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명시 감상

출사표(出師表)... 제갈량(諸葛亮)

원회 choi 2014. 4. 14. 00:00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

 

출사표(出師表)는

신하(臣下)가 적을 정벌(征伐)하러 떠나기 전에 황제(皇帝)나 왕(王)에게 올리던

표문(表文)을 말한다.


역대(歷代) 이래로 여럿 출사표(出師表) 중에서도

중국(中國) 삼국(三國) 시대(時代)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쓴

출사표(出師表)가 가장 유명하다.


이 출사표(出師表)는

제갈량(諸葛亮)이 당시 위(魏)나라 황제(皇帝)인

조예(曹叡):(조조(曹操)가 늙어 병사(病死)하고
그의 셋째 아들 조비(曹丕)가 위(魏)나라를 세우고 황제(皇帝)에 올랐다.


그러나 7년 후 조비(曹丕)마저 폐병으로 일찍 죽자,

조비(曹丕)의 맏아들이 황제(皇帝)에 등극(登極)했는데,

그가 조예(曹叡)이다.)를 치기 위해 출병을 하며,
20세의 나이 어린 촉한(蜀漢)의 황제(皇帝)

유선(劉禪)에게:(촉한(蜀漢)을 세운 유비(劉備)가 병사(病死)하자,

뒤이어 그의 아들이 황제(皇帝)에 올랐다. 그가 유선(劉禪)임.)
북벌(北伐)을 해야하는 이유와 명분(名分),

그리고 자신이 자리를 비우고 없을 때의 내치(內治) 등

간곡한 당부를 적어 올린 표문(表文)이다.


지금 소개하는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는

전출사표(前出師表)와 후출사표(後出師表)로 나뉘는데,

 

전출사표(前出師表)는
1차 북벌(北伐)을 위해 출병하면서

나이 어린 황제(皇帝)께 내치(內治)를 간곡하게 부탁하며 올렸던

눈물겨운 상소문(上疏文)이다.


이 글을 읽고 울지 않는 이가 없다 할 정도로 빼어난 문장(文章) 속에

나라에 대한 애국심(愛國心),

그리고 얼마전에 죽은 선제(先帝) 유비(劉備)에 대한 충성심(忠誠心)이 가득 담겨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크게 칭송 받는 문장(文章)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라고 하는 것은

지금 소개하는 전출사표(前出師表)를 말하는 것이다.


"관리(管理)들이 이 글을 읽고 울지 않으면 그는 충신(忠臣)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문장(名文章)으로 통하며,
그 원문(原文)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내용이 좀 길어서 먼저 전출사표(前出師表)를 올리고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후출사표(後出師表)도 올릴 예정이다.


출사표(出師表)를 쓴 제갈량(諸葛亮)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또는 책으로 보았기에,

그의 명석(名釋)한 두뇌(頭腦)와
세상의 판세(版稅)를 보는 탁월한 안목(眼目)과 지혜(智慧)

그리고 족적(足跡)에 대해서는 너무도 방대하여,

훗날 따로 그를 소개할 예정이니 여기서는 생략하는 바이다.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

남송(南宋)의 충신(忠臣) 악비(岳飛) 장군(將軍)이 쓴 친필(親筆)로,

중국 사천성(四川省) 성도시(成道市) 백제성(百濟城) 내(內)

제갈량(諸葛亮)과 유비(劉備)를 모신 사당(祠堂)인

무후사(武侯祠)에 걸려있다.

 

아울러 저의 학문적(學文的) 깊이가 미천하다 보니

간혹 원문(原文)과 다른 해석(解釋)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먼저 양해드리는 바이다.


전에도 서너 번 밝혔듯이

저는 한문(漢文)이나 한학(漢學)을 전공(專攻)하지도 않았으며
체계적(體系的)으로 배운적도 없다.


따라서 유년(幼年) 시절 사형(師兄)들이

동네 사랑방에서 훈장(訓長)님께 한문(漢文)을 배우던 시절,


어께너머로 익혔던 천자문(千字文)을 비롯한 명심보감(明心寶鑑)과

소학(小學) 등의 몇 귀절 남은 건덕지와,
취미삼아 혼자서 틈틈히 독학(獨學)으로 익혔던

얄팍한 지식이랄 것도 없는,
몇 줄 한자(漢字)들을 가지고,

당시(當時)의 복잡한 정치(政治) 상황(狀況)과 정세(政勢)

그리고 인물(人物)들을

현대(現代)에 맡게 번역(飜譯)및 직역(直譯)을 하자니

부담 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고로 몇 번이고 망설이다

이제서야 블로그에 올리고자 한다.


제딴에는 관련 문헌(文獻)을 뒤지고

정사(正史)인 서진(西晉) 때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중

제갈량전(諸葛亮傳)"을 정독(精讀) 하면서

한 달여에 걸쳐 틈 나는 데로 해석(解釋) 및 준비를 했으나,


간혹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하여

틀린 부분이 더러 있을 것으로 예상 되오니,

지적을 주시면 제게는 큰 공부로 여기고 고맙게 받겠나이다.

 

前(전) 出師表(출사표)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殂, 今天下三分, 益州罷弊.
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금천하삼분, 익주파폐,

선제(先帝)께서는 왕업을 시작하여,

그 반(半)도 이루지 못하신 체 붕어(崩御) 하셨사옵니다.
작금(昨今)의 천하(天下)는 셋으로 나뉘었고,

익주(益州)는 피폐(疲弊)해 졌사옵나이다.


此誠危急存亡之秋也. 然侍衛之臣, 不懈於內, 忠志之士, 忘身於外者,
차성위급존망지추야. 연시위지신, 불해어내, 충지지사, 망신어외자,
참으로 황실(皇室)의 존망(存亡)이 위급한 때이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폐하(陛下)를 모시는 신하들이

궁중(宮中)에서 소임(所任)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충성스런 장수(將帥)들이

먼 전장(戰場)에서 자기 몸을 잊고 분전(奮戰)하는 것은,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 誠宜開張聖聽, 以光先帝遺德,
개추선제지수우, 욕보지어폐하야. 성의개장성청, 이광선제유덕,

그들이 전날에 입었던 선제(先帝)의 각별하신 은총(恩寵)을 생각하여

그 은덕(恩德)을
폐하께 갚고자 하는 까닭이옵나이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밝으신 귀를 여시어 신하들의 간언(諫言)을 들으시고
선제께서 남기신 덕(德)을 크게 빛내셔야 하오며.


恢弘志士之氣, 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以塞忠諫之路也.
회홍지사지기, 불의망자비박, 인유실의, 이색충간지로야.

뜻 있는 선비들로 하여금

기개(氣槪)를 크게 떨칠 수 있도록 열어주시옵소서.
또한 공연히 폐하(陛下)
스스로 덕(德)이 없다 하시며

옥체(玉體)를 가벼이 여기시고,
신하들이 간(諫) 하면,

사리(事理)에 맞지 않은 비유(比喩)를 들어 변명하시며

정도(正道)를 잃으시거나,
충성스런 마음에서 올리는 간언(諫言)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으셔서는

절대로 아니 되옵나이다.

 

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若有作奸犯科及爲忠善者,
궁중부중, 구위일체, 척벌장부, 불의이동. 약유작간범과급위충선자,

폐하께서 계신 궁중(宮中)과,

대신(大臣)들이 있는 부중(府中)은 한몸과 같사옵니다.
어디서 일하는 자이건,

선(善)한 자는 벼슬을 올려주시고, 악(惡)한 자는 벌(罰)을 주시며,
그에 따른 작은 차별(差別)이라도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옵나이다.
만약 간악(姦惡)한 일을 저질러 죄(罪)를 범한 자(者)가 있거나,

충성스럽고 착한 자(者)가 있거든,

 

宜付有司, 論其刑賞, 以昭陛下平明之理, 不宜偏私, 使內外異法也.
의부유사, 논기형상, 이소폐하평명지리, 불의편사, 사내외이법야.

마땅히 그들을 사직(辭職)에 넘겨 죄(罪)와 공(公)을 논(論)하시어,

폐하(陛下)의 공정(公正)하고 바른 정치(政治)를
밝게 드러내셔야 하옵나이다.
이 또한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정(情)에 치우쳐,

상용(常用)하는 법(法)이 달라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侍中侍郞, 郭攸之.費褘.董允等, 此皆良實, 志慮忠純, 是以先帝簡拔,
시중시랑, 곽유지.비위.동윤등, 차개량실, 지려충순, 시이선제간발,
시중(侍中) 곽유지(郭攸之),

그리고 시랑(侍郞) 비위(費褘)와 동윤(董允) 등은

선량(選良)하고 신실(信實)하여,
그 뜻과 생각이 누구보다도 충성스럽고 한결같사옵니다.
그런 까닭에 선제께서는 그들을 발탁(拔擢)하시여,


以遺陛下. 愚以爲宮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然後施行,
이유폐하. 우이위궁중지사, 사무대소, 실이자지, 연후시행

폐하께 남겨주신 것이옵니다.
어리석은 신(臣)의 생각으로는,

궁중(宮中)의 일은 크고 작은 일을 불분하고 모두
이들과 상의하신 후 시행(施行) 하신다면,


必能裨補闕漏, 有所廣益. 將軍向寵, 性行淑均, 曉暢軍事, 試用於昔日,
필능비보궐루, 유소광익. 장군상총, 성행숙균, 효창군사, 시용어석일,

부족하고 모자라는 점을 충분히 채우실 수 있아옵고,

널리 유익(有益)한 일이 있을 것이옵니다.
장군 상총(向寵)은,

그 성품(性品)이 선량(選良)하고 행위(行爲)가 바르며,

특히 군무(軍務)에 밝사옵니다.
그를 기용(起用)하여 시험해 보시고는,

 

先帝稱之曰"能" 是以衆議擧寵爲督. 愚以爲, 營中之事, 事無大小,
선제칭지왈"능" 시이중의거총위독. 우이위, 영중지사, 사무대소,

일찍이 선제께서 말씀하시길, 

"군무(軍務)에 뛰어난 재능(才能)이 있다" 라고

칭찬하셨사옵나이다.

그런 까닭에,
여럿이 상의하여

상총(向寵)을 도독(都督)의 자리에 앉혔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신(臣)의 생각으로는

진중(陣中)의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悉以咨之, 必能使行陣和睦, 優劣得所也. 親賢臣遠小人,
실이자지, 필능사행진화목, 우열득소야. 친현신원소인,

모두 상총(向寵)을 불러 상의하신다면,

그는 틀림없이 진중(陣中)을 화목하게 하고,
재능(才能)이 뛰어난 자(者)와 열등(劣等)한 자(者)를 잘 가려

그들에게 알맞는 임무(任務)를 맡길 것이라 보옵나이다.
어진 신하들을 가까이하고 소인(小人)들을 멀리했던 것이,


此先漢所以興隆也, 親小人遠賢臣, 此後漢所以傾頹也. 先帝在時,
차선한소이흥륭야, 친소인원현신, 차후한소이경퇴야. 선제재시,

전한(前漢)이 흥륭(興隆)하였던 까닭이옵니다.
그러나 소인들을 가까이하고 어진 신하들을 멀리 한 것이,
후한(後漢)이 기울어졌던 까닭이기도 하옵니다.

선제께서 살아계실 때는,


每與臣論此事, 未嘗不嘆息痛恨於桓靈也. 侍中尙書.長史.參軍,
매여신론차사, 미상불탄식통한어환영야. 시중상서.장사.참군,

늘 신(臣)과 더불어 이러한 일들을 논의 하셨아오며,

환제(桓帝)와 영제(靈帝) 때의
일을 두고는 늘 가슴 아파 하셨아옵나이다.
시중상서(侍中尙書) 진진(陳震),

장사(長史) 장예(張裔), 참군(參軍) 장완(蔣琬) 등은,

 

此悉貞亮死節之臣也. 陛下親之信之, 則漢室之隆, 可計日而待也.
차실정양사절지신야. 폐하친지신지, 칙한실지륭, 가계일이대야.

모두 지조(志操)가 굳고 성실한 신하들로서,

충절(忠節)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신하들이옵니다.
폐하께서 이들을 가까이하여 믿고 쓰신다면,
한실(漢實)의 부흥(復興)은

날짜를 세시면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라 보옵나이다.

 

臣本布衣, 躬耕南陽, 苟全性命於難世, 不求聞達於諸侯,
신본포의, 궁경남양, 구전성명어난세, 불구문달어제후,

신(臣)은 본래 평민(平民)으로서,

남양(南陽)의 벽지에서 밭을 갈던 자(者)에 불과하옵니다.
난세(亂世)를 피하여 구차스럽게 목숨을 보전하려 했을 뿐,
제후(諸侯)에 나아가 입신출세(立身出世) 할 생각은

전혀 없었사옵니다.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諮臣以當世之事.
선제불이신비비, 외자왕굴, 삼고신어초려지중, 자신이당세지사.

그런데 선제께서는,

신(臣)의 미천한 신분(身分)을 개의치 않으시고,
송구스럽게도 귀하신 몸을 굽혀 신(臣)의 초막(草幕)에

세 번 씩이나 내왕(來往)하셔서,
당면(當面)한 세상(世上)의 일들을 신(臣)에게 물으셨사옵니다.

 

由是感激, 許先帝以驅馳. 後値傾覆, 受任於敗軍之際, 奉命於危難之間,
유시감격, 허선제이구치. 후치경복, 수임어패군지제, 봉명어위난지간,

이에 신(臣)은 감격하여,

선제(先帝)를 위하여 신명(身命)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던 것이옵니다.
그 후 당양(當陽
)

의 장판(長坂)에서 조조(曹操)에게 대패(大旆)하여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선제께서는 신(臣)에게 나라를 구하라 명(命)하셨사옵니다.
신(臣)은 패군(敗軍) 때부터 명(命)을 받고서,

지금까지 나라의 위난(危亂) 속에서 선제(先帝)의 명(命)을 받든지

 

爾來二十有一年矣. 先帝知臣勤愼. 故臨崩, 寄臣以大事也. 受命以來,
이래이십유일년의. 선제지신근신. 고임붕, 기신이대사야. 수명이래,

어언 21년이 되었사옵니다.

선제께서는 신(臣)이 조심스럽고 신중하다는 것을 아시옵고,
붕어(崩御)
하실 때에 신(臣)에게 적군(敵軍) 토벌(討伐)과

한실(漢實) 부흥(復興)의 큰 일을 부탁하셨사옵니다.
신(臣)은 선제(先帝)의 유명(遺命)을 받은 이래로,


夙夜憂慮, 恐付託不效, 以傷先帝之明.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숙야우려, 공부탁불효, 이상선제지명. 고오월도로, 심입불모.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선제께서 부탁하신 일을 이루지 못하여
선제(先帝)의 밝으신 덕(德)을 손상시키지나 않을까

늘 두려워 하였사옵니다.
따라서 신(臣)은 5월에 노수(怒水)를 건너 불모(不毛)의 땅에

깊이 들어갔사옵니다.

 

今南方已定, 兵甲已足, 當奬率三軍, 北定中原, 庶竭駑鈍, 攘除姦凶,
금남방이정, 병갑이족, 당장솔삼군, 북정중원, 서갈노둔, 양제간흉,
이제 남방(南方)은 이미 평정(評定) 되었고,

병기(兵器)와 갑옷도 충분하옵니다.
마땅히 군대(軍隊)를 거느리고 나아가,

북쪽을 쳐 중원(中原)을 평정해야 할 때이옵니다.
바라건데, 신(臣)은 아둔한 재주(才操)이오나 있는 힘을 다하여,
간흉(姦凶) 조예(曹叡)를 물리치고,

 

以復興漢室, 還于舊都, 此臣所以報先帝, 而忠陛下之職分也.
이부흥한실, 환우구도, 차신소이보선제, 이충폐하지직분야.

한실(漢失)을 부흥(復興)시켜

옛 도읍(都邑)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신(臣)의 책무(責務)라 여기오며,
이는 신(臣)이 선제(先帝)의 은혜(恩惠)에 보답하고,

폐하(陛下)께 충성(忠誠)을 다하는 동시에
직분(職分)을 다하는 길이라 여기옵나이다.


至於斟酌損益, 進盡忠言, 則攸之.褘.允之任也. 願陛下,
지어짐작손익, 진진충언, 칙유지.위.윤지임야. 원폐하,

아울러 국가(國家)의 이익(利益)과 손해(損害)을 혜아려,

폐하께 나아가 충언(忠言)을 올리는 것들은.
조정(朝廷)의 일을 맡은 곽유지(郭攸之),

비위(費褘), 동윤(董允) 등의 책임이라 여겨지옵나이다.
원컨데 폐하께서는

 

託臣以討賊興復之效, 不效則治臣之罪, 以告先帝之靈.
탁신이토적흥복지효, 불효칙치신지죄, 이고선제지령.

신(臣)에게 적(敵)을 토벌(討伐)하고

한실(漢實) 부흥(復興)의 공업(公業)을 세우는 일을

맡겨 주시옵소서.
만약 신(臣)이 공훈(功勳)을 세우지 못하면

신(臣)의 죄(罪)를 다스려 선제(先帝)의 영(靈) 앞에 고하시옵소서.

 

若無興德之言則責攸之.褘.允等之咎, 以彰其慢. 陛下亦宜自謀,
약무흥덕지언칙책유지.위.윤등지구, 이창기만. 폐하역의자모,

또한 폐하(陛下)께 덕(德)을 세울 만한 올바른 직언(直言)을 올리지 않는다면,
곽유지(郭攸之), 비위(費褘),

동윤(董允), 등의 허물을 꾸짖어

그들의 태만(怠慢)을 드러내시옵소서.
아울러 폐하께서도 몸소 일을 도모하시어

 

以諮諏善道, 察納雅言, 深追先帝遺詔. 臣不勝受恩感激, 今當遠離,
이자추선도, 찰납아언, 심추선제유조. 신불승수은감격, 금당원리,

신하들에게 좋은 방법에 대하여 늘 하문(下門) 하시옵고,
신하들의 직언(直言)을 깊이 받아들이시어

선제께서 남기신 말씀을 따르시옵소서.
신(臣)은 선제(先帝)의 은혜(恩惠)를 입은 감격(感激)을 이기지 못하여,
이제 멀리 정벌(征伐) 길에 오르며,


臨表涕泣, 不知所云.
임표체읍, 부지소운.
이 표(表)를 올리오니 눈물이 앞을 가려,

무어라 말씀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사옵나이다.

 

- 끝 -

 

역사서(歷史書)는...

이 출사표(出師表)를 황제(皇帝)께 올리고

촉한(蜀漢)의 병사들이 북벌(北伐)을 위해 진군(進軍)하자,

"사기가 천하(天下)에 진동했다 " 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