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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 명시 감상

백제성최고루(白帝城最高樓)... 두보(杜甫)

白帝城最高樓(백제성최고루)

 

城尖徑昃旌旆愁(성첨경측정패수): 성루(城壘)는 뾰족하고, 길은 비탈지며, 깃발은 근심스러운데,
獨立縹渺之飛樓(독립표묘지비루): 아스라히 나는 듯한 누각(樓閣)에 홀로 섰노라.
峽坼雲霾龍虎睡(협탁운매용호수): 흙비 구름은 열려진 골짜기에 용호(龍虎)처럼 웅크렸고,
江淸日抱黿鼉遊(강청일포원타유): 맑은 강에 비친 해, 악어들 노니는 듯 하구나.
扶桑西枝封斷石(부상서지봉단석): 부상(扶桑)나무 서쪽 가지 깎아지른 석벽(石壁)에 가리웠고,
弱水東影隨長流(약수동영수장류): 약수(弱水)에 비친 내 그림자 긴 강을 따라 동으로 흘러가네.
杖藜嘆世者誰子(장려탄세자수자): 명아주지팡이 짚고 탄식하는 자 누구인가~?.
泣血迸空回白頭(읍혈병공회백두): 하늘 향해 피눈물 뿌리며 백발(白髮)을 날리는구나.

 

서기 766년 이미 55세가 된 두보(杜甫)가

늦은 봄에 병이 얼마 간 호전(好轉)을 보이자,
운양(雲陽)에서
다시 강을 따라 내려가 기주(夔州) 즉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으로 들어온다.


늦봄부터 약 2년 간을 이곳에서 지냈다.
두보(杜甫)는 기주(夔州)에 온 이래로

2년 동안에 430여 수에 이르는 많은 시(詩)를 지었는데,
이는 전체 두보(杜甫) 시(詩)의 1/3에 해당 되는 엄청난 양이었다.
지금 소개하는 "백제성최고루(白帝城最高樓)"도 이때 지은 시(詩)이다.


백제성(白帝城)은

기주(夔州)의 동쪽에 있는 성(城)인데,
기주(夔州)는 현재의 지명으로

허베이 성(湖北 省) 스좌장 시(石家庄 市) 가오이현(高邑縣)이다.


그리고 백제성(白帝城)은
우리가 잘 아는 후한(後漢) 말기(末期) 혼란한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촉한(蜀漢)의 황제(皇帝) 유비(劉備)가,

관우(關羽)와 장비(張飛)의 원한을 갚고자 대군을 이끌고

오(吳)나라로 처들어갔다가,
오(吳)나라의 젊은 장수 육손(陸遜)의 지략(智略)에 걸려들어 대패하고

이곳 백제성(白帝城)으로 쫓겨온다.

 

이 전투가 이른바 삼국(三國)의 3대 대전(三大 大戰)에 속하는

"이릉대전(夷陵大戰)"이다.


이후 유비(劉備)는 대패로 인한 후유증과

쇠잔해진 기력을 회복하지 못 하고,
제갈량(諸葛亮)에게

아들 유선(劉禪)과 촉한(蜀漢)의 후사(後事)를 간곡히 부탁하고는 숨을 거둔다.


백제성(白帝城) 무후사(武侯祠)에는
유비(劉備)와 제갈량(諸葛亮)의 묘(墓)와 사당(祠堂)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이 역사 깊은 배제성(白帝城)에 들른 두보(杜甫)는
지난날 충절(忠節) 깊었던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을 떠올리며,
조국(祖國) 당(唐)나라의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위태로운 현실을 한탄하며

이 시(詩)를 지었다.


이 때는 이미 두보(杜甫)에겐 병마가 깊어
걸음 걸이도 부자연스럽고

귀도 반쯤 먹었으며 폐병까지 앓고 있는
그야말로 노쇄한 몸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조국(祖國)을 향한 충정(忠情)과 시심(詩心)은

더욱 뜨겁게 불타고 있었으니...
알면 알 수록 참으로 존경스럽기 그지없는 위대한 시인(詩人)이

두보(杜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