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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 명시 감상

추흥(秋興)8수(八首): 가을날의 감흥... 두보(杜甫)

秋興(추흥) 八首(8수)

 

昆吾御宿自逶迆(곤오어숙자위이): 곤오(昆吾)와 어숙(御宿)으로 가는 길 꼬불꼬불 하고
紫閣峰陰入渼陂(자각봉음입미피): 자각봉(紫閣峰) 산 그늘 미피호(渼陂湖)에 드리운다.
香稻啄殘鸚鵡粒(향도탁잔앵무립): 향기로운 벼 나락은 앵무새가 쪼다 남은 것이요,
碧梧棲老鳳凰枝(벽오서로봉황지): 벽오동 가지에는 봉황(鳳凰)이 깃들었네.
佳人拾翠春相問(가인습취춘상문): 봄이면 가인(佳人)들과 푸른 풀 따서 서로 주기도 하고
仙侶同舟晩更移(선려동주만갱이): 선인(仙人)들과 배 타고 놀다 저녁엔 다른 배로 옴겨가네.
彩筆昔曾干氣象(채필석증간기상): 글 솜씨가 한 때는 하늘을 찔렀는데,
白頭今望苦低垂(백두금망고저수): 백발 된 지금 장안(長安)을 바라보다 고개 숙인다.

 

곤오정(昆吾亭)과 어숙천(御宿川)으로 향하는 길은 꾸불꾸불 하며,
길을 따라 가다보면 북쪽으로 자각봉(紫閣峰)의 그림자가

미피호(渼陂湖)에 드리운 곳에 이른다네.


길 중간에는 앵무새가 향기로운 벼이삭을 쪼아 먹다 남기기도 하고,
봉황(鳳凰)이 오동나무 가지에 깃 드리우고 살아가기도 하지.
나는 봄이면 현인(賢人)들과 어울려

푸른 풀을 뜯으며 문답(問答)을 주고 받기도 하고,
신선(神仙)들의 벗들과 한 배를 타고서 노닐기도 했으며,
저녁 무렵에는 다른 배로 옴겨 타고 또다시 놀이에 심취하기도 했었다네.

 

그 당시 나의 문필(文筆)은

그야말로 하늘의 기상(氣象)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칭찬이 자자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허연 백발에

이렇게 장안(長安) 쪽을 바라보면서 시(詩)나 짓고,
겨우 몇 가닥만 남은 흰 머리카락 늘어트리며 괴로워 할 뿐이라네.

- 주(註) -

곤오(昆吾)... 지명(地名)으로 장안(長安)에서 서남쪽에 있는
곤오정(昆吾亭)을 가리킨다.
어숙(御宿)... 장안(長安)에서 미피(渼陂)에 이르는 사이에
곤오정(昆吾亭)과 어숙천(御宿川)이 있다.
자각봉(紫閣峰)... 장안(長安) 서남쪽에 솟은
종남산(終南山)의 한 봉우리를 지칭한 말이다.
미피(渼陂)... 장안(長安) 옆의 높은 고원(高原)에 있는 호수 이름으로
그 옆에 종남산(終南山)이 솟아 있다.
선려동주(仙侶同舟)... 여기서 려(侶)는 짝을 가리키는데,
신선(神仙)의 짝이 되어 배를 같이 탄다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에 이응(李膺)이 곽태(郭泰)와 배를 같이 타고 건너자
여러 사람들이 이를 바라보고 신선(神仙)으로 여겼다는 구절이 나온다.
끝에서 두번째 구 "채필석증간기상(彩筆昔曾干氣象)"
지난날 두보(杜甫)가 일찍이 "부(賦)"를 지어
조정(朝廷)에서 칭찬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바로 이를 뜻하는 말이다.

젊어서는 꿈을 먹고 살고,
늙어서는 추억(追憶)을 먹고 산다고 했다.

지금 두보(杜甫)는 지난날을 회상(回想)하며

어지러운 현실(現實) 속에서 추억(追憶)을 더듬고 있다.
비록 짧은 시절이지만

지난날 한 때는 문장(文章)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인정을 받기도 했었다만,
지금은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감상(感想)에 젖고 있으니...
매일 같이 기주(夔州)의 강가에 앉아 머나먼 장안(長安) 쪽을 바라보면서
지나간 추억(追憶)을 더듬으며 한숨 짓는 자신이 그저 한스러울 뿐이다.

이상으로...

깊어가는 가을날 기주(夔州)의 강가에 앉아 장안(長安)을 그리며
회한(悔恨)에 젖는 두보(杜甫)의 가슴 아픈 명시(名詩)

"추흥(秋興)" 전편(全篇)을 더듬어 봤다.


일수(1首)에서 팔수(八首)까지

모두가 백제성(白帝城)이 내려다보이는 기주(夔州)에서 지은 시(詩)들 인데,
가을날의 쓸쓸한 정경(情景)을 배경으로

어지러운 조국(祖國)의 현실(現實)을 바라보는

두보(杜甫)의 안타까운 서정(抒情)이 절절하게 배어 흐른다.


지난날 나는 두보의 생애(生涯)와 함께
추흥(秋興) 일수(一首)를 블로그에 옴기며

몇 번이나 반복해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찡하게 저려옴을 느낀 적이 었었다.

두보(杜甫)의 멍울진 가슴에서 토해내는 회한(悔恨)의 아품을 통해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면서 안타까워도 했었고,
내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생(生)을 투영(投影)해
보기도 했었다.


따라서 본 "추흥팔수(秋興八首)"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는 의미 보다는 내 자신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세지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시문학(詩文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쓰디 쓴 아품에서 토해내는 영혼(靈魂)의 울림이 있기에,
진주(眞珠)처럼 영롱하며 찬란한 빛을 발하는 보석(寶石)임을

두보(杜甫)의 시(詩)를 통해서 더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편안한 책상에 앉아

얄팍한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비빔밥처럼 섞어서 짜맞춘  몇 줄 글들을 시(詩)라며,
자랑스럽게 책으로 엮어 펴낸 것을 그간 많이 보아 왔었다.


진정한 시(詩)는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아파하고 때로는 즐거워 하며,

생(生)의 한복판에 서서
영혼(靈魂)을 쥐어짜며 토해낸 글이야말로 찬란한 빛을 발하고
수천년을 이어가며 크나 큰 감동(感動)의 향기를 뿜어낸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시대(時代)를 살아가며 수도없이 많은 시(詩)들의 홍수 속에서

일천 년 전 영혼(靈魂)마저 괴로워 했던,

고독한 시인(詩人) 두보(杜甫)가
더더욱 위대(爲待)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