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림동(花林洞),
풍류(風流) 따라 남녁으로...
경남 함양(咸陽)은...
안동(安東)과 더불어
조선시대 성리학(性理學)을 전개하던 영남사림(嶺南士林)의 본거지로
좌안동(左安東) 우함양(右咸陽)이라 불렸다.
양반의 도시 안동에 비해
조금은 덜 알려졌던 함양 역시 선비의 성품을 닮은 고을이다.
따라서 함양 고을은
정자(亭子 )와 누각(樓閣 )을 합쳐
100여 개가 되는 정자문화(亭子文化)의 집산지로도 유명하다.
그중에 화림동계곡(花林洞溪谷)은
옛 양반들이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벗삼아 시를 짓고 즐겼던
음풍농월(吟風弄月)의 풍류가 가득했던
정자들이 이어져 "팔정팔담(八亭八潭)"이라 불리기도 했다.
즉 8개의 정자와 8개의 못이 있다는 의미인데,
안타깝게도 현재는
4개의 정자만이 남아 당시의 화려했던 날들을 회상케 한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개울이 굽이치며
골 깊은 화림동을 휘돌아 60리를 흘러 간다는데...
영겁(永劫)의 세월이 만든 수려한 풍치(風致)는
지금도 찾는 이를 감탄케 한다.
화림풍류(花林風流)를 따라
거연정(居然亭), 군자정(君子亭), 동호정(東湖亭),
그리고 농월정(弄月亭)으로 내려간다.
①, 화림동계곡 최고의 선경(仙境)
거연정(居然停).
고려 말의 충신 전오륜(全五倫)의 7대 손인 전시서(全時敍)가
인조(仁祖) 때
현 위치에 억새로 엮은 정자(亭子)를 처음 지었다.
그 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에 따라
서원(書院) 자체가 문을 닫자,
전시서(全時敍)의 7대손인 전재학(全在學) 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문을 닫아 폐허가 된
함안(咸安) 서산서원(西山書院)의 재목(材木)을 가져다 재건립하여
오늘날에 이른 모습이라고 한다.
자연 속에서 머물고 싶은 선비의 마음을 표현한
이름 그대로,
그야말로 거연(居然)의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정자가 들어앉았다.
계류(溪流) 속 기암괴석(奇巖怪石) 위에 앉은
거연정(居然停)의 멋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군자정(君子亭)과 거연정(居然亭) 사이
다리 위에서 올려다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굽이치는 물 그리고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난 거대한 느티나무의 짙은 녹음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경탄을 자아낸다.
옛 선비들은 정자 앞을 흐르는 이곳 계곡을 가리켜
"방화수류천(訪花隨柳川)"
"꽃을 찾으며 버들잎을 따라가는 냇물"이라는
멋스러운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거연정(居然亭),
내가 자연(自然)이고,
자연이 곧 나이기에 무심(無心) 무욕(無欲)의
초월적(超越的) 진리(眞理)가 담긴 현판이다.
②, 조선조(朝鮮朝) 성리학(性理學)의 거두(巨頭)
일두(一蠹)를 기리다 !.
거연정(居然亭)과 약 150m 거리를 두고
하류에 또 하나의 정자가 너럭바위 위에 앉아 있는데
바로 군자정(君子亭)이다.
소박하고 아담하면서도 고풍스러움이 묻어난다.
군자정(君子亭)은
조선 성종(成宗) 때 성리학자(性理學者)인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200여 년 전에 후손들이 뜻을 모아 세웠다고 한다.
일두(一蠹)는 조선조(朝鮮朝) 5현 중 한 분으로 손꼽히는데,
5현(五賢)이라 함은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이언적(李彦迪),
조광조(趙光祖), 이황(李滉) 등을 지칭하는 말로
학식 높은 5명의 유학자(儒學者)를 가리킨다.
성리학(性理學)의 영남사림(嶺南士林)을 대표하던 양대 산맥으로
당시 좌안동(左安東), 우함양(右咸陽)이라 칭했는데,
좌장(座長)으로
안동(安東)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요,
함양(咸陽)은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이였다.
③, 선조(宣祖) 임금을 업고 뛰다 !.
화림동계곡 정자(亭子)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함을 자랑하는 정자는 단연 "동호정(東湖亭)"이다.
군자정(君子亭)을 나와 하류로 좀더 내려가면
계곡 옆 우측에 화려한 정자(亭子)가 보인다.
정자 앞으로는 차일을 덮은 듯,
냇물 가운데 수백 명이 앉을 만큼
넓은 반석이 펼쳐지는데 이름하여 차일암(遮日岩)이다.
차일암(遮日岩)은
"해를 가릴 만큼 넓은 바위"란 뜻인데..
이곳에 모여 악기와 노래 그리고 춤이 어우러져 풍류를 즐겼을
지난날 선비들의 놀이모습이 바위 위로 그려진다.
동호정(東湖亭)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선조(宣祖) 임금을 등에 업고 압록강변의 의주(義州)까지 피란(避亂)을 갔던
동호(東湖) 장만리(章萬里)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자로,
그의 호를 따서 동호정(東湖亭)이라 이름했다.
화려한 단청(丹靑)이 돋보이는 정자이다.
정자를 오르내리던 나무계단도 도끼로 통나무 홈을 파서 만들어 걸었기에
투박한 정겨움이 묻어나
화려한 단청(丹靑)과 대비를 이루는 멋스러움이 있다.
④, 저 달을 농락하다~ !.
화림동 계곡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농월정(弄月亭)과
넓은 반석(盤石)
그리고 반석 위를 흐르는 옥수(玉水)이다.
조선시대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지낸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傅)가
정계에서 은퇴하고 낙향(落鄕)하여
한 세월을 보내고자 지은 정자(亭子)로,
이름 그대로
"계곡에 앉아 달을 희롱한다"는
그야말로 멋진 농(弄)이 어우러진 현판(懸板)을 걸었다.
넓은 반석에는
당시 계(契)를 결성한 여러 사람들의 이름과
화림동(花林洞)을 찬양하는 글이 음각되어
풍상(風霜) 속에서
흐릿하게 지난날의 풍류(風流)를 일러주고 있다.
이 농월정(弄月亭)은 지난 2003년 몰지각한 야영객이
고기를 구어먹다 정자(亭子)를 태워버려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번에 가보니 말끔하게 원형대로 복원해 놓았다.
내가 본 것만도 이번이 2번 째,
화재(火災)를 당한 불운의 정자인데,
이젠 제발 오래도록 보존 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지리산 중산리 계곡
여름 휴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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