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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등산

안동(安東) 하회마을

안동(安東) 하회(河回)마을은...

풍산(豊山) 유씨(柳氏) 씨족(氏族)마을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문신(文臣)인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을 비롯한
조선(朝鮮) 중엽(中葉)을 풍미한 영남지방(嶺南地方) 양반문화(兩班文化)의 산실(産室)이다.
퇴계(退溪)로부터 이어지는 영남(嶺南) 유학파(儒學派)의 학풍(學風)이 이어져 내려오는 고장이며
조선(朝鮮) 사대부가(士大夫家)의 건축양식(建築樣式)과 전통문화(傳統文化)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서깊은 마을이기도 하다.
하회(河回)가 배출한 여러 인물(人物) 중
대표격(代表格)인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선생을 중심으로 짧은 소견(所見)과 역사관(歷史觀)으로
체취(體臭)와 정신(精神)을 느껴보면서 세세히 살펴보려 했으나...
날씨가 어찌나 춥고 바람이 세던지~ 아쉬움이 많았다.
따스한 봄날 디시 방문하여 자세하게 둘러보고자 한다.
여기 번개불에 콩 궈 먹듯 대충대충 돌아 본 모습의 사진들을 올린다.

하회마을을 가려면...
방문객(訪問客)은 누구를 막론하고 마을에서 한참 동떨어진 마을입구 공용주차장에서
2,000원짜리 주차권(駐車券)을 구입하고 주차를 해야 한다.
그리곤 왕복 500원씩 받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하회마을로 들어가는데...
약 5분정도의 이동시간이 걸린다.

가봤던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주차장 주변은 민속식당과 주점들이 옛 모습으로 모여있어
마치 민속촌(民俗村)같은 분위기로 장터를 형성하고 있다.

안동(安東) 하면 역시~! 간고등어가 유명한 명물(名物)이고...
도수(度數)가 꾀나 높은 안동소주(安東燒酎)도 역사 깊은 특산품(特産品)이다.
소주하니까 일반적으로 물에다 에틸알콜(ethyl alcohol)을 섞어 만든 희석(稀釋) 막소주를 연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막걸리를 증류해 빚어내는 청주(淸酒)로 맛과 향이 깊은 맑은술이다.
간고등어 정식이 1인분 기준 8,000원을 받는데 짜지도 않으면서 맛이 좋다.

장터 중앙의 정자(亭子)

 저 초가집들이 모두가 식당이다. 

셔틀버스에서 내리면 정면에 보이는 기념관(紀念館).
이건 뭐 완전 영국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여왕(女王) 사진으로 도배를 했고...
전시품(展示品)이란 게 그에게 자랑스럽게 진상했다는 음식들의 이미테이션(Imitation)이 주종을 이룬다.

이럴려면 차라리...
"엘리자배스 2세 여왕 기념관(Elizabeth II 女王 紀念館)"이라고 이름을 바꾸던지...

걸어서 5분여를 마을쪽으로 가면 진짜 하회마을이  나온다.
전통(傳統)을 보존하기 위해 외부인 차량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본래의 모습을 보존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한 눈에도 느껴진다.

사실... 하회마을을 설명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만큼 역사의 숨결이 담벼락마다 기와장마다 가득 숨어있는 마을로
대충 돌아본다면 그 기와집에 그 초가집으로
그런 그런 민속촌(民俗村) 같은 마을을 보는 것에 불과하여 별 재미가 없다.

허나 속을 들여다 보면 대단한 문화적(文化的) 가치(價値)와

한국적(韓國的) 전통(傳統)이 깔려있는

소중한 문화재(文化財)란 걸 알 수 있다.

이 마을엔 국보(國寶)로 지정된 문화재(文化財)만도 2가지가 있다.

유명한 "하회탈"과 유성룡(柳成龍) 선생의 역작(力作)인 "징비록(懲毖錄)"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보물급(寶物級) 문화재(文化財)와 민속자료(民俗資料)는 수도없이 많다.

하회탈놀이의 역사(歷史)는...
고려시대(高麗時代)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은 역사를 이어온 탈놀이문화라고 전해진다.
모두 9개의 탈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반문화(兩班文化)의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을 해학(諧謔)으로 엮어,
춤과 욕설 그리고 농(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서민(庶民)들의 한풀이 마당놀이다.
9개의 탈중 3개는 기록만 있고 분실되어 원형을 알 수 없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예전엔 10여 년에 한 두 번씩 백중날이나 명절날에 질펀하게 열리던
"하회 별신굿 탈춤놀이"는
지체높은 양반님들이 슬그머니 등돌리고 너그러이 눈감아 주던 
상놈들의 한풀이 놀이마당으로 
간접적으로는 서민들의 불만을 귀담아 듣던 언론(言論) 창구의 역활로도 한몫 했던 게 사실이다.

회마을에 하나뿐인 찻집어찌나 춥던지... 간판도 없는 찻집에 뛰다시피 들어갔다.
그리고... 방안 가득 향이 퍼지는 따끈한 유자차를 시켜 언 몸을 녹이며 한모금 마시니 살 것만 같다.
예순이 넘은 쥔 아주머니는 하회마을의 토박이로 
양반고장인 답게 예의가 아주 반듯한 분이셨다.

그간 하회마을엔 샐 수 없을만큼 많은 인사들이 다녀갔단다.
비근한 예로 2007년엔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 다녀갔고...
북촌주택(北村住宅)에선 2008년에 한류 스타 배용준이 하룻밤 묵어 갔다며 찻집 아줌마가 일러준다.
풍산(豊山) 유씨(柳氏) 집성촌(集姓村)인 하회마을엔...
사실 고려시대(高麗時代)부터 허씨(許氏)와 안씨(安氏)가 먼저 터잡고 살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미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있었단다.
그들은 끝내 집성촌(集姓村)을 형성하지 못했고.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와서는 탈놀이문화만 남겨 둔 체 

지체 높은 풍산(豊山) 유씨(柳氏)들 세력에 밀려나고 말았다.

한 마을에 이토록 많은 대궐같은 기와집이 몰려있는 건,
유씨(柳氏) 가문(家門)의 번성(蕃盛)이 가장 큰 이유이며
또한 풍산(豊山) 유씨(柳氏) 각 종파(宗派)들의 종가(宗家)가 옹기종기 모여있기 때문이다.

골목을 돌아서면 만나는 솟을대문 속의 대궐같은 기와집.
그리고... 멀찌감치 떨어져 돌아 앉은 허리 굽은 초가집들...
극명한 대조(對照)를 이룬다.

마을 골목을 돌아보기로 했다.

높은 담장... 그리고 안쪽 깊이 자리한 마님의 거처인 안채(眼彩)

지금도 사랑채에선 어르신의 헛기침소리와 장죽(長竹) 두둘기며 
하인(下人)을 부르는 소리가 담벽을 넘어올 것만 같다.

골목을 돌아서면 여기도 기와집... 참말로 많기도 하다.
이렇게 많고 보기드믄 고가촌(古家村)이지만 영화나 드라마 촬영은 철저하게 금하며,
아직도 집집마다 후손(後孫)들이 선조(先祖)들을 자랑스러워 하며 대를이어 살고있다.

사대부가(士大夫家)의 전통(傳統)과 생활양식(生活樣式)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고가(古家)들...
규모도 규모지만 세월에 색 바랜 멋과 운치(韻致)가 가히 예술이다.
오래전부터 탈춤놀이가 벌어지 곤 했던 넓직한 마을 한가운데 공연마당.
저 넓은 마당엔 흥(興)과 애환(哀歡)이 함께 어울려 
질펀한 서민(庶民)들 설움이깊이 깊이 녹아들었을 것이다.

그 중...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선생의 생가(生家)이며 

종가(宗家)인 "충효당(忠孝堂)"만 들어가 봤다.
선생은 3정승(三政丞)을 모두 지낸 인물로 대단한 권력(權力)과 명예(名譽)를 누렸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의 명장(名將)인 권율(權慄)과 이순신(李舜臣)을 발굴하여 
천거(薦擧)한 안목(眼目) 높은 전략가(戰略家)이기도 했다.
충효당(忠孝堂) 안에는 종가(宗家) 박물관(博物館)인 영모각(永慕閣)이 따로 지어져 
선생의 유품(遺品)들을 일반에 전시하고 있었다.

안채(眼彩)로 들어가는 문(門).

별채로 이어진 쪽문

사랑채 앞의 정원(庭園).

유성룡(柳成龍) 선생이 관직(官職)에서 물러난 뒤 머물던 사랑채.

랑졸망한 정원수(庭園樹)도 보통 수백 살 먹은 고목(古木)으로 자랐다.

박물관(博物館)인 영모각(永慕閣)에 전시된 유품(遺品) 몇 가지를 살펴보면...
선조(宣祖)가 유성룡(柳成龍) 선생에게 비밀글로 지시를 내린다는 밀서(密書)이다.
내용은... 앞으로 과인(寡人)과 유성룡(柳成龍)만이 아는 비밀 암호(暗號)로 지시(指示)를 내릴테니...
긴밀히 행하라는 내용으로 지금도 어보(御寶)가 선명하다.
임금께서 얼마나 선생을 신뢰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문서(文書)이다.
선생에게 임금이 내린 교지(敎旨)로 벼슬이름과 관직(官職)이 적혀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징비록(懲毖錄)으로...
국보(國寶) 제132호로 지정된 임진왜란(壬辰倭亂)의 귀중한 유물(遺物).
징비록(懲毖錄)은 선생이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끝난 뒤 

임난(壬亂)의 문제점과 과제(課題)를 세밀하게 적은 책으로,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이 쓴 "난중일기(亂中日記)"와 더불어
임진왜란(壬辰倭亂) 문제점(問題點)을 적은 지침서(指針書)이며 

국가(國家) 비밀사항(秘密事項)을 기록한 책이다.

징비(懲毖)란... 미리 징계(懲戒)하여 후한(後恨)을 경계(警戒)한다는 뜻이다.
징비록(懲毖錄)의 내용은...
임진왜란(壬辰倭亂) 전(前)의 일본(日本)과의 관계(關係) 
그리고 명(明)나라의 구원병(救援兵) 파병 문제와,
제해권(制海權) 장악(掌握)에 대한 내용 등

임난(壬亂) 때 전황(戰況) 등이 사실적(寫實的)으로 적혀있다.
선생이 관직(官職)에서 물러난 뒤 향리(鄕里)에서 기록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선생 부인(夫人)인 이씨부인(李氏夫人)에게
선조(宣祖) 임금이 내린 교지(敎旨)로 "정경부인(貞敬夫人)"이란 칭호(稱號)를 내렸다.

이건 유성룡(柳成龍) 선생이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한 뒤
앞으로 국가발전(國家發展)에 힘써달라는 교시(敎示)와 임명장(任命狀)이며,
하단에 대나무 회초리에 군데군데 말려 있는 종이막대기가 어사화(御賜花)이다.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한 뒤 말을 타고 향리(鄕里)에 내려 올 때 

관모(官帽)에 달았던 장식품(裝飾品)이다.

내가 놀란 것이 이 가죽신발인데...
유성룡(柳成龍) 선생이 실제 신었던 신발로... 

신발 크기가 무려 300mm는 훨씬 넘어 보이는 아주 큰 신발이다.
버선발로 신었던 걸 감안한다 해도
신발 크기로 미루어 짐작 컨데 선생의 체구(體軀)가 얼마나 장대했는지 추측이 된다.
요즘 애들 크기로 보면 최하 190Cm는 넘지 않았을까~?.

화단에 심어 호박덩이만 하던 동그란 소나무가 이렇게 자랐다.
그만큼 세월이 갔다는 얘기가 된다.

하회마을을 분류하자면 북촌(北村)과 남촌(南村)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북촌(北村)의 대표 가옥(家屋)인 북촌가옥(北村家屋)은 원래 99칸의 대가(大家)였단다.
그런데... 오래 전 홍수(洪水)로 피해를 입어 현재는 절반정도만 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와 지붕에 자란 "와송(瓦松)"이라는 선인장과(仙人掌科)의 풀이다.
와송(瓦松)은 오래된 기와지붕과 가파른 바위꼭대기나 척박한 돌틈에서 자라는 특이한 식물로,
곱게 갈아서 꿀과 섞어 먹으면 남정네들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하회마을...

물이 돌아가는 물돌이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가호호(家家戶戶)마다 그리고 앞산 부용정(芙蓉亭)에 올라 지형까지도 자세하게 흝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찌나 춥던지~
처삼촌(妻三寸) 묘(墓) 벌초하듯 대충대충 돌아보고 와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내년 봄 복사꽃이 만발할 때 다시 방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