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소부지임촉주(送杜小府之任蜀州): 촉주로 부임하는 두소부를 전송하며... 왕발(王勃)
왕발(王勃) 650~676
자를 자안(子安)으로 쓰며
산서성(山西省) 강주시(絳州市) 하진현(河津縣) 용문(龍門) 출생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설에는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 출생이라고도 하여 정확하진 않다.
수(隋)나라 말기의 유학자(儒學者) 왕통(王通)의 손자이다.
그는 조숙(早熟)한 천재(天才)로
6세 때 이미 문장(文章)을 잘 지었다고 알려진다.
어려서 그 재능(才能)을 인정받아
서기 664년 왕발(王勃)의 나이 열 다섯 살에 이미 조산랑(朝散郞)이란 벼슬을 받았다.
2년 뒤 17세 때인 서기 666년에는 당당히 유소과(幽素科)에 급제했을 정도로
뛰어난 천제성(天才性)을 나타냈다.
곧이어 왕족(王族)인 패왕(沛王) 현(賢)의 부름을 받고 그를 섬겼으나,
당시 장안(長安)에서 유행하였던 닭 싸움놀이
즉 투계(鬪鷄)에 대하여 장난으로 쓴 글이
고종황제(高宗皇帝)의 노여움을 사는 일이 되고 만다.
그 일로 궁궐에서 쫓겨나
쓰촨(四川) 지방의 하급관리(下級官吏)로 좌천(左遷) 된다.
그 뒤에 관노(官奴)를 죽였다는 죄(罪)로
지방관(地方官) 관직(官職)마저 박탈 당하고 방황을 한다.
얼마 후 교지(交趾): 현 베트남 북부지방)의 영(令)으로 좌천(左遷) 된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던 중,
배 안에서 술에 취해 바다에 추락하여 익사(溺死)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만 26세 때 일이다.
왕발(王勃)은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양형(楊炯), 노조린(盧照鄰), 낙빈왕(駱賓王) 등과 함께
초당(初唐) 4걸(四傑)이라 불리는
당(唐)나라 초기의 대표적(代表的)인 시인(詩人)에 속한다.
종래의 육조시(六朝詩)의 껍질을 벗어나 참신하고 건전한 정감(情感)을 읊었으며
특히 5언절구(五言絶句)에 뛰어났다.
시문집(詩文集)으로 왕자안집(王子安集) 16권을 남겼으니...
젊은 나이에 왕성한 글을 남긴 그는 분명 천재(天才)였다.
送杜小府之任蜀州(송두소부지임촉주):
촉주로 부임하는 두소부를 전송하며
城闕輔三秦(성궐보삼진) 삼진(三秦)이 둘러싼 장안(長安)의 성궐에서
風烟望五津(풍연망오진) 바람과 안개 그윽한 오진(五津)을 바라본다.
與君離別意(여군이별의) 그대와 이별하는 이 마음
同是宦遊人(동시환유인) 우린 다 같이 벼슬살이로 떠도는 사람이지.
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 천하(天下)에 지기(知己)만 있다면야
天涯若比隣(천애약비린) 하늘 끝에 있다해도 이웃과 같으리니.
無爲在岐路(무위재기로) 헤어지는 갈림길에서
兒女共霑巾(아녀공점건) 아녀자 같이 눈물로 수건 적시지 마시게나.
- 주(註) -
본 시(詩)의 내용 중 서너 개 자구(字句) 풀이를 하자면...
두소부(杜小府): 두(杜)는 성씨(姓氏)를 말하는 것이고,
소부(小府)는 현위(縣慰)의 별칭(別稱)으로 벼슬이름을 지칭한다.
따라서 두씨(杜氏) 성(姓)을 가진 벗이 현위(縣慰)가 되어 장안(長安)을 떠나가는 중이다.
삼진(三秦)은: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일대로
옛날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는 진(秦)나라 땅이었는데,
초(楚)나라의 항우(項羽)가 진(秦)을 멸망시킨 후
그 지역을 옹(雍), 새(塞), 적(翟), 등 삼국(三國)으로 나누었다.
이를 통털어 삼진(三津)이라 불렀다는 말에서 유래한다.
오진(五津)도: 사천성(四川省) 민강(岷江)에는
백화진(白華津) 만리진(萬里津) 강수진(江首津) 등등 다섯 개의 나루가 있었는데
이를 합해 오진(五津)이라 불렀다.
본 시(詩)는 송별시(送別詩)이다.
첫째 연을 보면 송별시 답게
이별하는 장소(場所)와 떠나가는 자의 목적지(目的地)가 나와 있다.
삼진(三秦)은 장안(長安) 일대이고,
오진(五津)은 사천성(四川省) 민강(岷江)일대에 있는 다섯 개의 유명한 나룻터로
장안(長安)에서 사천지방(四川地方)으로 부임 차 떠나는
벗 두소부(杜少府)를 전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연에서는 벗이 지방(地方)으로 떠나는 관리(官理)이기에
언젠가는 자신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위로 한다.
셋째 연은 유명한 구절로
천하(天下)에 애송(愛誦)되는 명구절(名句節)로 알려져 있다.
"천하(天下)에 지기(知己)만 있다면야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과 같으리니"라는 표현이
천고(千古)에 칭송(稱頌)되는 명구(名句)로 남았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해도
마음만 통한다면 천리 길도 이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
사실이지... "마음이 단절(斷絶)되면 지척(咫尺)도 만리(萬里)요.
마음이 통(通)하면 만리(萬里)도 지척(咫尺)인 법이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연에서는 갈림길에서 헤어짐을 아쉬워 한다.
송별시(送別詩)에서는 이처럼
눈물로 수건을 적신다는 관용적(慣用的)인 표현을 자주 쓰는데,
그도 눈물을 적시지 말자는
대장부다운 굳은 의지(意志)로 시(詩)를 마무리 지었다.
해마다 2~3월이면...
공직(公職)과 기업체(企業體)에서는
자리(自利) 이동(移動)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 퇴임식(離 退任式)과 취임식(就任式)으로 부산해지는 것도 이 무렵이고,
승진(昇進)을 알리는 현수막(懸垂幕)이 고향 어귀에 나부끼는 것도 이 때이다.
예나 지금이나 송별(送別)과 이별(離別)은 늘 아쉬움 속에 눈물로 헤어지곤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 멀리 떠난 내 벗은...
이 차가운 겨울날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 좀 챙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