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왕망령(王莽嶺)과 괘벽공로(掛壁公路)... 태행산(太行山)

원회 choi 2013. 11. 5. 17:33

 

중국(中國)... 타이항(太行) 대협곡(大峽谷)을 가다.

 
왕망령(王莽嶺)과 괘벽공로(掛壁公路)

극(極)과 극(極) 사이를 오고 가다.

 

왕망령(王莽嶺)은

800여리나 되는 태행산(太行山) 자연(自然) 경관지구(景觀地區)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는 곳이다.
산시 성(山西省) 능천현(陵川縣)에서 동쪽으로 약 45km정도 떨어져 있는데,
전한(前漢)을 멸(滅)하고 "신(新)"을 건국한 황제(皇帝) "왕망(王莽)"
뒷날 동한(東漢)의 개국(開國) 황제(皇帝)인 "류수(劉秀)"와 큰 싸움이 이곳에서 있었다.
그와 쫓고 쫓기는 싸움에서 왕망(王莽)은 이곳에 진(陣)을 치고 치열하게 싸웠으나

결국은 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그가 세웠던 "신(新)"이란 나라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후세 사람들은 왕망(王莽)의 사람됨을 높이 사서 이 능선(稜線)을 "왕망령(王莽嶺)"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중원대륙(中原大陸)에는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나라들이 세워졌고 또 사라졌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있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오직 신(神)만이 알 뿐이다.

위에 언급한 "신(新)"이라는 나라는

서기 9년부터 23년까지 14년 간 산시 성(山西省) 일대에 존재했던 나라인데,

대중적(大衆的)으로 널리 알려진 나라는 아니었다.


산시 성(山西省)과 허난 성(河南省)의 경계지역인 이곳은
드넓은 황토고원(黃土高原)과 중주평원(中州平原)의 단층지질대(斷層地質垈)로
지세가 험준하고, 높고 낮은 50여 개의 산봉우리가 산재해 있다.
왕망령(王莽嶺)의 최고 높이는 해발 1,665m이며

작은 봉우리가 300m로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서로 어울려 절경(絶景)을 이룬다.
또한 이곳은 찬 기류(氣流)와 따스한 기류(氣流)가 자주 만나는 지형적(地形的) 특성으로

중국(中國) 북방(北方) 지역(地域)에서는 흔치 않게 안개가 자주 끼어 일출(日出)과 운해(雲海)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몽환적(夢幻的) 풍경(風景)을 연출하기도 하는 멋진 산맥이기도 하다.

 

 여기가 왕망령(王莽嶺) 주차장.

 

 왕망령(王莽嶺)을 알리는 표지석이 가장 놓은곳에 서 있다.

 

 고개 너머로 조금씩 드러나는 몽환적 풍경들...

 

 여기 3단의 계단형으로 된 건물이 왕망령(王莽嶺)호텔이다.

객실 침대에 누어서 일출을 감상한다는데...

세상에~!

자연경관(自然景觀)과 조화(調和)를 고려하여 지은 듯 낮은 건물로 지었다.

여기서 하룻밤을 잤어야 했는데...

 

전망대(展望臺)로 향하며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 모습

 

 자그마한 고갯마루를 돌아서자...

 

마치 태행산(太行山)을 축소해 놓은 모형 같은 아기자기한 바위골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 모습 또한 예술이었다.

 

왕망령(王莽嶺) 표지석(標識石) 뒤로 서서히 드러나는 수묵화 같은 풍경(風景)...!

 

 이렇게 안개가 낀 모습도 마치 잘 그린 동양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박무(薄霧)가 없는 맑은날이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절벽 앞 전망대(展望臺)에서 바라보는 눈 앞에 펼쳐진 장엄한 풍경.

 

 

 왕망령(王莽嶺)에는

전망 좋은곳을 골라 저런 전망대(展望臺)를 군데군데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곳곳을 세세하게 볼 수가 있다.

 

 와우~~~!.

 

 

 

 

 

 이곳은 돌개바람이 자주 불어서

꽃잎이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한다는 산화합(散花合)이다.

 

발 밑이 천길 낭터러지기

 

 으이그 무시라~!.

 

 수 억년의 세월은

커다란 바위산을 깎아서 저런 멋진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

 

 

 

 자세히 보면

저 천길 낭떠러지기 절벽 밑으로 많은 샛길들이 보인다.

일부의 트래킹 코스와 이곳 원주민들이 산야초를 캐러 다니는 길이라고 했다.

 

 

괘벽공로(掛壁公路)

왕망령(王莽嶺)에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른 절벽을 타고 지그재그로 바위 속 터널을 통과하여 내려오는데,
터널 속은 자연동굴처럼 아무런 시설 보강을 하지 않았으며

울퉁불퉁한 바위 조각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마치 동굴 안에 무수히 매달린 종유석(鍾乳石)을 방불케 했다.

좁다란 바닥만 겨우 시멘트로 포장을 했을 뿐이다.


그 흔한 전등도 설치되지 않은 터널은

군데 군데 벽을 뚫어놓아 그 구멍으로 들어오는 자연채광(自然採光)이
유일한 빛이다.
절벽 속에서 지그재그로 통과하는 이 무시무시한 길을
"괘벽공로(掛壁公路)"라고 하는데 "공중에 걸린 도로"란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중국(中國) 정부에서 15년의 난공사(難工事) 끝에 완성한 길이라고 하지만
너무도 위험천만(危險千萬)하여 간장(肝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이제는 왠만한 절벽길에 적응이 됐으련만...

표정들을 보니 모두가 겁에 질려 굳어 버렸고 매일 이 길만 운전한다는

버스기사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신이 난 듯 했다.

 

 중간쯤 내려와 창밖을 보니...

저기 내가 흰색으로 선을 그어놓은 곳의 숭숭 뚫어진 구멍들...

저 바위 속이 지금 내려온 절벽길이 들어 있고 구멍들은 그야말로 숨구멍이다.

 

 세상에...

앞으로도 한참을 내려갈 까마득한 저 벼랑길...

 

 어떻게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보다는

왜 만들었는지가 더 궁굼했다.

 

지구상에는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리고 이 중국땅에도 13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사람이 많은 땅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겠지만... 별의별 구경거리들도 참으로 많다.

 

저런 어려운길을 뚫지 말고 차라리 다릿발을 높게 세워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다리를 놓았더라면,

고생도 덜하고 인명 피해도 적었을 텐데... 라는 생각도 해봤다.

만약에 그렇게 만들었다면...

내가 여길 올 이유도 없었거니와

설령 왔다 해도 이곳에서 저 절벽을 바라보며 탄성 섞인 감탄도 없었을 것이다.

처음 저 괘벽공로(掛壁公路)를 뜷을 때는 주민들의 편리를 위해 시행한 공사였겠지만...

그 무대뽀적인 용기(勇氣)와 원시적(原始的)인 발상(發想)이,

일반적(一般的) 상식(常識)을 뛰어넘다 보니...

세계적(世界的)인 볼거리로 유명해져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하여 이곳의 위험한 절벽길은 후손들을 먹여 살리는 귀중한 유산(遺産)으로 변했으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요상한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