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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등산

1), 거연정(居然亭), 화림동계곡 (花林洞溪谷)... 경남 함양군

화림동계곡(花林洞溪谷)

 

덕유산(德裕山), 월봉산(月峰山), 거망산(擧網山), 황석산(黃石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발원한 계류(溪流)는,
함양땅의 화림동계곡(花林洞溪谷)을 흐르면서

기암(奇巖)과 넓은 반석(盤石)을 지나며 절경(絶景)을 이룬다.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정자(
亭子)가 들어서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

옛부터 팔곡팔정자(八谷八亭子)를 두었다는 화림동계곡(花林洞溪谷)은 함양지역을 정자(亭子)의 고장으로 불리게 했다.
이 아름다운 화림계곡(花林溪谷)이 빚어낸 풍광(風光)에,
농월정(弄月亭), 동호정(東湖亭), 거연정(居然亭), 군자정(君子亭) 등 여러 정자(亭子)들이 세워지면서
낭만적(浪漫的)인 정자문화(亭子文化)를 화려하게 꽃 피웠다.
몇 해 전에 농월정(弄月亭)과 동호정(東湖亭)만 보고 그냥 훌쩍 떠난지라,
이번 여행길에 지난날 못 만난 군자정(君子亭)과 거연정(居然亭)을 비롯해 동호정(東湖亭)과 농월정(弄月亭)을 다시한번 돌아봤다.
철 따라 핀 꽃이 숲을 이룬다는 아름다운 이름의 "화림동계곡(花林洞溪谷)"을

4회로 나누어 소개코저 한다.

 

 

1), 거연정(居然亭)


고려(高麗) 말(末)부터 경상도관찰사 즉 안렴사(按廉使)와,

집현전(集賢殿) 대제학(大提學),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지낸 전오륜(全五倫)의 7대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한 전시서(全時敍)가,
1613년에 중추부사(嘉善大夫)를 지낸 화림제 전시숙(花林齊 全時叔)의 공적(功績)을 기리기 위헤
억새를 엮어 지붕을 덮은 

초가정(草家亭)를 건립한 것이 그 시초(始初)이다.
그후 1640년경 전시서(全時敍)는 근처에 서산서원(西山書院)을 열고 후학(後學)들을 길러낸다.
1853년 화재(火災)로 서원(書院)이 불타자 이듬해 복구하였으나,
15년이 지난 1868년 고종(高宗) 때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에 따라 서원(書院)은 완전히 철거되고 만다.
1872년 전시서(全時敍)의 7대손인 전재학(全在學), 전민진(全愍鎭) 등이 억새지붕의 거연정(居然亭)을 허물고,
철거한 서산서원(西山書院)의 재목들을 골라서 다시 건립 하였다.

그후 1901년에 한번 증수(重修)한 것이 오늘에 전한다.
거연정(居然亭)은 봉전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천(南江川)의 암반 위에 건립된 아름다운 정자(亭子)로,

화림동계곡에서 가장 운치(韻致)가 좋기로 이름난 정자(亭子)이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어지자 출입을 막고 한창 보수공사(補修工事) 중이라,

가까이서 볼 수 없었던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