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宋)나라 불운의 황제... 휘종(徽宗)
차라리 황제(皇帝)가 아닌 문인(文人)으로 살았더라면...
철종(哲宗)의 외아들인 헌민태자(獻愍太子) 조무(趙茂)가 요절하고
철종(哲宗)마저 일찍 붕어하자,
북송(北宋)은 후계 황제(皇帝)를 급히 세워야 했다.
휘종(徽宗)의 글씨
중신(重臣)들은 파벌(派閥)을 형성하곤,
황제(皇帝) 후보 1순위에 올랐던 철종(哲宗)의 친동생 간왕(簡王)을 일러
"누구는 황제 친동생이라서 예법상 되고,
또 누구는 안 되는 건 공평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며 그를 반대했다.
그 아래 동생인 신왕(莘王) 조필(趙佖)은
"눈병이 심해 황제로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도 강력히 반대를 했다.
그리하여 황태후(皇太后) 상씨(向氏)가
철종(哲宗)의 대를 이을 차기 제위 계승자로 단왕(端王)을 고심 끝에 지명하니,
그가 송(宋)나라 제 8대 황제에 등극한 "휘종(徽宗)"이다.
휘종(徽宗)은
송(宋)나라 즉 북송(北宋)의 제 6대 황제(皇帝)인 신종(神宗)의 11남이며
제 7대 황제 철종(哲宗)의 이복동생으로
"휘종(徽宗)"은 죽어서 받은 묘호(廟號)이고
본명은 "조길(趙吉)"이다.
그러나 황제 지명 당시에도 휘종(徽宗)을 일러
장돈(章惇)을 비롯한 신하들 사이에서는 "그는 노는 것과 서화(書畵)를 너무 좋아하고...
황제(皇帝)의 적장자(嫡長子)도 아닌
유약한 단왕(端王)을 꼭 황제(皇帝)로 지명해야 했는가~?"라는
좋지 않은 여론을 들며 불만을 제기하는 대신들도 적지 않았다.
휘종이 그린 도구도(桃鳩圖): 복숭아 꽃가지에 앉은 비둘기
아무튼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황제가 된 휘종(徽宗)은
정치적(政治的) 리더쉽(leadership)보다는 오히려 문인(文人)이자 예술가(藝術家)로서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書體)인 "수금체(瘦金體)"를 개발하기도 했으며,
시(詩)와 서(書) 그리고 회화(繪畵)에서는
전문가(專門家) 수준을 능가하는 천재적(天才的) 재능을 발휘했다.
휘종이 개발한 서체인 수금체(瘦金體)는 자획(字劃)을 가늘고 길게 뽑아
날렵하면서도 가냘픈 것이 특징인데,
당대(當代)와 후대(後代)의 일부 역사가들은
"글자에 기백(氣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유약한 서체(書體)"라며
나라를 망처버린 망국(亡國)의 황제인 휘종(徽宗)을
사정없이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독보적(獨步的)인 서체의 창의성(創意性)과 예술성(藝術性)을
인정하는 학자들이 더 많다.
얼마전 휘종(徽宗), 흠종(欽宗) 부자(父子)가
금(金)나라에 인질로 끌려가면서 피눈물을 쏟으며 쓴 "안아미(眼兒媚)"에 이어
이번에는 같은 시기 눈물로 토해낸 또다른 시(詩)
"연산정(燕山亭)"을 소개한다.
휘종의 그림 죽조도(竹鳥圖): 대나무가지에 앉은 한 쌍의 새.
연산정(燕山亭)
北行見杏花(북행견행화): 북쪽으로 가서 살구꽃을 보다.
裁剪氷綃(재전빙초): 얇은 비단을 오려내 포갠 듯
輕迭數重(타첩수중): 사뿐히 몇겹을 접어서
注淡臙脂勻注(랭담연지균주): 가볍게 연지를 골고루 칠한 모양이로고.
新樣靚妝(신양정장): 새로운 유행의 화장이라도 했는지...
艳溢香融(염일향융): 예쁜 자태에 향기까지 감도니
羞殺蕊珠宮女(수살예주궁여): 예주궁의 선녀가 무색하도다~!.
易得調零(역득조령): 허나, 이 꽃도 시들고야 말겠지.
更多少無情風雨(경다소무정풍우): 또 얼마나 모진 비 바람을 겪어야 할꼬~!.
愁苦(수고): 아, 이 괴로움~!.
問院落淒涼(문원락처량): 이 쓸쓸한 뜨락엔
幾番春暮(궤번춘모): 봄이 몇번이나 지났갔더란 말인가~!.
憑寄離恨重重(빙기리한중중): 겹치고 겹친 서러움을 전하고 싶건만
這雙燕(저쌍연): 저 한쌍의 제비가
何曾會人語(하증회인어): 사람의 말을 어찌 알 수 있으랴~.
天遙地遠(천요지원): 멀고 먼 하늘 저 멀리
萬水千山(만수천산): 첩첩한 산과 물을 건너
知他故宮何處(지타고궁하처): 예전의 궁궐은 어드메에 있는가~!.
怎不思量(즘불사량): 어찌 생각이 나지 않으리오.
除夢裏有時曾去(제몽리유시증거): 꿈에서도 몇번이나 가서 보았건만
無據(무거): 이제는 의지할데 없고.
和夢也新來不做(화몽야신래불주): 어이하여 요즘엔 꿈에서 조차 보이질 않는단 말이냐~!.
시제(詩題)의 "연산정(燕山亭)"은 특별한 뜻이 담긴 것은 아니고
금(金)나라로 끌려가면서
때마침 살구꽃이 활짝 핀
북경(北京) 근처의 정자(亭子)에서
잠시 쉬어가며,
수 천리 밖 개봉(開封)에 있던 자신의 궁궐을 그리워 하며
눈물로 지은 시(詩)로 보여진다.
당시는 북경(北京)을 "연산(燕山)"이라고 불렀다.
'중국 고전 명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한행(苦寒行)... 조조(曹操). (0) | 2020.10.02 |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0) | 2020.03.05 |
채두봉(釵頭鳳)... 육유(陸游)와 당완(唐琬)의 안타까운 사랑 (6) | 2019.10.26 |
북송(北宋)의 멸망과, 眼兒媚(안아미): 눈이 예쁜 아이... 송(宋) 휘종(徽宗). (0) | 2019.03.22 |
서강월(西江月), 반시(反詩) ... 수호전(水滸傳)의 송강(宋江). (0) | 2019.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