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風歌(대풍가)
大風起兮雲飛揚(대풍기혜운비양): 큰 바람 부니 구름이 날아 오른다.
威加海內兮歸故鄕(위가해내혜귀고향): 위엄을 해내에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네.
安得猛士兮守四方(안득맹사혜수사방): 어디서 용맹한 군사를 얻어 사방을 지키나~!.
이 시(詩)는 유방(劉邦)의 호쾌한 포부(抱負)를 표현한 시(詩)이며
노래(歌)이다.
몇일 전에 소개한 항우(項羽)의 "해하가(垓下歌)"에 이어
이번에는 유방(劉邦)의 노래
"대풍가(大風歌)"를 소개하고자 한다.
소설(小說) 초한지(楚漢志)로도 잘 알려진 유방(劉邦)과
항우(項羽)는 천하(天下)를 놓고 패권(覇權)을 다툰 인물로 유명하다.
장기판(將棋板)에서
한(漢)나라와 초(楚)나라는
업치락 뒤치락 수많은 전략(戰略)을 써가며 마주앉은 자리에서
한창 지략(智略) 싸움에 열중하는 중이다.
이처럼 우리가 잘 아는 유방(劉邦)은
오늘날의 장쑤성(江蘇省) 패현(沛縣) 사람이다.
성(姓)은 유(劉) 이름은 방(邦) 자는 계(季)라고 쓴다.
유방(劉邦)은 사실 청년시절 고향(故鄕) 패현(沛縣)에서
별 볼일 없이 먹고 놀던 건달이었다.
그런 그가 천하(天下)의 패권(覇權)을 거머쥐고
통일(統一) 한(漢)나라의 고조(高祖)가 될줄 누가 알았으랴~
유방(劉邦)은 진(秦)나라의 폭정(暴政)에 반기(反旗)를 들고
봉기군(蜂起軍)의 수장(首長)이 되어 항우(項羽)와 함께 진(秦)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는 항우(項羽)와 천하(天下)를 놓고
다시 패권(覇權)를 다투었던 인물로 유명하기에 여러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다.
그에게는 장량(張良), 소하(蕭何), 한신(韓信) 등
걸출한 수많은 부하(部下) 장수(將帥)들과 책사(策士)가 늘 함께했었다.
유방(劉邦)은 항우(項羽)와 달리
인재(人才)를 알아보고 발탁하는 탁월한 안목이 있었으며 그들을 잘 이용할 줄도 알았다.
"힘이 모자라고 머리가 나쁘면 빌려 쓰면 된다"는 것을
유방(劉邦)은 이미 알았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항우(項羽)는 자신(自身)의 힘과 능력(能力)만을 믿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유방(劉邦)이 천하(天下)를 평정(平定)하게 된다.
유방(劉邦)은 천하(天下)를 평정하고 논공행상( 論功行賞)으로
장수들에게 봉토(奉土)을 나누어 주자
일부 불만을 품은 장수(將帥)들이 잇단 반란(反亂)을 일으킨다.
이리하여 한신(韓信), 팽월(彭越),
번쾌(樊噲) 등 기라성 같은 측근 장수(將帥)들이 처형(處刑)되고,
천하제일(天下第一)의 지략가(智略家)라 평가받는 장량(張良)마저 그의 곁을 떠난다.
BC 즉 기원전 196년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장안(長安)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고향(故鄕) 패현(沛縣)에 들렸었다.
고향(故鄕)의 일가친척(一家親戚) 그리고 옛 친구 등 120여 명이 모여
천하(天下)를 평정(平定)하고 돌아온 유방(劉邦)을 위해,
성대한 환영회(歡迎會)를 열어주었다.
이 자리에서 유방(劉邦)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축(柷)을 치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리고는 즉석에서 "대풍가(大風歌)"를 지어 노래로 불렀다.
시(詩)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왕(帝王)의 기상(氣像)을 읊은 시(詩)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시(詩)는
후세(後世)에 제왕(帝王)을 꿈꾸는 자는 누구나 이 시(詩)을
애송(愛誦)했다는 일화(逸話)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구에서는 바람과 구름을
자신(自身)과 군웅(群雄)으로 비유하며,
자신이 군웅(群雄)을 제거(除去)하고
천하(天下)를 통일(統一)한 웅대한 기상(氣像)을 흥(興)으로 표현했다.
2구는 개선장군(凱旋將軍)이 되고
마침내 제위(帝位)에 올라 천하(天下)를 호령하는
늠름한 기상(氣像)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3구는 창업(創業)도 중요하지만
수성(守城)은 더 어렵고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각오(覺悟)를 나타내고 있다.
대풍가비(大風歌碑)
시(詩)를 세겨놓은 비석(碑石)를 "대풍가비(大風歌碑)"라 하는데,
유방(劉邦)의 고향(故鄕)에 세워진
"강소성(江蘇省) 패현문화관(沛縣文化館)"에 비(碑) 두 개가 보존되어 있다.
그 중 오래된 비(碑)는
윗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세월에 풍화(風化)되어 글자가 흐릿하다.
따라서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비석(碑石)이다.
전설(傳說)에 따르면 동한시대(東漢時代)에 채옹(蔡邕) 혹은 조희(曹喜)가
비문(碑文)을 썼다고 막연하게 전해질 뿐이다.
또 하나는 원(元)나라 때인 서기 1306년에 세워진 것으로,
두 비석(碑石) 모두 대풍가(大風歌)가 세겨져 있다.
유방(劉邦)은 천하(天下)를 얻었지만
그것을 지키는 수성(守城)이 얼마나 어려운지,
축하연(祝賀宴)에서 부른 노래에서도 수성(守城)을 걱정하고 있다.
역사(歷史) 이래로 수많은 영웅(英雄)들이
천하(天下)를 차지했건만,
결국 지키질 못 하여 모두 멸망(滅亡)을 거듭했던 역사(歷史)를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치국(治國)이란 이렇게 어렵다.
예전이나 요즘이나 통치(統治)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보편타당(普遍妥當)한 부(富)의 고른 분배(分配)이다".
이것이 공평하지 않고 한곳에 치우치거나 부패(腐敗)하게 되면,
민중(民衆)은 어김없이 들고 일어나
나라를 사정없이 뒤엎었슴을 지난 역사(歷史)는 수도없이 일러주고 있다.
따라서 훌륭한 통치자(統治者)란...
"대다수가 수긍(首肯)하는 부(富)의 균형적(均衡的) 분배(分配)"를
잘 하는 지도자(指導者)를 가리킨다 해도 결코 과언(過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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