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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핑야오(平遙)에서 낭만(浪漫)의 밤을...

 

 

핑야오 고성(平遙古城)에서 하룻밤을 보내다.

 

14세기 명(明)나라 때 세워진 핑야오고성(平遙古城)은

중국 4대 고성(古城) 중 한 곳으로 불립니다.

4대 고성(古城)이라 함은...
사천성 랑중고성(廊中古城), 운남성 여강고성(麗江古城),
호남성 봉황고성(鳳凰古城), 산서성 평요고성(平遥古城),

대체로 꼽습니다.


그 중 윈난성(雲南省)의 리장고성(麗江古城)과 함께,

핑야오고성(平遥古城)은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의 양대(兩大) 고성(古城) 중 한 곳입니다.


리장(麗江)이

소수 민족인 나시족(納西族)의 고성마을인데 비해,
핑야오(平遥)는

전형적인 한족(漢族)의 고성마을입니다.

 

핑야오(平遙)에 처음 성(城)이 만들어진 것은

약 2,800년 전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800년 경 서주(西周) 시대 만들어진 성곽이

현재 핑야오 고성(平遙古城)의 원형이랍니다.
그 후 조금씩 규모가 커지다가
명(明)나라 초기 홍무제(洪武帝) 즉 주원장(朱元璋) 때

지금처럼 견고하게 세워졌다고 합니다.

 성(城)에는 6개의 문과 72개의 보루(寶樓)가 있으며,
독특한 것은 일반적인 고성(古城)과는 달리
동서남북 4방의 성문(城門)이

비대칭(非對稱)이라는 점입니다.

 

보통은 남북과 동서의 성문(城門)이 마주보며

하나의 길로 이어지지만,
핑야오 고성(平遙古城)은 각각의 성문이 서로 엇갈려
길도 지그재그로 나 있습니다.

 

겨울이면 북쪽에서 불어오는 이 지역 특유의

거센 황토(黃土) 바람을 피하기 위해
그런 모양으로 설계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핑야오(平遙)의 도시 구조는
5세기에 걸쳐 중국 왕조(王朝)의 건축 양식과 도시 계획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처음 평요(平遙)를 찾는 사람은
정신없이 꺾이는 골목의 특성으로 인해
길을 잃기 쉽습니다.

 

핑야오는 성벽 둘레가 6㎞에

높이는 약 12m에 이르는 거대한 성곽 도시입니다.
우리나라의 왠만한 시(市)급에 버금가는 도시로

규모도 큽니다.

 

성(城) 내에는

번화한 거리와 시장 그리고 민가(民家)들를 비롯하여
오래된 문화 유적들이 즐비하며,
타임머신을 타고 1,000년 전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도시가 매우 넓고 평평하여

꼼꼼히 둘러 보려면 하루가 모자랄 뿐더러,
150위엔 짜리 통합 입장권을 구입하면
3일 간 고성 내 22곳의

유적지(遺跡地)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핑야오(平遙)는

지난날 금융(金融)의 중심지였습니다.
중국 최초의 사설 은행인 "일승창(日升昌)"

처음 문을 열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으로 지점망이 퍼져나갔습니다.

 

18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청(淸)나라 금융시장을
지배할 정도로

막강한 경제력을 장악했기에

핑야오는 빠르게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일승창(日升昌)이 100년 기업을 가능케 한 데는

엄격한 경영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유권(所有權)과

경영권(經營權)이 분리돼 있었으며,

 

직원들을 상벌(賞罰)로 엄격하게 관리하여
고객들로부터 높은 신용(信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승창(日升昌) 은행은
청(淸)나라 황제(皇帝)와도 거래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108년 간 청(淸)나라의 금융업(金融業)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핑야오 고성 최고의 부자(富者)로 알려진 가문(家門)은
명(明)나라 때,

소금장사로 떼돈을 번 "마씨(馬氏)" 일가입니다.

 

마씨(馬氏) 가문(家門)은

집안 지하에 커다란 금고실(金庫室)을 별도로 두고

자금(資金)을 관리했을 정도로
엄청난 부(富)를 축척했는데...

 

세월따라...
그 많은 재산(財産)은 다 사라지고...
잡안을 이끌던 자손(子孫)들도
모두 흩어지면서 빈 털털리가 되어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하며 사는지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핑야오 고성의 최고 높은 건물은

마씨(馬氏)의 저택으로,
건물 옥상에서

고성(古城)의 사방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亭子)가 남아 있습니다.

 

정자(亭子)는

당시 막강한 부(富)의 힘으로 권세(權勢) 위에 군림(君臨)하던

마씨(馬氏) 가문(家門)의 상징(象徵)이며,

지난날의 영화(榮華)를

돌이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정자(亭子)에 오르면

핑야오의 고풍스런 풍경들과 세월의 무상(無常)을 동시에 느끼기에,
이곳보다 나은 곳은 없다고 하나...
지척(咫尺)에 두고도 가보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쓰잘대기 없는 사설(私說)이 길어졌는데...

 

핑야오(平遙)에서 가장 흔한 음식은
중국 북서 지방에서 주식으로 먹은 국수(麵) 요리이며,

그 중 대표를 꼽으라면

단연 "도삭면(刀削面)"이라고 합니다.

 

핑야오 국수는 중국 제일로 손 꼽힙니다.
"국수의 본고장은 산시(山西)이고,
산시(山西) 제일의 국수는 핑야오(平遙)에 있다" 하며

국수에 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고 합니다.

 

이곳 국수는

국수가루에 많게는 36가지 잡곡을 첨가한다고 하는데,
잡곡의 배합과 면을 써는 방식을 달리해
100가지 이상의

다양한 국수 요리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핑야오에서는
중국의 모든 국수를 거의 다 만날 수 있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닙니다.

 

이 동네에서는 평범한 가정주부도 기본 30가지 이상의
국수를 만들 줄 안다고 할 정도이니...
가히 국수에 관한한 전문가들입니다.

 

그리고 "소고기""식초(醋)"도 메우 유명합니다.
황토고원의 특성상 황사(黃砂) 바람이 심한 지역적 특성 때문에
기관지에 좋은 식초가 자연스럽게 발달했고,
소고기는 명(明), 청대(淸代)부터 이미 핑야오(平遙)의

유명 특산물이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옛부터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으며
소고기는 그다지 즐겨 먹는 육류는 아니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핑야오는 소고기가 흔했고 또 유명했다고 합니다.

 

이곳을 찾아온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나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는,

핑야오에서 소고기는 빠질 수 없는 메뉴였다고 합니다.

 

청(淸)나라 때 엄청난 미식가(美食家)였던

서태후(西太后)도
핑야오(平遙)를 방문했을 때

소고기 맛에 반하여
황실(皇室) 진상품(進上品)으로 바치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지금부터의 사진들은

아침식사를 하러 오가면서 마주친

숙소인 "핑야오 회관(平遙會館)" 주변의 극히 일부 사진들입니다...

 

고풍스럽고 화려한 객잔(客棧) "핑야오회관(平遙會館)"에서의
하룻밤은,
1천년 전 과거(過去)로 돌아가 강호(江湖)를 떠도는 나그네가 된 듯,
낭만적(浪漫的)인 경험이었으며...
잊지못할 추억(追憶)으로 남았습니다.

 

허베이성(河北省) "스자좡시(石家莊市)"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시(太原市)"에 도착한 다음,
다시 버스로

고속도로를 2시간 이상을 달려서
오후 해질녘에 도착한

핑야오 고성(平遙古城)의 밤은 화려하고도 아름다웠습니다.

 

강남(江南)을 여행할 때는
수향(水鄕)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허베이(河北)에서는 고성(古城) 객잔(客棧)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중국 여행의 고풍스러운 낭만(浪漫)이기에

여행자들에게 한 번 쯤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