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청대는 홍등가(紅燈街)의 밤...!.
망국(亡國)의 현실(現實)에 서글퍼지는 나그네...!.
진회(秦淮)는 "진회하(秦淮河)"를 말하며
강소성(江蘇省) 남경시(南京市)에 있는 유명한 수향(水鄕)마을이다.
하루전에 소개한 이백(李白)의 명시(名詩)
"금릉주사유별(金陵酒肆留別)"의 뒤이어,
진회하(秦淮河)에서 지은 "두목(杜牧)"의 유명한 시(詩)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본 시(詩)는 진회하(秦淮河)에서 지은 이백(李白)의 시(詩)보다
한참이나 늦게 지어진 시(詩)이지만,
천하(天下)에는 더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두목(杜牧)은 이상은(李商隱)과 함께
만당(晩唐)을 대표하는 시인(詩人)으로
당(唐)나라 말기(末期)의 시인(詩人)이다.
그가 살았던 당(唐)나라 말기(末期)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라가 부패(腐敗)하다 보니
국운(國運)이 급속하게 기울고 있었다.
따라서 이 무렵에는 망국(亡國)을 안타까워하는 시인(詩人)들의
시(詩)가 봇물을 이뤘다.
조정(朝廷)은 통제불능의 파탄(破綻)에 이르렀으며,
황실(皇室)과 관리(管理)들은 향락(享樂)에 젖어 흥청이고
크고 작은 변란은 전국 각지에서 수없이 들고 일어났다.
그야말로 백성들의 원성(怨聲)이 하늘끝에 진동하던 암울한 시기였다.
현재의 진회하(秦淮河) 야경(夜景).
泊秦淮(박진회): 진회에 배를 대다
烟籠寒水月籠沙(연롱한수월롱사): 안개는 차가운 물을, 달빛은 모래밭을 감싸고,
夜泊秦淮近酒家(야박진회근주가): 이 밤 진회(秦淮)의 술집 가까이 배를 대었네.
商女不知亡國恨(상녀부지망국한): 기녀들 망국(亡國)의 한(恨)을 엇지 알까마는,
隔江猶唱後庭花(격강유창후정화): 강 건너엔 후정화(後庭花) 노랫소리 들려오는구나.
깊어가는 밤...
무심코 배를 댄 진회(秦淮)의 휘황찬란한 홍등가(紅燈家) 나룻터...
기루(妓樓)에서 간드러지게 들려오는 흥에 취한
기녀(妓女)의 노랫소리...
이 노래는 망국(亡國)의 노래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가 아니던가~
흥에 겨워 노래에 취한 기루(妓樓)의
저 여인이 어찌 망국(亡國)의 한(恨)을 알랴~
괜시리 나그네 마음만 서글퍼진다...
현재의 진회하(秦淮河) 야경(夜景).
위 시(詩)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후정화(後庭花)" 즉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에 대하여
부연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남북조(南北朝) 시대(時代) 진(陳)나라의 마지막 왕(王) 후주(後主)는
사치가 심하고 놀기를 매우 좋아했다,
그는 늘 연회(宴會)를 배풀고 빈객(賓客)들을 청하여
주색(酒色)에 빠져 지냈는데,
이때 불렀다는 노래가 후정화(後庭花)라는 곡이었다.
이 노래는 진(陳)나라 후주(後主)였던 "진숙보(陳叔寶)"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후전(後殿),
후정화(後庭花), 북전(北殿)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고려(高麗) 충혜왕(忠惠王)이 궁궐 뒤뜰에서 궁녀들과 어울려 음탕하게 놀면서
자주 불렀다고 문헌에 실려 있기도 하다.
고려(高麗) 제28대 충혜왕(忠惠王)은
입에 담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歷史)에서 가장 못된 패륜왕(悖倫王)으로,
음탕하기로는 타의 추종(追從)을 불허하는 잡쓰레기왕으로
취급받는 인물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우리나라의 옛 임금을 그런식으로 몰아부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분도 혹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의 행적(行跡)을 알고나면 내 심한 언행(言行)을 이해 하리라고 본다.
여기서 그 패륜(悖倫)의 행적(行跡)을 열거할 수는 없다.
아무튼 이 노래는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에 와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면 향악공(鄕樂工)을 뽑을 때
시험곡(試驗曲)으로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라는 말 많은 이 노래는
사실 가곡(歌曲) 형식의 연가(戀歌)인데,
당시(唐詩)에 가끔 등장하며
망국(亡國)의 한(恨)을 대표하는 노래로 인용되곤 했었다.
현재의 진회하(秦淮河) 야경(夜景)
진회하(秦淮河)의 흥청이는 홍등가(紅燈街)를 바라보면서...
기울어진 조국(祖國)의 암담한 현실에 절망(絶望)하는 지식인(知識人)의
탄식(歎息)이 시(詩)에 진하게 흐른다.
두목(杜牧)의 시(詩)는 본 블로그에 "산행(山行)"을 비롯해 두어 편 소개하면서
그의 삶을 들여다 봤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생략코저 한다.
어느새 또 연말이 다가왔다.
내년엔 내 주변의 모든 이웃들이
서로를 조금이나마 배려하는 너그러움을 갖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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