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 등산

4), 농월정(弄月亭)... 경남 함양군

4), 농월정(弄月亭)

 

조선(朝鮮) 선조(宣祖) 때 관찰사(觀察使)와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지낸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가,
정계(政界)에서 은퇴(隱退)한 뒤 지은 정자(亭子)로 알려져 있다.
농월정(弄月亭)이라는 이름은 "달을 희롱한다"는 뜻이며,
농월정(弄月亭) 앞으로 넓게 펼쳐진 반석(盤石)을 달바위라고도 하는데,
바위 면적이 정자(亭子) 앞으로 1,000여 평 가량 넓게 형성 돼 있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몇해 전 화재(火災)로 농월정(弄月亭)은 주춧돌을 놓았던 흔적만 겨우 남긴 체 사라지고 없다.
물놀이를 온 어떤 몰상식(沒常識)한 야영객이

정자(亭子)에서 음식을 조리하다 불을 낸 것으로 알려지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불과 얼마전 국보(國寶) 1호인 숭례문(崇禮門)이 어떤 노인(老人)의 화풀이 방화(放火)로 불타고 새로 지었듯,
문화재(文化財)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認識)이 너무나 부족한 게 현실이다.

 

 

 

 

 

 

 

 

 

 

 

 

 

 

 

 

 

 

 

 

 

 

 

화림동계곡(花林洞溪谷)에서 가장 넓고 아름다운 곳이 바로 농월정(弄月亭) 앞이다.

계류(溪流)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면서 흘러가며
주변의 높은 산들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치(風致)를 드러낸다.
따라서 이곳은 사시사철 행락객(行樂客)과 유람객(遊覽客)이 끊이질 않고 찾는 명소(名所)로,
주변에 식당들과 방갈로가 도로변과 물가를 따라 들어서 있다.


그리고 물가 작은 마을에는 박명부(朴明榑)가 낙향(落鄕)한 뒤 후학(後學)들을 가르치며 길러냈다는
종담서당(鍾潭書堂)이 있다.
그런데 관리가 되질않아 지붕 위의 기왓장에는 5~6년은 돼 보이는 아카시아나무와 잡초가 군데군데 뚫고 올라와 금새 허물어질 듯 하고,
마당에는 잡초(雜草)가 우거져 귀신(鬼神) 소굴처럼 변해버렸다.

후손(後孫)들과 지역(地域) 주민(住民),

그리고 관계(官界) 기관(器官)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을텐데 내방쳐둔 이유를 모르겠다.

상인들도 호객행위(呼客行爲)로 장사에만 열을 올릴 게 아니라

주변 청소 좀 하고 장사도 하시길 제발 부탁한다.


천혜(天惠)의 자연경관(自然景觀)과 역사성(歷史性) 깊은 문화재(文化財)를

선물로 받는 특혜(特惠)를 누리려면,
그에 따른 책임(責任)과 의무(義務)가 반듯이 수반(隨伴) 되야 함은 당연한 이치(理致)이다.

역사(歷史) 깊은 문화재(文化財)와 아름다운 자연경관(自然景觀)은 하늘이 내린 지역주민들의 공동 재산(財産)임을 왜 모르는가~!

농월정(弄月亭)과 종담서당(鍾潭書堂)도 본래의 모습으로 하루빨리 복구해야 하며,

애착(愛着)을 가지고 다듬고 보호하는 성숙(成熟)된 주민(住民) 의식(意識)이 참으로 아쉽다.


어느 곳이든 그 지역(地域)의 이미지는 그곳에 살고있는 주민들의 얼굴이며 양심(良心)과 직결됨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농월정(弄月亭) 주변의 상인들도 당장의 이익(利益)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眼目)과 애정(愛情)으로 문화재(文化財)를 가꾸고 보살피면,
찾아오는 이 점점 늘어나 식당업(食堂業)으로 살아가는 이 지역 주민들에게 커다란 이득(利得)이 돌아감은 자명(自鳴)한 사실이다.


달을 농락할 정도로 아름답고 풍류 넘치는 농월정(弄月亭)을 기대하고 먼 길을 왔다가
얼굴 붉히고 돌아서는 나도,

안타깝고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