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한행(苦寒行): 혹한의 매서운 추위를 뚫고 가다.
北上太行山(북상태항산): 북으로 태항산에 오르니
艱哉何巍巍(간재하외외): 험하도다!. 어찌 이리도 드높은가?.
羊腸阪詰屈(양장판힐굴): 비탈길은 구비구비 굽어
車輪爲之摧(차륜위지최): 수레바퀴가 부서진다.
樹木何蕭瑟(수목하소슬): 나뭇가지 스산하게 흔드는
北風聲正悲(북풍성정비): 북풍 소리가 구슬프다.
熊羆對我蹲(웅비대아준): 큰 곰은 나를 향해 웅크리고
虎豹夾路啼(호표협로제): 호랑이 표범은 길에서 으르렁거린다.
溪谷少人民(계곡소인민): 골짜기에는 사는 사람 없고
雪落何霏霏(설락하비비): 눈은 펄펄 휘날리네.
延頸長嘆息(연경장탄식): 목을 늘여 탄식함이여!.
遠行多所懷(원행다소회): 길이 머니 생각도 많구나.
我心何怫郁(아심하불욱): 내 마음 어찌 이리 무겁고 울적한가?.
思欲一東歸(사욕일동귀): 마음은 오로지 동(東)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네.
水深橋梁絕(수심교량절): 물은 깊은데 다리는 끊어져
中路正徘徊(중로정배회): 길 가운데서 헤메인다.
迷惑失舊路(미혹실구로): 지나온 길 잃어버려 찾을 수 없고
薄暮無宿棲(박모무숙서): 날은 저무는데 쉴 곳이 없구나.
行行日已遠(행행일이원): 가고 또 가길 이미 여러 날
人馬同時飢(인마동시기): 사람과 말이 함께 굶주리네.
擔囊行取薪(담낭행취신): 망태를 매고 다니며 땔나무를 줍고
斧冰持作糜(부빙지작미): 도끼로 얼음을 깨어 죽을 쑨다.
悲彼東山詩(비피동산시): 슬프다 저 동산(東山)의 노래,
悠悠令我哀(유유령아애): 아득히 나를 슬픔에 젖게 하네.
조조(曹操)가 본 시(詩)를 지을 당시는 어지럽던 후한(後漢) 말기로
우리가 삼국지(三國志)로 익히 접했던 시기이다.
동탁(董卓)이 황제(皇帝)인 소제(昭帝)를 폐위하고
9살 먹은 어린 헌제(獻帝)를 황제(皇帝)로 옹립하고 전휭을 휘두루다
여포(呂布)에게 살해되고,
여포 역시 훗날 조조에게 목숨을 잃었으며
조조(曹操)가 동탁(董卓)의 뒤를 이어 어런 황제를 볼로모 잡고 세력을 확장하던 때였다.
당시 가장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던
원소(袁紹)는 특유의 오만함과 독선적인 성향으로
수하 장수들의 간언(諫言)을 번번이 무시하며
곽도(郭圖)를 위시한 최측근들의 행패는 지나치게 감싸고 돌았다.
이는 책사 허유(許攸)와 장군 장합(張郃), 고람(高覧) 등이 환멸을 느껴
조조(曹操)에게 투항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조(曹操)는 투항한 어릴적 고향친구 허유(許攸)의 정보를 이용하여
원소 진영의 군량미(軍糧米) 창고가 있는 오소(烏巢)를 급습하여,
원소(袁紹) 휘하의 3대 장수 중 한 명인 순우경(淳于瓊)이 이끌던 주둔군을 격파하고
70만 명을 멱여 살릴 거대한 군량미 저장 창고들을 모조리 불태워,
원소군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전술 작전으로 대승을 거둔다.
이리하여 조조(曹操)는 삼국 역사상 3대 큰 전투 중 하나로 꼽는
관도대전(官渡大戰)을 어렵사리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당시 원소(袁紹)의 병력은 70만 명이 넘었으며
조조군(曹操軍)은 7만이 채 안되었다고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원소(袁紹)의 죽음과 패배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건재한 원소(袁紹)의 두 아들 원담(袁譚), 원상(袁尙),
그리고 장군 고간(高干)이 이끄는 군이 셋으로 동강났슴에도 워낙 강대했기에,
잔존 세력을 모두 무너뜨리고 하북(河北)을 평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애로가 있었다.
실제로 조조(曹操)는 원소(袁紹)가 죽은 이후에도
원소군(袁紹軍)을 상대로 섣불리 소탕작전을 감행하지 못했으며,
그들 내부의 후계자 분쟁이 시작되고 난 틈을 이용해
원소의 잔존세력들을 투항케 하거나 공격하여 조금씩 허물어 갔다.
그중 마지막까지 남은 원소의 아들 원상(袁尙)이 이끄는 저항군은 가장 강력했지만,
충직한 장군 심배(審配)를 제외한 원가(袁家) 진영의 고위급 장군들도 대부분
조조(曹操)와 원상(袁尙) 양, 진영의 우열을 저울질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조조군(曹操軍)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장수들이 원소 진영과 은밀히 내통하며 나름대로 살길을 모색했고 중신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조조가 원소 진영을 급습했을 때 조조군 장수들과 중신들이
원소(袁紹)에게 보낸 은밀한 서한들을 괘짝으로 한통 가득 발견했지만,
조조(曹操)는 이 서한들을 조사는 커녕
한 통도 읽지 않고 만인 앞에서 전부 불살라 버렸다.
"모두가 어려운 때 살기위해 한 행동들을 문제 삼지 않겠다"며
조조 특유의 아량과 배포를 드러냈다.
조조군이 원소 잔당들을 평정해 가자...
원상(袁尙) 휘하의 장수들과 책사들은 그야말로 원상의 뒷통수를 치고
조조군(曹操軍)에 투항하는 놈들과 아예 노골적으로 원상(袁尙)에게 도전하는 등,
군내(軍內) 질서가 급속도로 문란해지고 있었다.
이지경이 되니 막강하던 원상군(袁尙軍)도 전의를 상실하고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며 지리멸렬(支離滅裂)해 갔다.
따라서 내분으로 인한 분열로
조조(曹操)는 어렵게 원소(袁紹)의 잔존 세력들을 평정할 수 있었다.
이 시(詩)는 조조(曹操)가
막강한 세력으로 위세를 떨치던 원소군(袁紹軍)를 격파하고
그 잔당들을 토벌하러 태항산맥(太行山脈)을 행군으로 넘어가면서
고통스럽던 때를 시(詩)로 읊은 내용이다.
아무튼, 시(詩)의 내용으로 돌아가...
"고한(苦寒)"이란 혹한의 매서운 추위를 뜻 한다.
원소군(袁紹軍)과의 전쟁에서 조조군(曹操軍)은 승전하였지만,
승전한 쪽도 이처럼 큰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본 시(詩)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본 시(詩) 중
思欲一東歸(사욕일동귀): 마음은 오로지 동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네.란
구절 중, "동(東)"은,
조조(曹操)의 고향이 패국(沛國) 초현(譙縣)으로
태항산(太行山)에서 보면 동쪽에 위치 한다,
따라서 동쪽으로 가고 싶다는 말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로
조조(曹操)의 간절함과 여린 마음이 함께 담겨있다.
마지막 연의 "동산(東山)"란 시경(詩經)에 있는 구절이다.
오래전 주공(周公)이
이곳 어딘가에서 고통 속에 행군한 이야기를 시(詩)로 노래한 것인데,
아마 그 시(詩)의 내용과 자신이 처한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황이,
지난날 주공(周公)이 겪었던 상황과 흡사할 것이라 생각하며
조조(曹操)는 고사(故事)를 인용하면서 멋지게 시(詩)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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