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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도화곡(桃花谷)...태행산(太行山)

중국(中國)... 타이항(太行) 대협곡(大峽谷)을 가다.

 

도화곡(桃花谷)

한겨울에도 복사꽃이 핀다는 별천지(別天地)

 

- 태항산(太行山) -
남북(南北) 길이 약 600km,

동서(東西) 길이 250km의 험준한 산맥(山脈)으로

우리나라 남한 면적과 비슷한 거대한 산맥이며,
중국(中國)의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으로 불리는 산맥이다.


이곳은 화베이(華北) 즉 화북평야(
華北平野)와

황토고원(黃土高原)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기도 하다.

 

북쪽은 우타이산맥(五臺山脈) 즉 오대산맥이며,
남쪽은 훠산산맥(霍山山脈) 즉 곽산산맥과 이어진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부터

험준한 산세로 인해 군사적(軍事的) 요충지(要衝地)로 여겨졌던 곳이며
치열한 전투(戰鬪)가 많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이곳만 방어하면  중원(中原)의 모든 지역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한(前漢)을 멸망시키고 신(新)을 건국한 왕망(王莽)과

한(後漢)을 일으킨 광무제(光武帝)가 이곳에서 치열하게 싸웠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이곳 화북지방(華北地方)에서 활략했던

중국 공산당 주력부대인 팔로군(八路軍)과
일본군(日本軍)이 크게 전투를 벌이던 격전지이기도 하다.


북쪽으로는 몽골의 드넓은 평원지역과

펀허강(汾河江) 즉 분하강 유역을 잇는 교통로가 개설되어 진입이 편리하며
이곳을 타이항(太行) 또는 팔형(八陘)이라고 불린다.


산동성(山東省)이란 지명도

이곳 타이항산맥(太行山脈) 즉 태행산맥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석가장(石家庄)공항에 도착하여

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5시간 반을 달려서 한단(邯鄲)에 도착하여 1박을 한 후,

 

다시 2시간 반을 달려서도착한 임주(林州)의 협곡(峽谷)이

일반적 여행의 코스로

 태행산(太行山) 대협곡(大峽谷)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산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위험하다 보니 명(文明)이 스며들지 못해

역사적(歷史的)인 문화재(文化財)는 거의 없고

오로지 원시적(原始的)인 산수경치(山水景致)가 빼어난 지역이다.

 

따라서 중국(中國)의 그랜드 케년(Grand Canyon)으로 불리는 이곳은

지질학 적으로 지구(地球)의 역사(歷史)를 살펴보기에 적당한 곳이기도 하다.

 

수십억 년의 세월이 만들어 놓은 지층이

각변동(地殼變動)으로 융기(戎器)하고

그 후로 수많은 세월동안 빗물과 풍화(風化)로 약한 지반은 깎여나가고...

 

산맥(山脈)을 따라 가파른 절벽과 거친 봉우리들이 솟아오른

원시(原始)의 자연(自然) 풍경(風景)이 압권이다.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면 현기증이 아찔한 산맥.

나는 이번에 웅장한 태행산맥(太行山脈) 대협곡(大峽谷)의 극히 일부분인

남태행(南太行)의 몇몇 곳을 돌아봤다.

지금부터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대협곡을 사진과 함께 소개코저 한다.

 

 인천공항

 

 내가 타고 갈 "t,way 항공" 한국 국적의 전세기.

 

 석양빛을 받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중국의 산동반도를 지나며 1시간 40여 분을 날자...

 

 드넓은 중원대륙의 화북평원(華北平原)이 펼쳐진다.

 

 바둑판 같은 마을마다 평평한 지붕 위의 노란 저것이 뭔가 했더니...?

나중에 알았지만 수확한 옥수수를 말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지역은 태풍이 오질 않아

우기철을 제외 하곤 비가 부족한 건조한 지역이라 옥수수와 밀을 번갈아 2모작으로 재배 한다.

 

 석가장(石家庄) 정정공항(正定空港)

 

 달리는 찻창 너머로 중원땅에 황혼이 물든다.

 

석가장(石家庄)을 지나 5시간을 달려 도착한

한단(邯鄲)의 강업온천호텔(康業溫泉 HOTEL).

밤 10시가 넘어서 이 호텔에 도착하여 1박을 했다.

이곳 한단(邯鄲)은 진시황(秦始皇)의 고향(故鄕)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아침 식사 후 직선으로 끝없이 뻗은 평평한 고속도로를 두어 시간 달렸다.

 

임주시(林州市)를 지나고...

 

도화곡(桃花谷)으로 향하는 가파른 산길로 들어섰다.

 

꾸불꾸불한 산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길다란 터널을 지나고 몇 개의 계곡을 지나서 드디어 도화곡 주차장에 도착했다.

 

험준한 산 중턱에 들어선 마을들...

저들은 이 산속에서 뭘 먹고 사는지 정말 궁금했다.

 

박무(薄霧)가 늘 뿌옇게 끼어 깊은 산속인데도 야가 시원치 않다.

 

이곳에서 동북쪽 방향 250km를 직선으로 뻗어 가면 뻬이징(北京)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절벽이 사방으로 막혀 이곳은 북경(北京)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서쪽 사천지방의 수많은 공장에서 뿜어내는 매연이 동쪽으로 밀려와서

안개와 뒤섞이며 뿌연 스모그를 계곡마다 가둔 이유이다.

맑은날이 이정도니...

 

사실 이번 사진 촬영을 위해

니콘렌즈 중에서도 가장 넓은 화각(畵角)과 밝기를 자랑하는

무겁고 커다란 14-24mm 광각(廣角)랜즈를 탑재 했다.

그런데도 워낙 시야가 흐려서리...

 

만족스런 사진을 얻지 못했다.

 

여기가 도화곡 입구로 모든

관광객은 이곳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들어가야 한다.

바위 표지석에 크게 쓰인

"중국임주태행대협곡(中國林州太行大峽谷)"을 알리는 표지석.

 

중국 대부분의 관광지 입장료는 의가 살인적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1~2만 원은 싼 것이고 보통 3~4만 원이 기본이다.

그래도 관광지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든 것은 나처럼 외국인도 많지만,

내국인 중에 여유롭게 사는 인구가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느 통계를 보니 우리 원화로 환산해 연봉이 1억 이상 버는 인구가

우리나라 인구보나 많다고도 했다.

그러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전용 마이크로버스로 갈아타고

협곡을 따라 구불구불한 신길을 한참을 또 달렸다.

이 버스기사 얼마나 빨리 달리던지 좌우로 흔들리느라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와~!.

 

달리는 차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찍은 사진들...

 

위도상으로 보면 우리나라와 같기에 이곳도 가을색이 완연하다.

 

 현지 주민이 사는 주택으로 두툼한 돌로 지붕을 이었다.

벽은 전부 돌로 쌓았으며 대부분 현지민들이 이와 비슷한 집을 짓고 산다.

아마도 기와를 얻기는 불가능하고

농사 지을 땅이 부족하다 보니

이곳에서 흔한 돌을 다듬어 집을 지은 것 깉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타난 도화곡(桃花谷) 입구.

 여기부터는 걸어서 들어간다 겨울에도 도화(桃花)가 핀다는

선경(仙景)의  계곡(溪谷) 속으로 ...

 

"도화(桃花)"는 이상향(理想鄕)을 뜻한다.

진(晉)나라 때 유명한  전원시인(田園詩人)

도연명(陶淵明)의 산문(散文) "도화원기(桃花源記)"그 원류(源流)인데,

도가(道家)의 신선사상(神仙思想)과 결합하여

별천지(別天地)로 향하는 매개체(媒介體) 역활을 한다고

본 블로그에서도 몇 번을 소개한 적이 있다.

 

따라서 복숭아꽃은

인간의 마음 속에 피는 희망(希望)의 꽃이라고 보면 된다.

 

절벽 사이로 흐르는 폭포.

사진을 찍는 내 앞의 이 사람은 직업이 동양화가(東洋畵家)로

1년의 반은 중국에서

리고 한국에서 나머지 반을 생활한다고 했다.

지금 스케치 여행을 다니는 중이란다.

 

황용담(黃龍潭).

산에는 나무나 풀도 거의 없는데 어디서 흘러온 물인지...

신기하게도 맑은 물이 협곡에서 줄줄 흘러 내린다.

 

꽁지머리의 이 멋진 중년 남자,

직업이 여행 작가(旅行作家)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책을 쓴다는데,

너무도 부러운 직업을 가진 선망의 대상이었다.

여행 경비는 어떻게 조달하느냐고 물으니...

출판사에서 반을 대고 나머지 반은 자신이 충당한다고 했다.

 

계곡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깎아지른 절벽...

 

조금전에 올라오며 사진을 찍었던 폭포 앞의 징검다리와

포토존이 내려다보인다.

이 계곡에도 가을이 깊어 절벽에 노오란 들국화가 이쁘게 피었다.

계절의 순환은 이렇듯 어김없이 질서속에 수억 년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이어 갈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이 약 4km에 걸쳐서 계곡을 타고

상류의 마을까지 이어진다.

그 후로도 계곡은 끝도없이 이어지지만

너무도 험한 계곡이라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다고...

 

절벽을 다듬어 이렇듯 길을 만들고...

 

그 길로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걷다보니...

당(唐)나라 때 시인(詩人) 이백(李白)의 시(詩) "산중문답(山中問答)"

마지막 구절이 문득 생각났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여기는 별천지 인간세상 아니라네...!".

 

태행산은 아직 미 개발 코스가 70%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도 곳곳에서 도로를 만들고 관광 코스를 개발 중인데

하도 넓고 크기에 언제 마무리 될지는 기약이 없다고...

 

상류를 따라 비경을 이룬 깊고 좁은 계곡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직벽에 가까운 절벽틈으로 이어진 은 길이 대부분이라

사실 엄청 위험하다.

까마득한 저 위의 바위틈에서

돌이라도 굴러 떨어져 한 방 맞으면 그 즉시 세상과는 영원히 이별이다.

제일 가까운 병원이 이곳에서 100km 밖에 있단다.

 

하늘에 안전을 맏기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지은 내 죄가 그저 자그마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

 

협곡을 오르며 모두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쏟아내는 감탄 섞인 탄성 뒤에는

"여길 오길 정말 잘했어~ 글치~?? !!".

 

태행산 협곡은 험난하고 위험한 계곡이라

관광객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다.

그래서 여유로운 분위기와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좋은 곳이다.

 

위험한 구간에는 간혹 이렇게 처마를 만들어 놓은 구간도 있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글쎄...??.

 

태행산(太行山)이 낳은 고사성어(古事成語)우공이산(愚公移山)

 중국 고전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중국 북산(北山)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노인이 살았다.


노인 집 앞으로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이 가로막고 있어

노인이 다른 지역을 오가는데 불편함이 컸다.
그래서 노인은 산을 옮기기로 작심했다.


우공(愚公)은
아들, 손자들과 함께 산을 허물기 시작했다.
지게에 흙을 지고 발해(渤海)까지 가서 버리고 돌아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우공(愚公)의 이웃들이 기가막혀 혀를 찼다.
죽음을 앞 둔 노인이 어느 세월에

저 엄청난 산의 흙과 돌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인지...??

어이가 없어 모두가 비웃었다.


그러자 우공(愚公)이 태연하게 말하길...

“내가 죽더라도 내게는 자식과 손자가 있고,

그 아래로 자식들이 또 생기지 않겠는가~?
사람은 대를 이어 사는 것이라 그 끝이 없지만,
산(山)은 불어나지 않으니 언젠가는 평평해질 날이 올 것이다”
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산신령(山神靈)은 덜컥 겁이 났다.
산을 허물고 있는 우공(愚公)의 노력이 끊임없이 지속 될 것이기에...
그래서 옥황상제께 이를 알렸는데,

 

옥황상제는 우공(愚公)의 끈기에 감동하여

결국 두 산을 옴겨주기로 했단다.


이리하여 산 하나는 "삭동(朔東)"에,

또 하나는 "옹남(雍南)"으로 옮겨줬다고 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여기서 유래된 말로,
어떤 일이 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을 뜻하는 고사성어(古事成語)이다.

 

이곳 도화곡(桃花谷)은 해발 1,800m로 고도가 높은 지역이다.

따라서 한국의 날씨와 비슷하며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우연히 만나서 같이 차를 타고 왔던 팀원들인데...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계곡을 걸으며 아름다움에 감탄도 참 많이 했다.

 

몇 미터마다 전혀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자연의 신비로움...

 

그리고 인간이 첨가한 편리성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더했다.

 

 "이룡희주(二龍戱珠)": 두 마리의 용이 구슬을 가지고 놀다.

 

가로로 채곡채곡 수십억 년 동안 쌓인 지구의 굴곡들...

 

이렇게 가로로 평평하게 시루떡처럼 겹겹이 쌓인 흔적은

오랜 옛날 이곳이 물속에 잠겼던 곳임를 일러주는 흔적들이다.

 

그 후 지각변동으로 대지가 융기(戎器)하여 고원(高原)을 이루었고

다시 수억 년 동안 비바람에 약한 부분에 틈이 벌어지고

빗물이 숨어들어 깎이고 깎여 오늘날의 모습이 된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느리고 느린 시간의 작업은

이렇게 신(神)의 걸작(傑作)이라 불리는 위대한 조각품(彫刻品)을 남겨놓았다.

 

그 오랜 세월은 상상키 어려운 시간이 지나 갔을 테고...

지금 난 그 흔적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연발하는 중이다.

 

 구련폭포(九連瀑布)

 

 오(悟): 깨달음 바위

 

이곳의 마을 주민들은 길가에 이렇게 좌판을 열고 있지만...

사실 살만한 물건이 없었다.

기껏해야 시어터진 과일 몇 개가 그나마 유일할 뿐이다.

 

개발의 흔적이 거의 없는 자연그대로의 계곡 풍경...!.

 

오로지 상상키 어려운 오랜 시간(時間)과 물

그리고 지층의 압력(壓力)이 함께 만든 걸작들이다.

 

그러기에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작품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정교하며

형용키 어려운 감동을 선사한다.

 

저렇듯 조그마한 터만 있어도 이곳 주민들은 돌을 주어다 축대를 쌓고

밭을 일구어 기장을 심었다.

기장은 건조한 기후에 강한 곡식이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에 이미 재배을 한 흔적이 발견되며

돌 틈이 든 자갈밭이 든 뿌리 내릴곳만 있으면 잘 자라는

아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곡식이다.

 

약 1시간 동안 고개가 아프도록 감상하며 계곡을 올라오니...

기념품 매점이 펼쳐진 산속 마을이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 일행을 태우고 떠날

미니 오픈버스가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