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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도화촌(桃花村)에서 왕상암(王相岩)까지...

2번째 찾아온 태항산(太行山)... 2.

도화촌(桃花村)에서

태항천로(太行天路)를 따라 왕삼암(王相岩)까지...

 

 태항대협곡(太行大峽谷)은
중국 산서성(山西省)과 하북성(河北省)
그리고 하남성(河南省) 사이의 경계에 걸쳐 있는 큰 산맥입니다.

 

꾸불꾸불한 절벽 위에 위태롭게 나 있는

항천로(太行天路).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부터

험준한 산세로 인해
군사적(軍事的) 요충지(要衝地)였으며

역사적(歷史的)으로도 중요한 획(劃)을 그은 산이기도 합니다.

 

이 도로에서 일년에 한 번 국제 사이클대회가 열린다.

 

1편에서 "홍기거(紅旗渠)"를 잠시 언급했는데...

 

이번에는 "전한(前漢)""후한(後漢)"의 분수령이 된
"왕망령(王莽嶺)"에 얽힌

일화(逸話)를 잠시 소개할까 합니다.

 

6년 전 이곳 태행산에 왔을 때,

올라가서 본 높은 고갯마루입니다만...

하남성(河南省)과 산시성(山西省)에 걸쳐 있는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왕망령(王莽嶺)이라는 고개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마지막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광무제(光武帝) 휘하의 장수 두오(杜吳)에게 패하여

망망(王莽)은 살해당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세운 신(新)나라도 종말을 고합니다.

 

이곳 집들은 모두

구둘장보다도 더 큰 편암으로 지붕을 덮었다.

 

"신(新)"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하면...

한(漢)나라 때, 그러니까...

중국 전한(前漢)의 제10대 황제인 "애제(哀帝)"가 숨을 거두자,
대사마(大司馬)로 있던 "왕망(王莽)"

폭정(暴政)을 핑계로 반란(叛亂)을 읽으켜
실권(實權)을 잡은 뒤,
스스로 나라을 세워 "신(新)"이라고 명명합니다.

 

왕망(王莽)은 나라를 열자마자
토지 개혁, 노비 매매 금지, 화폐 개혁 등...
여러 가지 개혁(改革) 정책(政策)들을

발 빠르게 실행합니다.

 

그러나 개혁의 내용과 방법이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急進的)이고 가혹하며
현실성(現實性)이 부족하여,
오히려 사회를 혼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왕망(王莽)의 야심찬 개혁(改革)들은,
초기의 명성과는 달리 실행하자마자
호족(豪族)과 대상인(大商人) 같은 지배층(支配層)의

거센 반발을 삽니다.

 

결국 왕망(王莽)의 신(新)나라는...
크고 작은 봉기(蜂起)와 호족들의 반발로,
건국 15년 만인 서기 23년에

나라다운 나라를 열지도 못하고 종말을 고하고 맙니다.

 

그 마지막이 바로 태항산 고개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광무제(光武帝)에게 패하며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그후 사람들은 평민들을 우대했던 왕망(王莽)의 통치(統治)를 잊지 못하여

그가 숨을 거둔 고개 이름을

왕망령(王莽嶺)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역사학자(歷史學者)들은
왕망(王莽)이 세운 "신(新)"나라를 기준으로 하여,
앞의 한(漢)나라를 "전한(前漢) 혹은 서한(西漢)"이라 부르고
광무제(光武帝)부터 다시 이어진 뒤의 한(漢)나라를

"후한(後漢) 혹은 동한(東漢)"으로 나누어 부르게 된 것입니다.

 

태항산(太行山) 일대는 왕망(王莽) 이후에도
고구려(高句麗)당(唐)나라 간에
전투가 간헐적으로 벌어지기도 했으며...

 

환산선(幻山仙)도로

 

중일전쟁(中日戰爭) 때에는
일본군(日本軍)과 중국의 국공합작군(國共合作軍)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쌍방이 많은 인명 피해를 내기도 했던 격전지(激戰地)였습니다.

 

또한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國民黨)의 정부군(政府軍)과,

 

마오쩌둥(毛澤東)을 중심으로한

공산당(共産黨)의 팔로군(八路軍) 간에,
밀고 밀리는 전투를 벌여,
결국 정부군(政府軍)이 패배합니다.

 

그후 급속하게 전열(戰列)을 잃은 국민당(國民黨)의

고위 관리들은
짐을 싸서 대만(臺灣)으로 쫒겨가는 쓰라린 아픔을 맛 본 곳도

이곳 태항산(太行山) 일대입니다.

 

이렇듯 태항산(太行山)은,

중국 고대(古代)부터 근대(近代)까지...
역사적(歷史的)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품었던
현장이기도 합니다.

 

도화곡(桃花谷) 입구에서 약 4km 가량 계곡을 걸어서 올라와
도화촌(桃花村)에 도착한 후,
버스나 전동카를 타고 전망 좋은 곳에서

두어 번 가다 쉬다를 반복합니다.

 

이 꾸불꾸불한 절벽 찻길이 환산선(幻山仙))인데,

 

"태항산 위로 난 길"이라 하여
보통은 "태항천로(太行天路)"라고 부릅니다.

 

정신없이 내달리던

버스에서 내려
왕상암(王相岩)으로 내려오는 입구에 있는

서너 채의 작은 마을이

구름 위에 뜬 마을이라 하여 "부운정(浮雲頂)"라고 부르는

천상(天上) 마을입니다.

 

왕상암 풍경구(王相岩 風景區)로 내려오는 절벽마을

"부운정(浮雲頂)"에서
왕상암(王相岩) 입구의 "석판암(石板岩)" 마을까지가,

 

대협곡의 일반적인 여행 코스입니다.

 

깊은 협곡 사이에

거대한 유리잔도를 건설 중입니다.

 

절벽 사이로 아득히 내려다 보이는

태항 대협곡(太行 大峽谷)이 자그마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발 앞의 이곳~??.

 

푹 꺼진 절벽 난간에

유리잔도를 만들었네요~?.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유리 전망대에 서서
느껴보는 간담이 서늘한 스릴도 이곳의 백미(白眉)입니다.

 

전에는 이런 거 없었는디~

에구구구~~~!!.

 

발 밑으로 천길 낭떨어지가~

아찔한 현기증이 납니다..!

 

유리전망대.

 

유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협곡의 풍경은

아름답고도 웅장합니다.

 

이렇게 전망 좋은 곳에는 구경하고 쉬어가는

전망대를 설치해

대협곡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코너를 돌아가는 길모퉁이에는

언제 심었는지...

저절로 난 건지...

알 수 없는 오래된 배나무와 감나무가

여럿 보입니다.

 

언덕 위의 감나무.

 

전에 없던 조형물과

쉽터들이 군데 군데 많이 생겼네요~

 

와우~~!!

이런 모습이 태항산의 진짜 매력입니다~!.

 

왕상암으로 내려가는 길.

 

이곳이 부운정(浮雲頂)임을 알리는 안내판들과

휴지통이 세련되고 깔끔합니다.

 

절벽 틈으로 난 비좁은 암벽길을 따라 내려와서
다시 800미터 정도를 계단을 따라 걸으면...
"왕상암(王相岩) 풍경구(風景區)"

입구에 도착합니다.

 

저 아래 까마득한 협곡 끝이

왕상암(王相岩) 풍경구(風景區)입니다.

 

내려가며 바라보는 경치는 정말 수려합니다...!.

 

시야가 탁 트인 시원한 풍경이

감탄이 절로 나게 합니다...!.

 

태항산의 매력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습니다.

 

깎아지른 절벽...

그 사이로 난 아찔한 절벽길...

그리고 제비집처럼 난간에 매달린 화려한 집들...

 

이런 후련한 감동을 이곳 태항산이 아니면

어디서 또 느낄 수 있을까요~?.

 

절벽 중간을 자세히 더듬어 보면...

집이 두 채가 보이는데...

중간 나뭇잎에 가린 집이 "노군전(老君殿)"이고,

우측 절벽 끝에 앉은 2층 집이 "서재루(書齋樓)"입니다.

 

절벽 중간 쯤 내려와서 만나는

작지만 화려한 옥황각(玉皇阁)입니다.

작은 나무에 매달린 소원을 적은 가득한 리본들이

꽃처럼 화려합니다.

 

들른김에 잠시 쉬어가고 싶지만...

가야할 길이 먼지라...

 

아찔한 절벽 아래로 흘러내린 물이 고인 작은 못

앙천지(仰天池)가 보입니다.

 

허리를 굽히고 기다시피 걸어야

통과하는 좁은 절벽길이 한참을 이어집니다.

 

허리를 펼 공간도 높이도 없기에

가장 낮은 자세로 낑낑거리며 무조건 통과합니다.

 

휴~!.

 

잠시 서서 땀을 닦으며

지나온 절벽길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또 나타난 두번째 낮은 벼량길입니다.

앞서 정신없이 홀로 가는 님 뒤로...

 

홀로 남은 화천댁이...

 

기다 주저앉다를 반복하며...

낭군님을 죽어라 따라갑니다... ^^.

 

기다시피 통과한

두더지굴 같은 틈샛길을 뒤돌아 봅니다.

 

저 깎아지른 절벽 중간으로 우리가 내려온

계단과 좁은 통로가 보입니다.

 

이곳에서 지니온 길을 돌아보니...

이 또한 장관입니다...!.

 

가뿐 숨을 가다듬자 마자 곧이어 나타난
높이 88m의 절벽에 수직으로 설치된 원형 사다리 계단,
"마천통제(摩天筒梯)"입니다.

 

공포와 스릴과 쾌감을

동시에 체감하는 잊지 못할 코스입니다.

 

사다리를 내려와 조금 더 가면...

작은 못 앙천지(仰天池)가 있는 목제 계단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런 계단길을 800m 가량

정처없이 내려갑니다.

 

뒤돌아본 통제(筒梯)가 다시 봐도 아찔합니다.

 

... ??.

 

왕상암 부근에서 만나는 부설(傅說) 동상.

 

"왕상암(王相岩)"이라는 이름은...
중국 고대(古代) "상(商)나라" 때,
왕(王)인 "무정(武丁)"과,
"노예(奴隸)" 신분으로

재상(宰相)까지 지낸
"부설(傅說)"의 고사(古事)가 서려 있는 곳이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무정(武丁)이 왕(王)이 되기 전,

부친(父親)의 명(命)에 따라
평민(平民)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이곳 보천암(寶泉岩) 일대에서

노동일을 체험하다가

발에 쇠고리를 차고 고된 일을 하는 노예(奴隸)신분인

설(傅說)을 만났는데...

 

부설(傅說)의 현명함을 보고는...
나중에 자신이 왕(王)이 된 후에,

그를 재상(宰相)으로 발탁하여
상(商)나라의 전성기(全盛期)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후세(後世) 사람들이

무정(武丁)과 부설(傅說)이 함께 생활하였던
보천암(寶泉岩)을...

이들의 고사(故事)에서 "왕(王)"과 "재상(宰相)" 따와

"왕상암(王相岩)"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이랍니다.

 

그리고 동한시대(東漢時代) 대쪽 같은 재상(宰相) 하복(夏馥)
이곳으로 피난(避難)을 와

은거(隱居)하였고,

 

명(明)나라 시대,

하북(河北)의 도사(道士)로 불렸던 조득수(趙得秀)

 수련(修鍊)한 곳도 이곳이며...

 

청(淸)나라 때

병부 우시랑(兵部 右侍郞)을 지낸 허삼예(許森禮)
이곳에서 별장(別莊)을 짓고

만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듯 왕삼암(王相岩) 일대는

 경관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명승지(名勝地)로 유명했던 골짜기입니다.

 

나는 두번째 와서 그런지..

주변의 풍경과 건물들이 낯이 익습니다.
객지(客地)를 떠돌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듯,

모든 풍경들이 정겹습니다.

 

하물며,

눈 뜨면 함께 밥 먹고 웃고 떠들고...

아름다운 이곳 태항산(太行山)에서...

사나흘 고락(苦樂)을 함께한 분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모두 안녕들 하시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