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行)... 두목(杜牧)
두목(杜牧) 803~852
자는 목지(牧之)이고 호는 변천(變川)으로 쓴다.
산시 성(陝西省) 시안(西安) 사람이다.
이름 난 가문(家門)의 자제(子弟)로 조부(祖父) 두유(杜愈)는
유명한 역사가(歷史家)로 3대(三代)의 재상(宰相)을 지냈다.
명문자제(名門子弟) 답게 26세에
진사(進士)에 급제(及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급 시험인 현량방정과(賢良方正科)에도 합격하여 앨리트 관료로 관직(官職)을 출발했다.
그러나 정치적(政治的)으로 배척(排斥)을 받아
한동안 지방관(地方官)을 전전하는 등 벼슬길이 순조롭지 않았다.
그러다 홍문관교서랑(弘文館校書郞),
병조참군(兵曹參軍), 감찰어사(監察御史) 등을 역임하면서
순탄한 길로 들어섰고,
말년(末年)에는 중서사인(中書舍人) 즉 임금의 비서직(秘書職)을 하다가
서기 852년 11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정치적(政治的)으로 밀려나 오랜세월 지방관(地方官)으로 떠돌다 보니
주색(酒色)으로 많은 세월을 달래며 방탕(放蕩)한 생활과 풍류(風流)를 즐겼기에
풍류제자(風流弟子)란 별칭으로도 불렸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자리를 잡고부터는 강직하고 수완(手腕) 좋은 관료(官僚)로 이름이 높았다.
젊은 시절 그의 시(詩)는 오랬동안 강남(江南)에 체류했기에
아름다운 강남풍경(江南風景)과 향락적(享樂的)인 도시생활을 즐겨 노래 했다.
화려하고 염정적(艶情的)인 색채(色彩)가 짙어
중국화류문학(中國花柳文學)의 신기원(新紀元)을 이뤘다는 평(評)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들어서는
현실(現實)을 직시(直視)하고 우국(憂國)의 정서(情緖)를 담은 작품(作品)들이 많다.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의 시(詩)는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며 애수(哀愁)가 깃들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애송(愛誦)하는 시(詩)이기도 하다.
중국(中國) 고전(古典) 시문학계(詩文學界)에서는
성당(盛唐)의 시인(詩人) 두보(杜甫)를 일컬어 "노두(老杜)"라 칭하고,
만당(晩唐)의 시인(詩人) 두목(杜牧)을 가리켜 "소두(小杜)"라고 부른다.
그의 작품집(作品集)으로는 변천문집(變川文集)에 200여 수의 시(詩)가 실려 있다.
山行(산행)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멀리 쓸쓸한 산, 경사진 돌길...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人家)가 있네.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수레 멈춘 건 황혼의 단풍숲 사랑하기 때문이라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서리 맞은 단풍잎 2월의 꽃보다도 붉구나.
늦은 가을날 울퉁불퉁 경사진 돌밭길을 따라 수레을 타고 산길을 가는데
저 멀리 흰구름이 이는 곳에 인가(人家)가 보인다.
단풍든 숲의 가을 풍경을 좋아하여 수레 세우고 앉아 경치를 감상하자니
저 서리 맞은 붉은 잎이 2월의 꽃보다도 더 붉고 아름답구나~!.
본시는 두목(杜牧)이 담주(潭州) 지금의 장사시(長沙市)를 유람하면서 지은 시(詩)이다.
담주(潭州)의 악록산(岳麓山) 산기슭에다
후세(後世)의 문인(文人)들이 두목(杜牧)의 싯구를 따서 애만정(愛晩亭)이란
정자(亭子)를 지었다.
애만정(愛晩亭) 주위로는 온통 단풍나무로 둘러싸여 봄이면 온갓 새들이 지저귀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다워 오늘날에도 많은 행락객이 찾는 명승지(名勝地) 중 한곳이다.
애만정(愛晩亭)이란 이름은 두목(杜牧)의 시(詩)
산행(山行)의 세번쨋구 "정거좌애풍림만(停車坐愛楓林晩)"의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원래 이 정자(亭子)의 이름은 홍엽정(紅葉亭)이라고 지었었는데,
애만정(愛晩亭)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청(淸)나라 시인(詩人) 원매(袁枚) 때문이라고 전한다.
원매(袁枚)가 홍엽정(紅葉亭)에 올랐다가
이 정자(亭子)는 애만정(愛晩亭)이라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고 하자,
당시 악록산(岳麓山)에서 서원(書院)을 열고 후학들을 길러내며,
악록서원장(岳麓書院長)으로 있던 나전(羅典)이란 사람이
그 말을 전해 듣고서 즉시 현판을 바꿔달았다고 전해진다.
늦가을 단풍 든 산의 경치를 묘사한 아름다운 시(詩)이다.
산길, 인가, 흰구름, 붉은 단풍...
이 모두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情趣)를 그린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시인(詩人)은 쓸쓸한 가을 산의 흰 구름과
붉게 물든 단풍을 대비시켜 선명한 색채미(色彩美)를 과시했다.
특히 이 시(詩)의 묘미(妙味)는 뒤의 두 구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저녁놀에 비낀 서리맞은 단풍잎이,
음력 2월 즉 양력으로 치면 3월 이른 봄에 활짝 핀 봄꽃보다도 더 붉다는 표현은
시(詩)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시인(詩人)은 황혼녁의 단풍 든 숲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수레를 멈추고,
길을 가는 것도 잊은 체 넋을 잃고 가을 산의 정취에 흠뻑 취해 있다.
어쩌면 황혼(黃昏)에 물든 단풍 숲을 바라보며
인생(人生)의 황혼녁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찬 서리 속에서도 불타는 단풍잎이
오히려 화사한 봄꽃 보다도 더 붉다고 찬미(讚美)한 것은,
온갓 풍상(風霜)을 견디고 살아온 인생(人生)의 황혼빛이
싱그러운 청춘(靑春)의 빛 보다
더욱 아름답다고 강변(强辯)한 것은 아니었을까~?.
시(詩)에서 2월이라고 했는데
무슨 한겨울에 꽃이 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는 음력(陰曆)을 사용하던 시절이기에
요즘의 양력(陽曆)으로 치면 3월에 해당하며
중국 남녁에는 3월 초순이면 화사한 봄꽃이 만발하여 꽃천지를 이룬다.
두목(杜牧)은 붉게 타오르는 단풍잎에
자신의 마지막 남은 열정(熱情)을 투영(投影)해
이 시(詩)를 지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 주(註) -
참고로 이 "산행(山行)"을
두보(杜甫)가 지은 시(詩)로 잘 못 알고 있는 이가 넘쳐난다.
심지어는 "두목(杜牧)"이라고 버젓이 한문(漢文)으로 써놓고서
"두보"라고 한글로 토를 단 웃지 못할 글들도 많다.
이는 모두가 한문(漢文)도 읽지 못 하면서
남이 올려놓은 글들을 무작위로 퍼다가 옴겨놓은 결과로,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잘못 된 글은 기재해서는 안 되며
진실(眞實)을 외곡(歪曲)한 나쁜 행위로 삭제 및 중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