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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등산

12), 의상대(義相臺)... 양양(襄陽), 낙산사(洛山寺)

 

낙산사(洛山寺)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3교구 본사(本寺)인 설악산(雪嶽山) 신흥사(神興寺)의 말사(末寺)로

양양(襄陽)의 풍치(風致) 좋은 해변 언덕에 위치하며,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한곳인 "의상대(義相臺)"를 품은 아름다운 산사(山寺)이다.
"낙산(洛山)"이란 말은

산스크리트(Sanskrit)의 보타락가(補陀洛伽 Potalaka)에서 유래(由來)한 말이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항상 머무는 곳"을 뜻한다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觀音道場) 중 한곳인 낙산사(洛山寺)는 서기 671년 문무왕(文武王) 11년에 의상(義湘)이 창건(創建)했다고 전한다.
이 절은 서기 858년 범일(梵日)에 의해 중건(重建)된 후 여러차례 화재(火災)로 중건(重建)을 거듭했으며,
6·25 전쟁 때는 아군(我軍)의 포격(砲擊)으로 완전히 소실(小室)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1953년과 1976년에 다시 복구를 시작하여,
원통보전(圓通寶殿), 종각(鐘閣), 일주문(一柱門), 선당(禪堂), 승당(僧堂), 객실(客室) 등의 건물을 복원했다.


1977년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동양 최대의 해수관음입상(海水觀音立像)을 산 위에 세웠으며,
바위절벽 해안가애는 의상(義相)의 전설이 담긴 홍련암(紅蓮庵) 등 암자들이 분포하고 있다.
2005년 4월 5일 강원도 고성(高城)에서 발생한 산불이 바람을 타고 양양(襄陽)지역까지 번져 울창한 송림(松林)들과,

농촌주택들을 집어삼키고 이곳 낙산사(洛山寺))까지 태워버렸다.

다행히 의상대(義相臺)는 겨우 피해를 모면했으나 일주일 간의 대형 산불로 낙산사(洛山寺)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들과,
낙산사원장(洛山僿垣墻), 원통보전(圓通寶殿), 일주문(一柱門), 낙산사홍예문(洛山寺虹霓門) 등,
주요 전각(殿閣)들과 낙산사동종(洛山寺銅鐘)이 소실되고,
7층석탑(七層石塔) 일부가 손상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 피해는 TV로 전국에 생중계 돼

전국민이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후 근년(近年)에 문화제(文化財) 당국(當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전부 복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낙산사(洛山寺)는

바닷가에 자리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화재(火災)가 잦았던 절로 옛부터 유명했던 듯 하다.

 

 낙산해수욕장

 

 낙산사로 오르는 길로 언덕 위의 흰색 건물은 낙산비치호텔이다.

 

 

 언덕을 오르다 뒤돌아보니... 그림같은 낙산해변이 눈부시다.

 

 호텔 앞 우측 벼랑 위에도 정자가 있다.

 

 호텔앞 주차장

 

 그림같은 의상대(義相臺)

 

 

 낙산사는 한곳에 건물들이 모여있질 않고 군데 군데 무리를 지어 떨어져 있다.

이는 지형적(地形的) 특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잦았던 산불에 대한 대비는 아니었을까~??

 

 

 

의상대(義相臺)
강원도유형문화재(江原道有形文化財) 제48호로 지정됐으며,
낙산사(洛山寺)에서 홍련암(紅蓮庵)의 관음굴(觀音窟)로 가는 해안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新羅)의 고승(高僧) 의상(義湘)이 낙산사(洛山寺)를 창건할 때 좌선(坐禪)하였던 곳으로,
서기 925년 8각형 정자(亭子)를 짓고 의상대(義相臺)라 명명하였다.
세월을 이고 선 노송(老松)들과 어우러진 자태는
어느곳에서 보든 그 빼어난 경치는 가히 압권(壓卷)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언덕에 이렇게 아름다운 정자(亭子)는 내 일찍이 본적이 없다.

 

 송강(松江)선생이 해돋이 장관을 보려고 한밤중에 일어나 찾아갔다던 그 정자가 아니던가...

언젠간 나도 꼭 한번은 이곳의 해돋이를 보고싶다.

 

 이토록 짙푸른 바다와 하늘은 그리 만나기 쉽잖은 풍경이다.

바닷가에 살아 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일년을 다 합해봐야 한 두달에 불과하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중

의상대(義相臺)에서 본 일출(日出) 광경(光景)


梨(니)花(화)는 발셔 디고 졉동새 슬피 울 제,
洛(낙)山(산)東(동)畔(반)으로 義(의)相(샹)臺(대)예 올라 안자,
日(일)出(츌)을 보리라 밤듕만 니러하니,
祥(샹)雲(운)이 집픠는 동,
六(뉵)龍(뇽)이 바퇴는 동,
바다헤 떠날 제는 萬(만)國(국)이 일위더니,
天(텬)中(듕)의 티뜨니 毫(호)髮(발)을 혜리로다.
아마도 녈구름 근쳐의 머믈셰라.
詩(시)仙(션)은 어데 가고 咳(해)唾(타)만 나맛나니.
天(텬)地(디)間(간) 壯(장)한 긔별 자셔히도 할셔이고.

 

배꽃은 벌써 지고 소쩍새 슬피 울 때,
낙산사(洛山寺) 동쪽 언덕으로 의상대(義相臺)에 올라앉아,
해돋이를 보려고 한밤중 쯤 일어나니,
상서로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
여섯 마리 용이 해를 떠받치는 듯,
바닥에서 솟아오를 때에는 온 세상이 흔들리는 듯하더니,
하늘에 치솟아 뜨니 가느다란 터럭도 헤아릴 만큼 밝도다.
혹시나 지나가는 구름이 해 근처에 머무를까 두렵구나.
이백(李白)은 어디 가고 싯구(詩句)만 남았느냐.
천지간(天地間) 굉장한 소식이 자세히도 표현되었구나.

 

- 주(註) -
육용(六龍)은:조선시대(朝鮮詩代) 임금의 어가(御駕)를 높여 이르는 말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서 조선(朝鮮)을 개국(開國)한 여섯 조상(祖上)을 가리킨다.
곧 목조(穆祖),익조(翼祖),도조(度祖),환조(桓祖),태조(太祖),태종(太宗)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본문에서 시선(詩仙)은 이백(李白)을 지칭한다: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당(唐)나라 때 시인(詩人)이다.

 

 홍련암(紅蓮庵)

 

 의상대(義相臺)의 경치를 여러 각도(角度)에서 담았다.

 

 

 

 

 

 

 바닷물이 법당 마루밑까지 찰랑인다는 홍련암(紅蓮庵)

 

 해변의 꽃 해당화(海棠花)

유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하여 한 달 간 해변을 물들이며 피어나는데... 지금은 막바지꽃이다.

 

 

 

보타전(寶陀硯)... 2005년 산불로 전소(全燒)됐으나 근년에 다시 복원했다.

우측 옆의 낙락장송(落落長松) 한 그루만 그때 화마(火魔)를 견디고 용케 살아남았다.

주변에는 이와같이 큰 소나무가 여러그루 있었으나 모두 불에 타 죽고 잘라낸 그루터기만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으로 오르는 언덕 길

 

 

 해수관음입상(海水觀音立像)

 

 

 

 와~~~! 해변풍경이 그림 그 자체다.

 

 

 

 

 

 매점겸 찻집

 

 

 

 수국(水菊)이 만발했다.

 

 

 

낙사사(洛山寺)를 떠나며 해변을 내려다보았다.

근 40여 년만에 찾은 의상대(義相臺)...

늘 마음속에 빗바랜 사진처럼 어슴프레 기억났던 절벽 위의 멋드러진 의상대(義相臺)가 그리웠었다.

그때는 분명 정자(亭子) 주변에 커다란 노송(老松)이 여렷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겨우 두어 그루 남아 애처롭게 정자(亭子)를 지키고 있다.

정철(鄭澈)선생은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경포대(鏡浦臺)를 최고의 풍광이라 극찬했지만 나는 의상대(義相臺)가 더 멋져 보인다.

지금 내려가면 언제 다시 올지 기약없는 발길인데...

멋진 자태(姿態) 변치 말고 오래오래 동해안의 상징으로 남아있길 고대(苦待)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