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武林) 고수들의 영역 화산(華山)을 오르다,
화산(華山)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면서
이곳에서 파생된 전설이나 지명 등 서너 개를 덧붙일까 한다.
대부분 상식적으로 아는 것들이지만...
그냥 재미로 봐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한자(漢字)를 조금 섞어 쓰는 것은,
이해력(理解力)을 높임과
내 자신 공부를 위한 목적도 있으니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화산(華山)은 오악 중 한곳으로
보통 서악(西岳)으로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오악(五岳)은 고대 중국의 영토 범위를 상징하지만
꼭 국경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중원의 명산을 5개로 크게 나누어 말들 하는데
전에 황산(黃山)을 소개하면서도 밝혔듯,
동악태산(東岳泰山), 서악화산(西岳華山), 남악형산(南岳衡山), 북악항산(北岳恒山),
그리고 중악숭산(中岳嵩山)이다.
즉 동쪽은 태산, 서쪽은 화산, 남쪽은 형산이며
북쪽은 항산, 중앙은 숭산이다.
따라서 이들 오악(五岳)이 중원을 대표하는 명산으로 불렀다.
그 중 화산은 중원 서쪽의 명산이며
5악 중 가장 험난한 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에 도(道)를 닦던 동굴 72개와
도교 사원인 도관(道觀)이 20여 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와같이 도교사원(道敎寺院)이 많은 것은
도교(道敎) 제1의 성지(聖地)로 자리매김한 이유이기도 하다.
화산 입구에 서 있는 화산을 상징하는 대형 대리석 조형물.
화산(華山)은 샨시성(峽西省) 화음시(華陰市)에 있는 명산이다.
화음시(華陰市)는
"화산의 그늘 밑에 있는 고을"이라 하여
응달음(陰)자를 붙여 지은 지명이다.
시안(西安)에서 화산까지 거리는 약 120km로
차량으로 2시간 가량 걸린다.
중원(中原) 한복판을 지나는 진령산맥(秦嶺山脈)에 속한 산이며
이 산맥은 중국 남방인(南方人)과 북방인(北方人)을 구분하는
문화적 경계선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기도 한다.
역시 무림(武林)의 고향답게 가게마다 검(劍)을 전시 및 판매하고 있다.
중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술(酒)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過言)은 아니다.
어딜 가도 술 광고가 대부분이며 술을 파는 가게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종류도 엄청나게 많으며 보통 곡물을 숙성 증류하여 만든
고량주(高粱酒) 계통이 대분으로
도수도 45~75도까지 엄청나게 높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술은 빨리 취하고 깰 때 사람 잡는 뒷골 땡김 없이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이 넓은 땅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술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의 10대 명주(名酒)를 꼽아보면...
1)마오타이주(茅台酒), 2)오량액주(五糧液酒), 3)고정공주(古井貢酒), 4)서봉주(西鳳酒),
5)쌍구대곡(雙溝大曲), 6)양하대곡(洋河大曲), 7)두강주(杜康酒), 8)랑주(郞酒),
9)공부가주(孔府家酒), 10)로주특곡주(瀘州特曲酒)를 대충 꼽는다.
농촌 들녁마다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그런데 크기가 아주 작다.
보통 대추알 크기 보다 약간 크며 씨가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모두 다 접을 붙여 키운 나무로
밑둥이는 접 붙인 자국이 남아 있다.
오늘 올라가는 코스는
날씨가 좋지 않아 북봉 케이블카 코스로
가장 짧은 코스를 택했다.
화산 북봉(北峰)의 주봉(主峰)은 높이가 1,600m가 조금 넘는다.
다른 봉우리들에 비해 그리 높지 않지만,
3면이 모두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산세가 험한 곳이다.
화산 북봉 매표소 내부
이것이 티켓인데...
먼 중요한 것이 그리 많은지 얼굴 사진까지 찍고서야
셔틀버스에 오를 수 있다.
화산을 소개하는 안내판
한문과 영어로만 적혀 있다.
과거 중화민국 시절,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즉 장개석 총통이 이끄는 정부군(政府軍)과
마오쩌뚱(毛澤東) 즉 모태동이 이끄는 팔로군(八路軍)이
이곳에서 격전을 치뤘던 전적지로,
여덜 명의 팔로군 병사들이 목숨 걸고 수백 명의 정부군과 맞서 싸워 지켜냈다는 곳이다.
중국 공산당의 성지(聖地)이며
그들을 기념하는 8명의 석상이 조각되어 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절벽이 앞을 막는다.
모두가 커다란 한 덩어리로 된 화강암 암벽산이다.
아찔한 높이...
셔틀버스에서 내려 10여 분을 걸어 올라가자...
북봉(北峰)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에 도착했다.
케이블카 왕복 티켓
중국 인민폐로 150위엔이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5,500원로
중국 경제 실정을 생각하면 살인적인 요금이다.
올라가며 내려다 보니...
절벽 사이 사이에 단풍이 곱다.
정상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도 있다.
수천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등산을 좋아하는 자는 천천히 올라가는 것도 좋으며
실제로 배낭을 매고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도 내려다 보인다,
황산(黃山)에는 소나무가 바위틈에서 많이 자란다,
그러나 화산(華山)에는 소나무가 드물며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무는
물푸레나무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가을이면 이렇게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20여분 간을 타고 올라와 케이블카에서 내렸다.
이곳부터는 걸어서 올라간다.
화산은 평평한 땅이 없다.
따라서 건물들도 대부분 위태롭게 절벽에 붙어 있다.
드디어 능선에 도착했다.
바람이 정말 세차다.
"기험천하제일산(奇險天下第一山)" 서악(西岳)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문구다.
중국 오악(五岳) 중에서 "가장 기이하고 험하며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명산"이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청(淸)나라의 역사가이며 지리학자인 위원(魏源)은
"화산여립(華山如立)"이라고 했다.
"화산이 섯다"는 말인데,
화산이 섰다는 말은 기암절벽으로 가득하다는 의미를 표현한 말일께다.
화산(華山)의 화"(華)"는 꽃을 상징한다.
옛날에는 꽃화"(花)"자란 글자가 없었으며
나중에 생긴 글자이다.
따라서 꽃을 상징할 때도 "빛날화(華)"자를 썼으며
화산(華山)이란 이름은 꽃봉우리 즉
연꽃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고로 화산에는
다섯개의 큰 봉우리가 있으며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연꽃을 닮았다고 한다.
이와같이 험한 바위봉들이 모여 꽃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 화산의 모습이다.
풍수학자들은 화산의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뤄진 통바위산으로,
강력한 기(氣)가 흘러나와
남성적(男性的)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그래선지 기(氣)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화산은 늘 북적거린다.
중국 역사서(歷史書)는...
화산을 중심으로 주변 300리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거주지였다고 적고 있다.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중국 고대의 전설적 제왕(帝王)을 말하며,
이들로부터 중국 역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3황(三皇)은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여와씨(女媧氏)를 말하며,
달리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이라기도 한다.
삼황 가운데 여와씨(女媧氏)는 여신(女神)이다.
복희씨(伏羲氏)는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했으며,
신농씨(神農氏)는 농사법을,
여와씨(女媧氏)는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5제(五帝)는
황제헌원(黃帝軒轅), 전욱고양(顫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제요방훈(帝堯放勳), 제순중화(帝舜重華)를 말한다.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의 "황제(皇帝)"란 칭호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모두 이곳 화산을 중심으로 있었기에
화산이 중화민족(中華民族)의 뿌리라는 말이 그래서 탄생했다.
화산은 수많은 전설을 낳은 산으로
바위에 여러 전설 속 고사(古事)들이 적혀 있다.
그 중 하나만 소개하자면...
"거령벽산(巨靈劈山): 거대한 산신령이 산을 쪼개다"란 말이
바위에 세겨진 것도 있다,
이 말은 거령(巨靈)이라는 초능력자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황하(黃河)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던 화산을 손발로 뒤흔들어 두 동강을 내버렸다.
화산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황하(黃河)가 흐르게 됐다고 한다.
이와같은 전설을 담은 글들이 바위에 새겨진 것이 화산에는 유독 많은데...
이런 전설에서
무협(武俠)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비석에 적힌 "화산논검(華山論劍)"은
무협소설가(武俠小說家) 김용(金庸) 선생이 지은 소설(小說)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8편"에 나오는
"화산논검대회(華山論劍大會)"로,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과 신조협려(神雕俠侶)에서 천하제일을 가리기 위한 무림 대회를 말한다.
이곳에서 검의 고수들이 펼치는
하늘을 가르는 신비한 무술(武術)과 검술(劍術)에
정신이 혼미했던 장면들이 생각난다.
화산을 오르다 보면 양쪽으로 천길 낭떠러지인 아슬한 바위 능선 위로
등산로가 나 있다.
내려다 보면 아찔한 현기증이 난다.
그 옛날 누가 이 길을 조성했으며,
또 누가 이 길을 걸어갔을까~??.
명산(名山)은 많은 전설들을 품고 있다.
화산도 마찬가지 이다.
"화산에는 오로지 한 길만 있다"는 말이 있다.
결국 모든 길들은 한 길로 모아지고 연결된다는 말이다.
그 한 길도 절벽의 틈새나 칼날 능선 길이기에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좁디 좁은 길들이 많으며,
양쪽은 아찔한 낭떠러지가 대부분이다.
길을 가는 사람은 그야말로 곡예사 수준인 셈이다.
중원(中原)의 서쪽에 있는 화산은
옛부터 하늘로 통하는 문(門)이 있는 산이라고 했다.
이 말을 생각해 보면
화산이 왜 도교(道敎)의 성지인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중국인들은 붉은색을 유달리 좋아한다.
이것도 화산에서 유래됐다..
화산 가는 길에 "자기동래(紫氣東來)"라는 문구가 바위에 새겨진 걸 가끔 보게 되는데,
"자줏빛 상서로운 기운(氣運)이 동쪽에서 온다"는 의미다.
이 말의 유래는 중국 고대 주(周)나라 때,
변방(邊方)의 성문(城門)인 함곡관(函谷關) 관리였던 "윤희(尹喜)"라는 자에게서 비롯된다.
그는 천문역법(天文曆法)에 매우 밝았다고 한다.
어느 날 그가 누각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니...
동쪽에서 안개 같은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더니 서서히 서쪽으로 왔다.
그 모습이 마치 하늘을 나는 용과 같았다.
틀림없이 동쪽에서 훌륭한 성인(聖人)이 이쪽으로 올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는 목욕재계하고 귀한 손님을 맞을 채비를 했다.
몇 달 뒤 과연 "노자(老子)"가 동쪽에서 푸른 소를 타고 왔다.
윤희(尹喜)가 마중 나가 그를 맞았고,
그의 가르침을 받들었다.
이때 노자(老子)에게 간곡하게 청하여 책을 한 권 받았는데
그 책이 바로 약 5,000자로 된 "도덕경(道德經)"이다.
옛날 중국의 천문(天文) 풍수사(風水師)들은
하늘의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길흉(吉凶)의 징조를 예견했다.
후대(後代) 사람들은 이를 두고 "자기동래(紫氣東來)"라는 말로 상서로움을 나타냈다.
나아가 자주색이 상서러운 기운(氣運)을 준다고 해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로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황제(皇帝)가 살았던 베이징(北京)의 "자금성(紫禁城)" 역시
자주색을 뜻하는 말이며
상서로운 기운이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어느 곳을 가든지 붉은 자주색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중국인 특유의 복(福)을 부르는 하나의 전통이다.
이제부터는
무협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그 중에서도 위에서 잠시 언급한, 중국 특히 화산과 관련된
유명한 작가 "김용(金庸)"에 대한 이야기 이다.
몇일 전 10월 30일 94세의 나이로 타계한
신필(神筆)로 불렸던 무협소설(武俠小說)의 대가 김용(金庸)은
신조협려(神鵰俠侶) 씨지즈 중 제 8권의 제목을
"화산 정상에서"라고 달았다.
그는 많은 히트작들을 연이어 집필하며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을 열광시켰다.
몸은 현실에 두고 마음은 거침없이 떠도는
강호(江湖)의 협객(俠客)들과 함께 살았던 진정한 자유인(自由人)이었다.
그의 많은 작품 중 생각나는 대로 대충 꼽아보면...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 영웅문(英雄門), 벽혈검(碧血劍),
사조영웅전(射鵰英雄傳), 신조협려(神鵰俠侶),
녹정기(鹿鼎記),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천룡팔부(天龍八部), 소호강호(笑傲江湖), 등...
모두가 보석 같은 작품들이며
이들 작품 모두는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
무협펜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입시켰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主席)도
조화(弔花)를 보내고 매우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TV에서 보았다.
그의 작품 중 "영웅문(英雄門)"의 주 무대가
이곳 화산(華山)의 북봉(北峰)이다,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펜들은
갈바람에 번뜩이는 서슬퍼런 칼날의 섬뜩함과
상상을 초월하는 신기에 감탄을 연발 한다.
지난날 나는 의리(義理)에 살고 정의(正義)에 목숨 거는
무림(武林)의 고수(高手)들이 펼치는 스릴 넘치는 검술(劍術)과
얼굴 화끈한 색정(色情)에,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재미에 푹 빠져든 적이 많다.
무당파(武當派), 소림파(少林派), 그리고 화산파(華山派) 등...
낯 익은 무협(武俠)의 파벌(派閥)들은
원래 존재했던 종파(宗派)들이었는데,
김용(金庸) 선생이 강호(江湖)의 무림집단(武林集團)으로 재 탄생시켰다.
한 예로 무당파(武當派)는
13세기 원(元)나라 때 장삼봉(張三丰)이 만든 도교(道敎)의 한 종파(宗派)이다.
따라서 이곳 화산(華山)은 김용(金庸) 선생이
화산파(華山派)의 고향으로 멋지게 만들어 놓았다.
실제로 그는
고령의 나이에 이곳 화산의 북봉(北峰)에 올랐었다.
화산에 올라 바라보면...
무림(武林)만이 아니더라도
이곳은 신선(神仙)이 살만한 선경(仙境)이란 것을
금새 느낄 수 있으며 산세의 웅장함과 기이함에 감탄을 하게 된다.
화산은 중국 최초의 종교(宗敎)라고 할 수 있는
도교(道敎)의 본향(本鄕)이다.
도교(道教)는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에 바탕을 둔 종교(宗敎)로 발전하였으며,
나중에 들어온 불교(佛敎)와 합류하면서 선종(禪宗) 즉 선불교(禪佛敎)로 변하여
중국 불교(佛敎)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된다.
화산에 눈이 날린다...
금년 들어 첫눈을 이곳 화산에서 맞았다.
우리나라는 단품으로 곱게 물들어
온 산이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덮였을 것인데...
나는 지금 찬바람 속에 첫눈을 맞고 있다.
이 순간 행복하다... ^^.
삼국지(三國志)로 잘 알려진
후한(後漢) 말기 헌제(獻帝) 때 승상(丞相) 조조(曹操)는
"득중원자득천하(得中原者得天下)"라 하여,
"중원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 라고 했다.
그 중원(中原)의 "중(中)"과 화산의 "화(華)"가 합쳐져
지금의 "중화(中華)"가 됐다.
따라서 고대국가(古代國家) 때부터 화산은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명산(名山)이었다.
중원(中原) 천하(天下)를 통일한 황제(黃帝)는 반드시
화산에 오르거나 화산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
고대 역사에서 56명의 황제(黃帝)가
화산을 순유(巡遊)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문헌(文獻)은 전한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황제는 한 명도 없다.
화강암 덩어리인 통바위산으로 된 화산을 오른다는 건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화산에는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바람이 세차게 분다.
그러나 마음만은 훈훈하고 포근하다...^^
이렇게 올해 첫눈을 화산에서 맞으며 풍성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내가 아는... 아니 나를 아는... 아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샨시성(陝西省) 화음시(華陰市) 화산(華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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