別杜審言(별두심언): 두심언을 보내며
臥病人事絶(와병인사절): 나는 병석에 누워 일어나지 못 하는데
嗟君萬里行(차군만리행): 그대는 만리 먼 길을 떠나가네.
河橋不相送(하교불상송): 다리까지 나가 전송하지 못 하니
江樹遠含情(강수원함정): 강 언덕 나무숲에 정(情)만 어리는구나.
친구가 먼 길을 떠나간다.
세상이 하 분분하니 지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도 없다.
마땅히 저 앞 다리까지 배웅하며
술잔을 기울이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하건만,
몸에 병이 깊어 배웅을 못 하는 안타까운 처지라오.
강가에 우거진 숲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정만 보낸다네...
친구~!. 미안하네, 잘 가시게나...
본 시(詩)에 등장하는 "두심언(杜審言)"은
자(字)가 필간(必簡)이며,
시성(詩聖)으로 추앙받는 "두보(杜甫)"의 친할아버지이다.
그는 서기 670년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지방의 관직(官職)을 역임하던 중,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부름을 받고
장역지(張易之)의 뒤를이어 저작좌랑(著作佐郞)이란 관직(官職)을 역임하였다.
정변(政變)으로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정권(政權)이 갑자기 무너지자
그녀의 그늘에서 활약하던 관리들 대부분이
좌천(左遷)되거나 유배(流配)되었는데,
이때 두심언(杜審言)도
봉주(峰州), 지금의 북베트남으로 유배형(流配刑)에 처해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사면(赦免)되어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수문관직학사(修文館直學士)를 지냈다.
그는 성품(性品)이 교만(驕慢)하여
여러 사람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으나,
싯적인 면에서는 시재(詩才)가 풍부하고 특히 5언율시(五言律詩)에 뛰어나
심전기(沈佺期), 송지문(宋之問) 등과 함께
초당(初唐)을 이끈 궁정시인(宮廷詩人)으로 손 꼽힌다.
송지문(宋之問)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소개한 "제대유령북역(題大庾嶺北驛)"이란 그의 시(詩)를 소개하면서
간약하게 들여다 봤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송지문(宋之問)은 심전기(沈佺期)와 나란히 약관(弱冠)의 나이로
진사(進士)에 급제(及第)하였다.
그 후 35세까지 습예관학사(習藝館學士) 등의 관직(官職)을 역임하며
요직(要職)을 이어가다가,
36세에 병이 들어 40세까지 육혼산장(陸渾山莊)에서 칩거한다.
이때 지은 시(詩) 중 한 편이 지금 소개하는 "별두심언(別杜審言)"이다.
와병(臥病) 중에 절친한 친구이던
두심언(杜審言)이 유배(流配)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유인 즉슨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서슬퍼런 정권(政權)이
반란(反亂)으로 무너지는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무후(武后)의 그늘에서 권력(權力)을 휘두르던 관리들에 대한
전국 각지에서 연이은 상소문(上疏文)이 빗발치자,
결국 두심언(杜審言)도 장안(長安)에서 머나먼
변방(邊方)의 봉주(峰州)로 유배형(流配刑)에 처해진다.
이 안타까움을 안고서 두심언(杜審言)이
산장(山莊)에서 요양하는 친구와 작별(作別)하고자 송지문(宋之問)을 찾아온다.
본 시(詩)는
와병(臥病) 중에 친구와 작별(作別)하는 안타까움이 진하게 배어든
짧은 절구(絶句)의 명시(名詩)로
송지문(宋之問)의 수작(秀作)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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