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高(등고): 높은곳에 오르다.
風急天高猿嘯哀(풍급천고원소애): 센바람 높은 하늘 잔나비 슬피 울고
渚淸沙白鳥飛迴(저청사백조비회): 맑은 물가 흰 백사장 휘도는 저 새.
無邊落木蕭蕭下(무변낙목소소하): 끝없이 끝없이 낙엽은 지는데...
不盡長江滾滾來(부진장강곤곤래): 어느 때나 다하랴 저 장강의 흐름은.
萬里悲秋常作客(만리비추상작객): 가을마다 만리 밖 나그네 되어
白年多病獨登臺(백년다병독등대): 한 평생 병 많은 몸 누대(樓臺)에 올라라.
艱難苦恨繁霜鬢(간난고한번상빈): 고통 속에 구렛나루 날로 희어 가노니
潦倒新停濁酒杯(요도신정탁주배): 노쇠한 몸 탁주마저 끊어야겠구나.
등고(登高)는
너무도 유명한 시(詩)라서 그리 설명이 필요치 않다.
중국(中國) 교과서(敎科書)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 국어 고문(古文) 교과서에
단골로 실리는 유명세(有名稅)를 타는 명시(名詩)이기 때문이다.
내 정확한 기억(記憶)은 잊었지만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하여튼 이 시(詩)를 배웠던 희미한 기억이 있다.
"등고(登高)"는 두보(杜甫)의 말년(末年) 작품(作品)으로
음녁 9월9일 중양절(重陽節)에 높은 누각(樓閣)에 올라가
장강(長江)의 가을 경치를 바라보며 읊은 시(詩)이다.
옛부터 중양절(重陽節)에는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고 나서,
벗들과 어울려 높은 산이나 정자(亭子)에 올라
국화주(菊花酒)를 서로 나누어 마시며 시(詩)도 짓고 풍류(風流)를 즐기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던 멋스러운 풍습이 있었다.
지금도 중양절(重陽節)은
중국(中國)의 중요 명절(名節) 중 하나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시(詩) 내용을 보면 가을날의 낙엽지는 정경(情景)과 강가의 쓸쓸한 풍경 속에
외로운 나그네의 슬픔과 노년의 처량한 탄식(歎息)이 섞여 있다.
싸늘한 늦가을 풍경 묘사를 배경으로
늙고 병들어 타향에서 떠도는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데,
두보(杜甫)의 생을 더듬어 보면 그가 그래도 걱정없이 살았던 시절이란
결혼 전 스무 살 무렵
강남(江南)의 장쑤성(江蘇省)과 저장성(浙江省)으로
여행을 다닐 때 뿐이었고, 그 나머지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로
고달펐던 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말년(末年)에는 지친 유랑생활로 병을 앓고부터는
거의 눈물 반 한숨 반으로 생을 보냈던 게 대부분임을 그의 시(詩)는 일러주고 있다.
"추흥(秋興)"이 그렇고 "등악양루(登岳陽樓)"가 그렇고
지금 소개하는 "등고(登高)"가 그렇다.
등고(登高)는 서기 767년 가을 두보(杜甫) 나이 56세 때,
그러니까 몇일 전에 소개한 등악양루(登岳陽樓)보다 1년 빠른 시(詩)로,
악주(岳州)에서 동정호(洞庭湖)로 들어오기 전
사천성(四川省) 기주(夔州) 서각(西閣)에 살 때,
채소를 심고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며 폐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무렵에 지은 시(詩)이다.
따라서 추흥(秋興)보다 1년 늦게 지은 시(詩)다.
본 시(詩)까지 두보(杜甫)의 시(詩)를 3편 소개 했는데...
나이별로 보면 "추흥(秋興)"이 가장 빠른 55세 때,
그리고 "등고(登高)" 56세,"등악양루(登岳陽樓)" 57세로 이어진다.
이 시(詩)를 지을 무렵 그는 가을로 접어들자
귀까지 먹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렸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이 무렵부터 두보(杜甫)는 향수(鄕愁)와 우수(憂愁)에 젖어 늘 눈물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허나 그런 고통스런 상황임에도
그의 시(詩)는 점점 그 무게를 더해 갔으며,
시(詩)의 절정을 이룬 시기가 바로 이 무렵 2~3년 정도로
고난과 고통은 오히려 내면에 쌓인 열정을 쏟아붓게 만들어
그를 시성(詩聖)의 경지로 올려놓았다.
"등고(登高)"는
두보(杜甫)의 일생을 통털어 지은 여러편의 시(詩) 가운데
가장 완숙도(完熟度)가 높은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분들이 많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두보(杜甫)의 시(詩)는
대략 1,470여 수 정도라고 하는데,
청년기에 지은 시(詩)들은 전하는 게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몇 백여 수는 넘지 않겠나 싶다.
이백(李白)의 시(詩)는
"육조(六朝)부터 안사(安史)의 난(亂)" 전(前)까지
낭만정신(浪漫精神)이 최고로 발휘 된 시풍(詩風)을 선도했다고 보며,
두보(杜甫)는 안사(安史)의 난(亂) 이후부터
현실주의(現實主義) 시풍(詩風)을 선도한 시인(詩人)이라고 보는 게 학계의 정설(定說)이다.
그런고로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는 시풍(詩風)이 확연히 달라,
같은 시기에 활동했지만 한시(漢詩)의 양(兩) 세계를 나눈
쌍벽이라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보(杜甫)의 시(詩)들을 읽으면 늘 느끼는 바이지만,
철저하게 사실(事實)을 묘사하고
세상사와 얼키고 설킨 인간의 심리를 깊게 그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거이(白居易)와 원진(元稹) 등이 두보(杜甫)의 시(詩)를 존중한 것도
철저하리 만큼 현실에 바탕을 둔,
풍류정신(風流精神)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두보평문(杜甫評文)에서 밝히고 있다.
바로 이런 현실적(現實的) 시풍(詩風)이 다음 시대인 북송대(北宋代)의
왕안석(王安石), 소식(蘇軾) 즉 소동파(蘇東坡), 황정견(黃庭堅) 등이 높이 평가했고,
오늘날까지 두보(杜甫)는 민중(民衆)을 위한 위대한 시인(詩人)으로
널리 존경을 받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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