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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리고 이야기

청포도... 이육사(李陸史)

이육사(李陸史)의 시(詩) "청포도"

靑(청)포도가 아닌

덜 익은 "풋포도"인가~?.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항일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의 대표작 "청포도(靑葡萄)"에서
청포도가 연둣빛 포도가 아니라

"풋포도"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기한 학자(學子)가 있다.


한국근현대사(韓國近現代史) 연구자인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계간지(季刊誌) "역사비평(歷史批評)" 2016년 봄호(114호)에 실린 육사(陸史)의
"청포도 재해석― 청포도와 청포(靑袍) 그리고 윤세주(尹世胄)"라는 논문(論文)에서
"이 시(詩)에서 청포도는 품종으로서의 "청"포도가 아니라

익기 전의 "풋"포도여야 제대로 독해된다"고 주장했다.

 

도 교수는 이육사(李陸史)의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에는,

일제시대는 물론 지금도 청포도 재배 농가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육사(陸史)가 시상(詩想)을 얻은 곳이

청포도가 재배되던 포항 동해면의 "미쯔와포도원"이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당시 청포도는 와인(Wine) 제조용이었을 뿐,
시(詩)에 나오는 것처럼

손님 접대용으로는 사용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청(淸)나라 때 간행된 한자사전 "강희자전(康熙字典)"에 따르면

"청(靑)"이란 접두어(接頭語)는
"생물(生物)이 태어날 때의 색상(色相)"을 의미하며,
우리말 "풋"에 해당하는데 이 시(詩)에서 "청포도"는 그런 뜻이라는 것이다.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이란 부분도
청포도는 물이 들지 않기 때문에 풋포도로 해석할 때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도 교수는 시(詩)에서 "청포도"

아직 무르익지 않은 우리 민족(民族)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육사(陸史)는 지인(知人)에게

시(詩) "청포도"에 대해 "내 고장은 조선(朝鮮)이고 청포도는 우리 민족(民族)인데,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民族)이 익어간다.
그리고 일본(日本)은 머지않아 끝장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도 교수는 또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에서
"청포"를 "벼슬아치가 공복(公服)으로 입던

"푸른 도포(道袍)"로 해석하여

시(詩)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일부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중국(中國) 한시(漢詩)에서
청포(靑袍)는 비천한 사람이 입는 옷이며

중국(中國)에 망명한 우리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들이 주로 입었다"고 주장한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14대 손(孫)인 이육사(李陸史)의 시(詩)들은 

중국의 한시(漢詩)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 시(詩)에서 육사(陸史)가 기다리던 "손님"으로

도 교수는 가장 가까운 동지(同志)였던 "윤세주(尹世胄: 1901~1942)"를 지목했다.


경상도 밀양 출신인 그는 육사(陸史)와 친분이 깊었고,

1932년 9월 함께 의열단(義烈團)에 합류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던 인물이다.


육사(陸史)는 1933년 7월 귀국 직전

아끼던 인장(印章)을 그에게 선물했고,
1941년 1월 발표한 산문(散文) "연인기(戀印記)"에서 그를 애틋하게 그리고 있다.


윤세주(尹世胄)는 김원봉(金元鳳)과 함께

조선민족혁명당(朝鮮革命黨)과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만들어

항일운동(抗日運動)을 계속했으며,
1942년 태항산(太行山) 전투에서 전사했다.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獨立運動)을 하던 육사(陸史)는

1943년 서울에서 체포돼 베이징(北京)으로 송치됐고

이듬해 1월 옥사(獄死)했다.

 

도진순 교수는 "육사(陸史)는

평생을 독립(獨立), 혁명운동(革命運動)과 문학(文學)을 넘나들었기 때문에

그가 지은 시(詩)들을 제대로 해독하려면,
그의 독립운동(獨立運動)에 대한 이해(理解)가 필수적(必須的)"라고 강조한다.

 

청포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어느덧 3월하고도 중순이다.
해마다 3월이 오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목숨을 바친 선열(先烈)들을 추모하는 열기와 함께
수많은 태극기가 거리에 내걸리곤 한다.


그리곤 문무(文武)를 검비했던

애국지사(愛國志士)들의 글들을 더듬으며 숙연해지곤 했는데,


마침 이육사(李陸史)님의 "청포도"를 연구한

도진순 교수의 논문(論文)이 눈길을 끌기에 이렇게 소개를 한다.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받쳐들고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는 손님을 기다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봄을 공손히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