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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등산

3), 동호정(東湖亭)... 경남 함양군

3), 동호정(東湖亭)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선조(宣祖)의 의주(義州) 몽진(蒙塵)을 도와 공(功)을 세운 동호(東湖) 장만리(章萬里)를 기리기 위해,
그의 9대손으로 가선대부오위장(嘉善大夫五衛將)을 지낸 장재헌(章材憲)등이 중심이 되어
1895년 건립한 정자(亭子)이며 1936년에 중수(重修)를 한 번 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역대(歷代) 왕(王) 중에

존경(尊敬)을 받을만한 임금이 몇 분이나 되겠냐만서도,
특히 조선(朝鮮)의 제14대 왕(
王) 선조(宣祖)는 참으로 한심하고 비굴(卑屈)한 임금이었다.
진주의 진주성(晉州城)과 부산의 동래성(東萊城)이 차레로 왜구(倭寇)에 함락되고,

신립(申立)이 이끌던 관군(官軍)마저 충주(忠州)의 탐금대(彈琴臺)에서 배수진(背水陣)을 치는 오작전(誤作戰)으로 전멸(全滅)하고 만다.
궁궐에 앉아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한 선조(宣祖)는 덜덜 떨며 궁궐을 뛰쳐나와,

 의주(義州) 즉 지금의 압록강변에 있는 신의주(新義州) 부근 국경(國境)까지 뒤도 돌아보지않고 도망을 친다.
밤 낮을 가리지않고 도망을 치면서 개울을 건너고 산을 넘어야 하는 험난한 길에서,
선조(宣祖)를 들쳐업고 앞장서서 뛴 사람이 바로 장만리(章萬里)란 무사(武士)였다.
그는 아마 힘께나 쓰던 장수(將帥)같았는데,
이를 고맙게 여긴 선조(宣祖)가 그 공(功)을 인정하여 벼슬을 올려주고 치하(致賀) 했다.

이같은 사실을 가문(家門)의 영광(榮光)으로 여긴 후손들이 정자(亭子)를 짓고 그의 아호(雅號)를 따서 동호정(東湖亭)이란 현판(懸板)을 걸었다.


선조(宣祖)는 겁이 엄청 많았으며 무능하기 짝이없는 임금이었다.
그의 한심하고 굴욕적(屈辱的)인 이야기는 많기도 한데, 여기서는 동호정(東湖亭)을 소개하는 자리라서 이만 그치기로 한다.

 

 

아무튼 동호정(東湖亭)은

군자정(君子亭)에서 약 2km 하류(下流)의 옥녀담(玉女潭) 가에 있으며,

냇가에 넓은 너럭바위는 옛날 결혼식이나 장례식등 행사 때 마당에 치던 커다란 천막 즉 차일(遮日)을 닮았다하여 차일바위라 불린다.

동호정(東湖亭)은 화림동계곡(花林洞溪谷)의 여러 정자(亭子) 중 가장 크고 채색(彩色)이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5량 구조로 된 중층(中層) 누각(樓閣) 건물로,
정면의 좌측에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이 설치되어 누대(樓臺)를 오르내린다.
동호정(東湖亭)도 오랜 세월의 풍상(風霜)으로 누수(漏水)와 부식(腐蝕)이 심해 최근에 말끔하게 중수(重修)를 마쳤다.
정자(亭子)의 하부기둥은 자연목(自然木)을 다듬지 않고 원형그래로 사용하여,
투박한 멋이 묻어난다.
아마도 기둥이 밤나무인듯 하나 이도 세월의 풍상(風霜)으로 군데군데 부식(腐蝕)이 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