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명시 감상

봉입경사(逢入京使): 장안(長安)으로 가는 사신(使臣)을 만나다... 잠삼(岑參)

원회 choi 2014. 2. 26. 17:08

잠삼(岑參) 715~770

 

후베이 성(湖北省) 장링(江陵) 태생(胎生)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唐) 태종(太宗) 때의 재상(宰相)을 역임한 잠문본(岑文本)의 증손(曾孫)으로
명문가(名門家) 출신이다.

서기 744년 30세의 나이로 진사과(進士科)에 급제(及第)하여

병조참군(兵曹參軍)이 되었다.


잠삼(岑參)은 평볌한 관료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자,

차라리 변방에 나아가 전공(戰功)을 세워 입신출세(立身出世)를 작정했다.

그러던 중 35세가 되어서야

안서지방(安西地方)

오늘날의 신장위그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의 투루판(吐魯番)에서,
절도사(節度使)로 있던 고선지(高仙芝) 장군(將軍)
서기관(書記官)를 시작으로

북정(北庭) 도호부(都護府)의 판관(判官) 등 여러 벼슬을 거쳐,
가주자사(嘉州刺史)에 이르기까지

변방(邊方)의 전쟁터를 두루 누비고 다녔다.


고선지(高仙芝) 장군(將軍)은
고구려(高句麗) 유민(流民) 출신의 당(唐)나라 장수(將帥)로

서역(西域)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당(唐)나라 영역(領域)을 서역(西域) 멀리까지 확장시킨 장본인이다.


아무튼 변방(邊方)의 공직(公職)을 두루 거친 잠삼(岑參)은

가주자사(嘉州刺史)의 임기 말료 후 장안(長安)으로 돌아오던 중,
안록산((安祿山)이 이끄는 반란군(叛亂軍)에 막혀 성도(成都)에 체류하다가

향년 56세로 객사(客死)했다고 알려진다.

 

逢入京使(봉입경사): 장안(長安)으로 가는 사신(使臣)을 만나다.

 

故園東望路漫漫(고원동망로만만): 고향(故鄕)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니 길은 아득히 멀어,
雙袖龍鍾淚不乾(쌍수용종루불건): 두 소매 눈물에 젖어 마를 날 없네.
馬上相逢無紙筆(마상상봉무지필): 말 위에서 서로 만난지라 종이와 붓이 없어,
憑君傳語報平安(빙군전어보평안): 그대에게 부탁하노니 평안(平安)하다고 전해주구려.

 

이 시(詩)는 안서(安西) 절도사(節度使)의 판관(判官)으로 부임하려고

서역(西域)으로 가는 도중,
마침 길에서 장안(長安)으로 가는 사신(使臣)을 만나자,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며 지은 시(詩)로 간절함이 담겨 있다.


동쪽으로 머나먼 고향땅 장안(長安)쪽을 바라보니...
길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이렇게 멀리 떠나오니
가족 그리움에 옷소매는 눈물에 젖어 마를 날 없다.


마침 고향(故鄕)으로 가는 사신(使臣)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어,
집에 소식을 전하려하나

말 위라 종이와 붓을 갖추지 못해 편지를 쓸 겨를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말로라도 가족들에게 평안(平安)하게 잘 있다고 전해달라는

작가(作家)의 마음에서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이 묻어난다.


본 시(詩)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진솔하게 표현한

객중시(客中詩)의 으뜸으로 꼽히는 명시(名詩)이다.

 

 잠삼(岑參)은

중국(中國) 당(唐)나라 성당기(盛唐期)에 활동했던 시인(詩人)들 중,

고적(高適)과 함께

변새시인(邊塞詩人)을 대표하는 시인(詩人)으로 불린다.

 

그의 시(詩)들은
자신이 체험한 변방의 황량한 풍경,

전쟁의 참상, 장병들의 영웅적(英雄的)인 기개(氣槪) 등,

남성적(男性的)인 필치로 그린 사실적(寫實的) 시(詩)가 대부분으로
변새시(邊塞詩) 장르에서 탁월한 업적(業績)을 남겼다.

 

그의 문집(文集) 이름을 "잠가주집(岑嘉州集)"이라고 지은 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역임한 벼슬이 가주지방(嘉州地方)의 자사(刺史),
즉 오늘날 사천성(四川省) 낙산현(樂山縣)의 자사(刺史)였기에 그리 지었으며
그의 문집(文集)에 399수의 시(詩)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