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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 명시 감상

무제(無題)... 이상은(李商隱)

이상은(李商隱)의 시(詩)에는 10여 수(數)의 무제시(無題詩)가 있다.

무제시(無題詩)는

시(詩)을 써놓고 제목([題目)을 달고싶지 않을 때 표제(標題)로 사용한다.


시(詩)뿐 아니라

미술작품(美術作品)을 포함한 예술작(藝術作)에도 적당한 이름을 찾기가 애매할 때

무제(無題)란 작품명(作品名)을 많이 쓴다.


특히 고시(古詩)에서는

남에게 밝히기 어려운 말 못할 사랑을 노래했을 때 주로 사용했으며
연정시(戀情詩)의 대명사(代名詞)로 부르기도 하는 게 무제시(無題詩)이기도 하다.
본 무제시(無題詩)는 이루지 못할 사랑을 나누다 헤어져,
감내하기 힘든 슬픈 이별(離別)을 절절하게 읊고 있다.

 

첫째 연을 보면 사랑의 아픈 이별(離別)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그와 헤어지기는 더욱 어렵다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한다.
봄꽃을 만개시키던 봄바람도 이젠 무력해져 꽃들도 시든다며.
행복했던 시간도 다 가고 이별(離別)의 순간이 왔음을 암시하고 있다.

 

둘째 연은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을 풀어낸다.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뽑기를 그치고, 촛불은 재가 되어야만 눈물이 마른다."
이 싯구는 여러 시문(詩文)에서

천년(千年)을 두고 회자(膾炙)되는 명 싯구로,
본 시(詩)에서도 죽어서야 비로소 이별의 한과 슬픔을 그칠 수 있다는

서러운 호소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사(絲)는 사(思)와 쌍관어(雙關語)로 사용 되었고,
루(淚)는 촛농과 눈물을 같은 이미지로 쓰고 있다.
그래서 그리워하는 마음은 죽어서야 그칠 것이며,

눈물은 죽어서야 마른다는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의 표현으로 그리고 있다.

 

셋째 연에서는 헤어진 여인을 그리워 하며

그녀를 상상 속에서 그려본 내용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그 여인을 생각한다.
그녀는 새벽에 일어나면 거울 앞에 앉아 임 생각에 희긋한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슬펴하고 있겠지...

그리고 밤에는 사모하고 그리운 마음을 달래느라

시(詩)를 읽으며 오랜 시간 뒤척이다 보면
달빛마저 차갑게 느껴질 것이라고도 했다.


시름에 잠겨 있을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도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애절하게 그려낸 대목이다.

 

넷째 연은 그녀의 소식을 듣고 싶은 간절한 희망을 나타낸다.
여기서 봉산(蓬山)은 여인이 있는 장소를 이른 말이며
파랑새은 소식을 전해주는 메신저를 나타낸 것이다.


그녀가 있는 곳은 그리 멀어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도 아닌 듯 하다.
파랑새에게

그녀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은밀하게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마음에서
그녀와의 해후(邂逅)를 기대하는 간절한 소망이 들어있다.


본 시(詩) 속에는 신화속의 전고(典故)를 인용하여

그 애정의 의미를 더욱 심화(深化)시켰다.

 

無題(무제): 제목 없음

 

相見時難別亦難(상견시난별역난): 만나기도 어렵더니 헤어짐도 어려워라
東風無力百花殘(동풍무력백화잔): 봄바람도 힘 없어 온갓 꽃들 시드네.
春蠶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 뽑기를 멈추며
蠟炬成恢淚始乾(납거성회누시건): 촛불은 재가 되야 눈물이 마른다네.
曉鏡但愁雲鬢改(효경단수운빈개): 새벽녁 거울 보며 검은머리 변했다 근심하고
夜吟應覺月光寒(야음응각월광한): 잠 못 이뤄 시 읊는 밤 달빛은 차갑겠지.
蓬山此去無多路(봉산차거무다로): 봉래산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거늘
靑鳥殷勤爲探看(청조은근위탐간): 파랑새야 은밀히 찾아가 알아보려무나.

 

- 주(註) -

"봉산(蓬山)"은 봉래산(蓬萊山)을 이르는 말로
전설에 의하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신선이 산다는 섬으로
여기서는 사랑하는 여인이 사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봉래산(蓬萊山)은 영주산(瀛州山), 방장산(方丈山)과 함께

중국(中國) 전설(傳說)에 나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이다.

 

"청조(靑鳥)" 또한 소식을 전해 준다는 파랑새로,
중국 신화 속의 다리가 셋 달린 삼족조(三足鳥)를 말한다.


곤륜산(崑崙山)에 살면서

불사약(不死藥)을 가지고 있었다는 서왕모(西王母)가 키웠다고 하는 새가 삼족조(三足鳥) 파랑새다.


한무고사(漢武故事)에서 이르길,

서왕모(西王母)가 한(漢)나라 무제(武帝)를 만날 땐 언제나 이 새(鳥)가
먼저 궁궐로 날아와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세월에 걸친 중국문화(中國文化)의 영향으로

파랑새를 길조(吉鳥)로 여기며 반기 듯,
아주 오랜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은

파랑새를 소식을 전해주는 반가운 사신새(使臣鳥)로 여기고 있다.

 

이 시(詩)는

남에게 자신있게 드러낼 수도 없으며, 이루어질 수도 없는 사랑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 여인을 그리워하는 연시(戀詩)이다.


일설(一說)에 의하면 이상은(李商隱)이 사랑했던 여인은
궁녀(宮女)라는 설(說)과

도교사원(道敎寺院)의 여사제(女司祭)라는 설(說) 등...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