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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등산

토지(土地)의 땅... 평사리.

대하소설(大河小說) "토지(土地)"의 땅... 평사리.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는

지리산 남면의 악양골 기슭에 위치한 평범한 산골 마을이었으나,
소설가 박경리(朴景利)씨가

"토지(土地)"의 주요 무대로 설정하면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69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토지(土地)"는

1994년 탈고(脫稿) 때까지 26년 동안 집필한 방대한 대하소설이다.


또한 "토지(土地)"

서사적(敍事的) 역사성(歷史性)과 문학성(文學性)으로

한국 근대(近代) 문학사(文學史)에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박경리는 경남 통영이 고향이다.

평사리와는 전혀 인연이 없던 그는
하동군 악양면 미점리 아미산 아래에서
드넓은 악양들판을 보며
"만석지기 부자를 서넛은 낼 만한 땅이다" 하고는

"토지(土地)"의 주무대로 낙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토지(土地)는

구한말 만석지기 최참판댁의 몰락으로부터

일제 강점기와 해방까지,
최씨 집안의 3대에 걸친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골자로 하여

우리 민족의 굴곡진 아품을 토속적인 언어로 질펀하게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평사리에는

예전에 방영했던 KBS TV 대하드라마

"토지(土地)"의 세트장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최참판댁과

주요 인물들이 살던 가옥들이 현실감 있게 지어져 있다.

 

이곳 평사리는 토지(土地)의 실제적 공간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허구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평사리는 섬진강을 경계로 전라도와 접면하고 있어

영남과 호남 두 지방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의 땅이기도 하다.

 

평사리의 드라마 세트장을 둘러보며

관광객들은 마치 소설 토지(土地) 속 평사리가

실재적(實在的) 공간인 듯 착각에 빠져든다.

 

 마을 배치도 양지바른 비탈면에 들어서 있기에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

 

 옛부터 말도 많고 사연도 많은 물레방아간.

김평산과 칠성이 그리고 최치수의 몸종 귀녀,

이들 셋이서 밤마다 이곳에 자주 모여,

아들이 없던 최참판댁 재산을 가로채려고 작당을 꾸미던 곳이다.

 

물레방아간에서 김평산의 계획에 따라,

마치 최치수의 아기를 밴 것처럼 속이려고

칠성이와 귀녀가 짜고서 몇 번의 정사(情事)를 통해 임신에 성공한다.

임신을 확인한 김평산이 귀녀의 도움으로

한밤중 몰래 최참판댁에 숨어들어

조상을 모시는 사당에서 잠을 자던 최치수의 목을  삼끈으로 졸라 살해 한다.

 

"죽은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며 완전범죄를 노리고

합법적인 재산 상속을 당당하게 노렸으나,

아들이 고자(鼓子)임을 일찍부터 알고 있던 서희 할머니에 의해

전모가 발각되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들은 모두 하인들에게 잡혀와  비오는 날 먼지 날리도록 흠씬 두둘겨 맞고서

경찰서에 인계 되어 재판 후 사형에 처해진다.

 

그때 처형되기 직전에 옥에 갇힌 귀녀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그들이 바랬던 것처럼 아들이었는데...

귀녀를 짝사랑하던 강포수가

핏덩이 아기를 받아 안고서 "훌륭하게 잘 키울테니 걱정 말라"

귀녀에게 눈물로 약속하고는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뒤늦게 강포수의 따스한 연정(戀情)에 회한(悔恨)의 눈물을 쏟던 귀녀는

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훌미끈한 용이와 앙앙거리던 강청댁이 살던 집이다.

이들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부부 사이가 늘 좋지 않았다.

 

이곳은 칠성이와 그의 처 임이네가 살던 집으로

평소에도 행실이 불량한 왠 못된 쌍놈들이었다.

칠성이가 처형되자

임이네는 살기 위해서라면 몸둥이까지도 서슴없이 파는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김평산과 그의 처 함안댁 그리고 두 아들 두수와 한복이 살던 집이다.

남편 평산이 처형되자

함안댁은 얼굴을 들고 어찌 살겠냐며 울 안의 감나무에 목을 맨다.

 

어찌됐든 간에 김평산은, 이 마을에서 참판댁 어른을 제외하곤

유일하게 갓을 쓰고 다니는 양반이었다.

따라서 거들먹거리며 참판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는 있었으나

같이 어울리지는 못했다.

이 특권을 이용해 참판댁을 살필 수 있었고

급기야는 재산을 가로채려는 못된 계획을 짜냈던 것이다.

 

용이 친구 이평이네 집으로

가난에 허덕이던 아주 평범한 시골 촌부의 집이었다.

 

최참판댁 입구.

 

때마침 만리향이 꽃을 피워

온 동네가 짙은 꽃향기에 빠져 있다.

 

최참판댁 솟을대문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모습.

 

사랑채에서 별당으로 통하는 샛문.

 

안방마님 즉 서희 할머니가 기거하던 안채.

 

서슬퍼런 최치수 어른이 기거하던 사랑방.

 

요고이~?? 뭔 산수문제~??.

 

난 정담을 안다.~^^

정담은 맨 마지막에 밝히고자 한다.

 

별당채에 딸린 누대.

별당아씨는 이곳을 거닐며 수많은 생각을 했을 테고...

결국에는 풍요로운 구속보다는

가난함 속의 자유와 사랑을 어렵게 택하고,

서희 할머니의 묵인 속에 종놈인 구천이와 야밤에 지리으로 도망을 친다.

 

이 사건으로 최치수는 분노에 이를 갈며

삼남 제일의 실력을 자랑한다는 강포수를 고용하여

곰사냥을 핑계로 대대적인 인간사냥에 나선다.

 

별당을 좀 떨어져서 본 모습인데...

외동딸인 어린 서희를 남겨두고서 솟구치는 열정과 자유를 택하고

눈물을 쏟으며 둥지를 훌훌 털고 날아가는 새를 향해

자신있게 돌을 던질 자 과연 얼마나 될까~?.

 

 양반집의 체면과 법도

그리고 반듯이 아들을 낳아 대을 이어야한다는 중압감,

이것이 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구속하는지...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얽메어보지 않은 자 불리 단정 짓지 말라...

 

뜰엔 매화가 곱게 피어

지난 시절날을 더욱 애잔히 떠올리게 한다.

 

한옥의 숨겨진 매력은

이렇듯 담 너머로 몰래 훔쳐보는 살가운 풍경에 있다...

 

최치수 어른의 모습인데...

근엄하신 동네의 한 어르신이 기거하시면서

찾아오는 방문객을 상대로 예절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고...

 

사랑채에서 바라본 악양뜰과 아득한 섬진강 풍경이다.

사실, 서희 아버지 최치수가  참판(參判)을 지낸 것은 아니다.

지난날 웃대 조상 중 한 분께서

조선시대 참판(參判) 벼슬을 역임했다 하여

이 댁을 그 때부터 참판댁이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참판(參判)이란,

조선시대에 육조(六曹)의 종2품에 해당하던 벼슬로

요즘의 도지사 급에 해당하는 꽤나 높은 벼슬자리였다.

 

최치수 어른은 벼가 누렇게 익어가던 가을날

저 넓은 악양뜰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아마도 만석지기 대가집의 대가 끊어지는 한스러움에

깊은 시름에 잠겼을 터~~

 

마당가엔 할미꽃이 곱게 피었다.

 

그리고 반가운 선홍빛 진달래도 꽃망울을 터트린다.

 

무거운 걸음으로 최참판댁을 나왔다

 

섬진강 매화마을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성질급한 벚나무 몇 구루는

벌써 꽃망울을 터트리는 녀석도 있다.

 

이곳부터는 4차선 왕복도로가 완공되어

시원스레 달리니 기분이 맑고 상쾌하다.

 

지나고 스쳐가는 산비탈 마을마다 하얀 매화가 피었다.

 

저 강 건너가 광양읍 다압면 매화마을...

 

오~ 세상에~!

꽃피는 산골은 바로 저런 모습이야~

빨리 가서 보고싶어...

마음은 이미 저만치 앞서 달리며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참... 1+1= 의  정답은... "힘들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