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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등산

철쭉은 피고 지고... 지리산 바래봉

 

5월 중순경이면 어김없이 철쭉이 피는 능선(稜線)

(지리산 바래봉 가는 길)

 

지리산 능선에 들어선 정령치(鄭嶺峙) 휴게소

 

정령치(鄭嶺峙)에서 남원시(南原市) 운봉읍(雲峰邑)으로 내려가는 길

 

바래봉으로 출발

 

얼마를 왔나 하고 뒤돌아보니...

아득하게 이어진 저 고갯길은 지리산 달궁(達宮)쪽에서 정령치 고갯마루로 올라오는 길로,

지금 내가 지나온 길이다.

 

얼래지

 

고산지대의 꽃들은 밤 낮의 일교차가 커 대부분 색상이 선명하다.

 

고지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연분홍색 키 큰 철쭉꽃

 

저 계곡 아래 아득한 곳이 지리산 반선계곡(伴仙溪谷)으로 알려진 부운리(浮雲里)

 

산 아래는 철쭉꽃이 저버린지 이미 두어 주가 지났지만 이곳은 이제서 피어난다.

 

부운마을과 반대편인 서쪽의 남원시 운봉읍 들녁

 

언듯보면 마치 홍목련처럼 꽃도 크고 색도 선명한 철쭉

 

능선길을 가다가 부운치와 팔랑치 중간 쯤에서 처음 만나는 철쭉 군락지

 

철쭉은 키가 작은 관목(灌木)인데 그들도 오랜세월 자라나다보니 이렇게 크게 자랐다.

 

철쭉은 햇빛만 좋으면 왠만해서는 장소와 기후를 가리질 않고 잘 자란다.

 

오히려 물가의 돌 틈이나 벼랑끝의 바위 틈 등 거친 장소도 개의치 않으며

햇볕 잘 들고 뿌리 내릴 틈만 있으면 소담스레 꽃을 피우는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이는 오랜 세월에 걸친 키 큰 나무들과의 자리다툼에서 서서히 밀려나,

그들이 자라지 못하는 극한의 벼랑끝까지 밀려난 까닭일께다.

 

그만큼 강인한 생명력과

특유의 끈적이는 점액은 독성을 품고 있어서 추위와 병충해에도 잘 견디는 내성을 지녔다.

 

일본에서 육종 개발한 영산홍(映山紅)도 철쭉을 개량한 품종으로 꽃도 많이 달리고

철쭉처럼 강인하다.

 

바래봉 능선은 고도가 서로 달라서 온도 차가 커

함께 개화하질 않고 약 한 달 여의 시차를 두고 단계별로 개화한다

 

따라서 고갯길의 양지바른곳은 일찍 개화를 하지만 능선의 바람 센곳은

아직도 꽃봉오리가 피질 못하고 오밀조밀 맺혀있는 무리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진달래나 철쭉은 사계절 내내 햇빛을 듬뿍 받지 못하면 비실비빌 살다 죽고만다.

 

그래서 키가 큰 교목(喬木)인 참나무나 소나무류가 밀집한 지역에는 거의 없고,

오솔길 옆이나 냇가의 양지쪽에 그들끼리 무리지어 자생하는 수즙은 꽃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아련한 고향을 떠올리면,

뛰놀던 뒷동산에 진달래나 철쭉이 벌겋게 불타던 풍경을 대부분 잊을수가 없는데...

 

지금 가서 찾아보면...

진달래나 철쭉은 간 곳 없고 무성한 숲이 그 자리를 덮고 있어 

지난날 애잔한 추억이 허망하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우리 어릴적에는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땔감으로 사용했고 음식을 조리하느라 늘 산이 헐벗었다.

따라서 커다란 나무는 야금야금 잘려나가 없고 땔감으로도 신통찮고 불도 잘 붙지 않는,

진달래나 철쭉 등 별 쓸모가 없는 키 작은 관목만이 천덕꾸러기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런 까닭에 봄이면 온 산이 벌겋게 불타는 풍경에 넋을 잃고 감탄을 했던 것.

 

그리고 진달래나 철쭉은 산불에도 아주 강인한 내성을 지녔다.

산에 불이나면 송진이 많은 소나무류가 제일먼저 타 죽고 그 다음이 밤나무류이고,

껍질이 비교적 두껍고 강한 콜크로 덮인 참나무류가 비교적 불에 강한 편이다.

따라서 약한 산불에는 소나무는 전멸해도 참나무는 대부분 소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참나무보다 더 강인한 나무가 진달래와 철쭉이다.

이들은 오히려 산불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산기슭이나 언덕에서 더 강렬하고 화사한 꽃을 피워내며

왠만한 산불에는 끄떡없이 견뎌내는 독종이다.

따라서 키 큰 나무들과 소나무가 전멸한 산에서 햇볕을 마음껏 받으며 자라기에

최근에 산불이 났던 산에 유독 진달래와 철쭉이 많고 아름답게 피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곳 지리산 바래봉이나 황매산을 봐도 이들이 무리지어 자라는 지역에는 큰 나무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맞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리산 바래봉은 그 생김새가 스님들이 공양 때 쓰는 밥그릇인 발우(鉢盂)를 엎어놓은 모습하고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說)도 있다.

 

그리고 지난날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명령(命令)으로 서양에서 면양(緬羊)을 들여와

바루봉 근처에 풀어놓고 방목을 했는데,

 

다른 풀과 나무들은 먹성 좋은 양들이 전부 뜯어 먹어 씨가 말랐다.

그런데 유독 독성이 강한 철쭉만은 양들도 먹지를 못해 이렇게 무리지어 자라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찌됐든지간에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 이토록 풍성하고 아름다운 철쭉꽃에

원 없이 취해보는 건 색다른 즐거움이며 화사한 낭만이다.

 

아무리 빨리 올라와도 두어 시간에서 서너 시간은 땀을 흘리고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올라와야 만나는

천상(天上)의 화원(花園).

 그래서 그런지 해맑은 산상에서 만나는 분홍색의 철쭉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지금부터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철쭉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나마 느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