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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등산

미륵산(彌勒山)에서 공중부양(空中浮揚)을... 전북 익산

 

익산(益山) 미륵산(彌勒山)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 삼기, 낭산면등 3개면에 걸쳐진 산이다.
봉우리들로는 암봉 장군봉

그리고 우제봉이 남쪽으로 능선을 따라가며 이어졌다.
그중 장군봉이 미륵산 주봉이며 높이는 해발 430m로 알려져 있는,
 

작고 아담한 산이지만
익산지역은 평야가 많은 지역이라 큰 산이 없으므로,

이 지역에서는 이름 꽤나 난 명산(名山)으로 손꼽힌다.
문화재로는 "미륵산성(彌勒山城)"이 있고

아래 백제시대(百濟時代) 대 가람(伽藍)이었던 "미륵사지(彌勒寺址)"가 있다.

 

미륵산성(彌勒山城)을 두고

어떤 문헌에는 고조선(古朝鮮) 때 기준왕(箕準王)이 이곳으로 내려와 성을 쌓았다고 하여

"기준성(箕準城)"이라 부르기도 한다지만,
신빙성이 거의 없은 이야기다.
삼한시대(三韓時代) 마한(馬韓)의 여러나라 중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미륵산성(
彌勒山城)도 그때 쌓은 것으로 추정 된다.

 

만약 백제시대(百濟時代) 조성된 산성(山城)이라면 어딘가 짧은 기록이라도 남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산 아래가 백제시대(百濟時代) 최대 가람(伽藍)인

미륵사(彌勒寺)가 위치했던 곳으로 보아,

그와 더불어 최소한 조성연도(造成年度) 쯤은 기록으로 남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륵사(彌勒寺) 창건(創建)에 관해서는 미륵사 9층석탑 탑신(塔身)에서,

해체 과정에 사리함(舍利函)과 함께 발견 된 금판(金版)에 기록을 남겼다.

그에 관한 내용은 잠시 후 사진과 함께 소개하기로 하고...
하여튼 또 다른 문헌에는 미륵산성(彌勒山城)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의 아들

신검(神劍)를 토벌하여 마성(馬城)에서 항복(降伏)을 받았다"라고 기록 했는데,
그 마성(馬城)이 바로 이 산성(
山城)을 말한다.

그러니깐 결국 후백제(後百濟)가 최후(最後)를 맞은 건 바로 익산(益山) "미륵산(彌勒山)"인 셈이다. 

전라북도 과학고등학교와 연수원 옆이 미륵산 제2코스 주차장.

 

 이번이 세 번 째 등산인데...

요변 등산은 한여름 우기에 오게 되니,

습기도 엄청 나고 기온이 높은지라 가만이 서 있어도 목줄기에 땀이 흐른다.

오늘 새벽까지 비가 왔으니 그 습기가 오죽하랴~

 

 약삭빠른 장사꾼은 이미 등산로 초입에

과일 좌판을 열고 땀에 쩔은 산객들을 유혹한다.

 

 먹음직스런 복숭아가 제철이 왔습을 알리고...

 

 잘 정비 된 등산로...

 

 초입부터 공포의 계단...

 

 등산을 하시는분들은 알지만 사실 계단은 안 반갑다.

첫째로 단조로운 걸음이라 무척이나 지루하고,

둘째는 보폭이 일정하므로 움직이는 근육만 반복되므로 피로를 쉬 느낀다.

 

 또한 하산시에는 체중이 망치 역활을 하여 

무름에 망치를 두두리 듯 일정한 순간적 압력이 가해짐으로

그 반복적인 충격으로 인해 관절에 무리가 가기 쉽다.

따라서 관절이 좋지 못한 사람들은 계단을 타고 하산하는 것을 일부러 피하는 게 좋다.

 

 부득이 계단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면

발 앞금치부터 땅을 디디고 다음에 뒷금치를 디뎌 주어

일정한 충격을 앞금치가 흡수하게 하고 내려서는 게 도움이 된다.

 

 등산용 스틱을 집고 다니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라 하겠다.

미륵산을 오르다 보니...

어찌 된 일인지 필요 없는 나무 울타리 난간을 올라가며 목장 울타리처럼 쭉~설치했다.

그런데 썪지 말라고 그랬는지

표면에 무슨 광택제을 두텁게 발라 놓은 것에 오히려 곰팡이가 잔뜩 끼어 더럽고 흉물스럽다.

아니 함만 못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로...

이 무슨 쓸모 없는 낭비란 말인가 그래~.

 

 미륵산은 처음부터 정상 끝까지 계단으로 연결된 등산하기 매우 힘든 산이다.

 

공포의 계단...

산을 보호하고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 했겠지만...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산을 올라가는 도중에 여러 명을 만났는데,

계단을 벗어나 일반 산길로 오르고 내려가는 등산객이 훨씬 많았다.

 

 

 바로 이런 끝 없는 샛길들이 그걸 말해준다...

 

 

드디어 암봉에 올랐다.

 

 저 아래 미륵사지(彌勒寺址)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뿌연 스모그가 시야를 좁게 만들고 답답하게 한다.

비가 오고 난 이튼날도 이런데, 평소엔 어떨까~?

박무(薄霧)와 중국에서 밀려 온 스모그 때문이다.

이젠 맑은날 본다는 건 참으로 어렵게 됐다. 이를 어쩌랴~~!

하기사 어제 오늘 문제도 아닌데...

앞에서 밝혔 듯 미륵사(彌勒寺)에 관한 이야기 조금만 하고 가고자 한다.

  

미륵사(彌勒寺)는

백제(百濟) 제30대 무왕(武王: 재위 600-641년) 때

왕후(王侯)의 도움으로 창건(創建)한 절이라는 내용이 밝혀졌다.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듣고 배운 설화(說話)에서는

무왕(武王)과 그 왕비(王妃)인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의 딸 선화(善花)의

드라마틱한 로멘스를 배웠지만,
이번에 새롭게 발견 된 기록에서는 내용이 좀 다르다.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石塔) 해체 과정에서 사리함이 발견 됐는데,

그 사리함(舍利函)과 함께 발견 된 금판(金版)에 세겨진 글에

미륵사(彌勒寺) 창건(創建)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새롭게 발견 된  금판(金版)의 기록에 보면(아래 사진)

무왕(武王)의 왕비(王妃) 즉 선화(善花) 공주(公主)가 백제(百濟) 최고 관직(官職)인

좌평(佐平)의 딸이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주목 된다.


 또한
"무왕(武王)의 왕후(王后)가 재물을 희사 해 가람(伽藍)을 창건(創建)하고

기해년(己亥年)에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왕실(王室)의 안녕을 기원 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나아가 이 기록에는
"백제(百濟) 왕후(王后)가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선인(善因)을 심어"라는 내용이 분명하게 쓰여 있다.
"사택(沙宅)"은 당시 백제(
百濟)의 8대 성씨(姓氏) 중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위 사진 중 우측에 흰색원의 높다란 사각형 건물이

미륵사지 9층 석탑을 해체하여 연구 복원하는 가건물이다.

(문화재청에서 빌려온 사진)

 

삼국유사(三國有史)에서는 미륵사(彌勒寺)를 창건(創建)한 주체를

백제(百濟) 무왕(武王)과 그의 왕비(王妃)로,

즉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의 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라고 기록 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은 바로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三國有史)의 내용을 배운 것이다.

미륵사(彌勒寺)를 무왕(武王)과 그의 왕비(王妃)가 창건(創建)했다는 것은 맞지만,

무왕의(武王) 왕비(王妃) 즉 선화(善花)가 신라(新羅) 공주(公主)였다는 것은 좀

사실(事實)과 다른 듯 하다.

 

아시다시피 고려시대(高麗時代) 김부식(金富軾)이 지은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정사(正史)로써,

역사(歷史)의 사실(事實)을 중심으로 기록한 책이고.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三國有史)는 야사(野史)로 즉 야담(野談)을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야사(野史)는 주로 구전(口傳)과 전설(傳說)을 중심으로 기록하다보니

사실성(寫實性)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단점(短點)이 있다.

 

 

스모그가 얼마나 두터운지 익산시까지도 가물가물 하다.

 

 줌으로 당겨 봤으나 역시...

 

 

 

 

 금마...

 

 

 

 아~! ...

 

 

 

 

 

 저 아래 저수지가 금마지로 한반도지형을 닮았다는데...

시계가 선명하지 않으니 안타깝다.

 

 돌들이 유난히 많은 것을 보니...

여기부터가 미륵산성 일부로 보인다.

 

 미륵산 주봉 밑 아이스크림 가게

 

 

 남동쪽을 보니 채석장이 보인다.

이곳 익산이 석물들로 유명한 이유가 바로 지척에 석산이 있어서 그렇다는 걸 이제서 알았다.

 

저 석산 뒤가 여산 "육군부사관학교"인데...

어리어리 하여 구분이 힘들다... 

 

KT 송신탑

 

ㅌ 미륵산 등산 기념으로 묘기 하나 선 뵈고 내려갈까 한다.

 

자주 보여주는 묘기가 절대로 아니다. 이번 놓치면 구경하기 정말 어렵다.

단전에 기를 넣고~ "얍~~ 으라차~!!"

 

 드디어~~ 떳다 !!!

"공중부양(空中浮揚) !!!

 

수십년 수도한 무림(武林)의 고승들도 극히 어렵다는 기가 막힌 묘기!!.

"공중부양(空中浮揚)"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주특기가 바로 "공중부양(空中浮揚)"이다.

 

 

 아무튼... 미륵산 정상 장군봉에는

누군가가 세운 태극기가 걸려 있다.

 

 패랭이꽃

 

 

 싸리꽃

 

 

 

 발길을 돌려 내려오다 보니 우측 골에

아담한 저수지가...

 

 

다시 계단을 밟고 내려 갈 걸 생각하니 벌써 다리가 휘청인다.

일부 등산객들은 아에 계단을 벗어나 샛길로 내려간다.

계단은 오르기 보다 내려가기가 더 어렵다는 걸 저분들은 잘~ 아시는 듯 했다.

이왕 온 거 샛길 보다는 정코스로 오고 가야지...

왕복으로 3.2km 정도의 짧은 산행 코스지만

가파른 계단과 장마철의 높은 습도와 온도 영향으로 비지땀을 많이 쏟은 등산이었다.

 

산을 내려와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여산휴게소에 이르자

천둥 번개와 함께 앞이 안 보이도록 소나기가 퍼붓는데...

하마터면 장대비에 떠내려갈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