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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쇄원(瀟灑園)...
자연(自然) 속에 절의(節義)을 품은 은둔(
소쇄원(瀟灑園)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朝鮮時代)에 건립한 정원(庭園)이다.
조선(朝鮮) 중종(中宗) 때의 학자(學者)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스승인 조광조(趙光祖)가 화를 입자,
시골로 은거(隱居)하러 내려가 지은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절제된 자연미(自然美)의 아름다움이 조선시대(朝鮮時代) 원림(園林) 중에서도 첫손에 꼽힌다.
소쇄원(瀟灑園)이라 함은 양산보(梁山甫)의 호 소쇄옹(瀟灑翁)에서 따온 것으로,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처음 지어진 당시의 건물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소실되었으나 다시 복원(復元)하여 현재 2동이 남아 있다.
소쇄원(瀟灑園)은
조선(朝鮮) 중기(中期) 호남지역(湖南地域)의 사림문화(士林文化)를 이끈 인물들의 교류처(交流處) 역할도 하였다.
면앙(俛仰) 송순(宋純),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그리고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 제봉(霽峰) 고경명(髙敬命), 송강(松江) 정철(鄭澈) 등이 드나들면서
정치(政治), 학문(學文), 사상(思想) 등을 논(論)하던 구심점(求心點) 역활을 하기도 했다.
소쇄원(瀟灑園) 안에는
영조(英祖) 때 당시 소쇄원(瀟灑園)의 모습을 목판(木版)에 새긴 그림이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소쇄원(瀟灑園)은 선비의 고고한 품성(品性)과 절의(節義)가 엿보이는 아름다운 정원(庭園)으로,
조선시대(朝鮮時代)를 대표할 수 있는 자연미(自然美)를 살려 지은 정원(庭園)이다.
현재의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梁山甫)의 5대손(五代孫)인 양택지에 의해 보수된 모습이라 한다.
광풍각(光風閣)
"비온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을 가진 사랑방으로 찾아온 벗들과 교류하는 공간이다.
또한 선비는 학문에만 전념하면 각박해지기에 예술(藝術)을 겸비해야 한다 하여,
그림과 음악을 곁들였다.
따라서 이곳은 서화(書畵)와 악기(
제월당(齊月堂)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을 품고 있는 주인집으로,
주인이 기거하면서 생활과 학문(學文)을 겸했던 안채.
오곡문(五曲門)
"담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다섯가지의 음악을 동시에 연주하는 듯 아름답게 들린다"하여 붙여진 문(門) 이름이다.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 물은
폭포가 되어 일부는 작은 연못을 지나 다시 계곡으로 흘러든다.
KBS 전국을 달린다 촬영팀
이 외에도 제월당(齊月堂) 담벽에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慮)"라는 담벽락에 박힌 검정 돌판이 있다.
이는 1700년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서체(書體)로,
"소쇄(瀟灑)"는 양산보(梁山甫)의 호로 맑고 깨끗함, 초심, 마음을 씻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양공지려(梁公之慮)"는 양산보(梁山甫)의 초라한 집이라는 뜻이 담긴 말이다.
따라서 "이곳은 맑고 깨끗하게 마음을 씻는 양산보의 오두막집이다".대강 이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 모습을 분명히 카메라에 담은 듯 한데...
어찌하다보니 사진이 날아가고 없어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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