훈(十悔訓) 중에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란 말이 있다.
"불효(不孝)한 자식(子息)이 뒤늦게 깨닫고 부모에게 효도(孝道)를 하려 하나,
부모(父母)는 기다려주질 않는다"는 안타까운 말이다.
갑자기 시골에 계신 노부모(老父母)가 울컥하니 그립다.
내일은 주말이고 하니 아침 일찍 찾아가 뵈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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