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명시 감상

추흥(秋興)2수(二首): 가을날의 감흥... 두보(杜甫)

원회 choi 2013. 9. 30. 21:02

 秋興(추흥) 二首(2수)

 

夔府孤城落日斜(기부고성낙일사): 기부의 외로운 성에는 저녁 해 기울고
每依北斗望京華(매의북두망경화): 늘 북두성을 바라보며 장안을 그리워 하네.
聽猿實下三聲淚(청원실하삼성루): 원숭이 울음 세 마디에 눈물이 흐르고
奉使虛隨八月槎(봉사허수팔월사): 사명을 받들고 팔월의 뗏목을 헛되이 따른다네.
畵省香爐違伏枕(화성향로위복침): 화성의 향로는 배게의 엎드림과 어긋나고
山樓粉堞隱悲笳(산루분첩은비가): 분칠한 산누의 담벽 넘어로 구슬픈 피리소리 애잖구나.
請看石上藤蘿月(청간석상등라월): 그대 보시오, 돌 위의 등나무에 걸렸던 달이
已暎洲前蘆荻花(이영주전노적화): 이미 모래섬 앞 갈대꽃 비추는 것을...

 

기부(夔府)의 외로운 성(城)에 해가 질 무렵,
나는 늘 북두성을 기준삼아 서울(長安)의 하늘을 바라본다.

 

원숭이 울음소리 세 번만에, 이곳 어부들의 노래처럼 눈물이 흐르고,
천자(天子)의 명을 받들고 뗏목을 타기는 했으나,
그 옛날 장건(張騫)처럼 사명(使命)을 다하진 못 하고 있다네.

 

저기 장안(長安)의 벽화가 그려진 상서성(商書省)의 향로는
내가 엎드려 자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고,
산 위 누각(樓閣)의 흰 담 너머엔 구슬픈 피리소리 은은하구나.

 

그대 보게나, 조금 전까지 정원 돌 위의 등나무를 비추던 달이,
벌써 저 강가의 모래섬 앞 갈대꽃을 비추고 있잖은가~!.

 

첫째줄의

"기부(夔府)"는 당(唐)나라 때 기주(夔州)에 도독부(都督府)를 설치 했는데,
그 도독부(都督府)란 관청(官廳)를 이르는 말이다.
기주(夔州)는 커다란 세 개의 협곡(峽谷)이 만나는 곳에 있다.

길고 긴 장강(長江) 줄기 중 가장 험난한 곳이다.


그래서 삼협(三峽)이라고 부르는데,

그중에서도 무협(武峽)이 가장 험하고 길다.
지금은 이 협곡(峽谷)에 세계에 가장 큰 댐인 산샤(三峽)댐이 건설 되어

중국 전체 전력 생산량의 1/10을 생산하고 있다.


아무튼 장안(長安)에서 촉(蜀)으로 가려면 이 험난한 협곡을 반듯이 지나서 가야 했는데,
깎아지른 절벽과 소용돌이치는 험악한 물결은 악명이 높아

예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오죽했으면 뱃길을 마다하고

바위 벼랑에 굴을 파서 천리길이 넘는 잔도(棧道)를 만들어 이용했겠는가~!.
이 협곡의 벼랑과 절벽 나뭇가지에는

오랜 옛날부터 원숭이들이 무리지어 사는데,
저녁마다 여기 저기서 가족을 찾으며 울어대는 울음소리가

깊은 협곡을 타고 메아리로 울려 퍼질 때는 어찌나 구슬픈지,
듣고 있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구슬펐다고 한다.


따라서 원숭이 울음 세 마디에 눈물이 난다는 말은
이곳 협곡(峽谷)에서 고기잡이 어부들이 부르는 민요(民謠)에 나오는 가사(歌詞)를

두보(杜甫)가 시(詩)에서 인용을 했다.

 

그리고 본 시(詩)에서 네째 구"봉사허수팔월사(奉使虛隨八月槎)"

중국(中國) 서진(西晉) 시대(時代) 장화(張華)가 쓴
"박물지(博物志)"에서 인용한 글이다.


"바닷가에 사는 어떤 사람이 어느 해 8월에 우연히 흘러온 뗏목을 타고 가다 보니
하늘나라의 냇물에 다았다" 전설이 실려있다.

참고로 박물지(博物志)

당시 중국(中國)의 동물(動物), 식물(植物), 광물(鑛物), 지질(地質) 등의

자연계(自然界)의 사물(事物)이나 현상(現象)을

종합적(綜合的)으로 기록한 책으로,

요즘으로 치면 백과사전류(百科事典類)의 책이라고 보면 된다.

 

또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전하길, 전한(前漢) 시대(時代)의 탐험가

장건(張騫)

무제(武帝)의 영(令)을 받아 서역국(西域國)에 사신(使臣)으로 갔을 때

뗏목을 타고 황하(黃河)의 근원(根源)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하늘나라의 개울에 도착했다는  전설화(傳說化) 된 이야기가 내려온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의 초(荊楚)지역 말하는데,

지금의 후베이 성(湖北省)으로
후난(湖南) 지방의 행사와 풍속 등을 기록한 책으로

6세기 중기에 양(梁)나라 사람 종름(宗懍)이 지었다.

 

하여튼 장건(張騫)이란 개척자로 인해서

서역(西域)과 당(唐)나라가 연결된"실크 로드(Silk Road)"가 처음으로 개통되었다.

이로 인해 당(唐)이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에 알려졌으며

당(唐)나라의 비단(Silk)과 도자기(ceramics)가 서역으로 팔려나가고

간다라 지방의 불교(佛敎)와 페르시아의 보석, 융단, 향신료(香辛料), 유리 등이

당(唐)으로 밀려 들어왔다.

 

진(秦)나라 부터 한(漢)나라 때 까지

흉노의 침략에 대응하고자 월지라고 하는 나라에 사신을 보내

힘을 합쳐 흉노를 몰아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으나

높은 설산(雪山)인 천산산맥(天山山脈)에 막혀 도중에 모두 죽기도 하고

월지(支)란 나라가 흉노(匈奴)의 심사를 잘 못 건드렸다간 불똥이 자신들에 튈 것을 겁내

거부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장건(張騫)도 월지(月)를 설득하진 못했으나,

부수입으로 서역으로 가는 길을 알아내는 성과를 거둬 그 때부터 서역로(西域路) 즉 실크로도가 

열리는 계기가 된다.

 

월지로 떠났던 일행 중 다 죽고 겨우 한 두 명만 살아서 거지꼴로 돌아오자,
한무제(漢武帝)는 맨발로 뛰어나가 장건(張騫)을 맞이하며
물을 쏟았다.

"짐은 두 번 다시 그대를 짐 곁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그의 가족과 후손들을 극진히 대했다는 이야기가 문헌에 전해오고 있다.


두보(杜甫)는 본 시(詩) 둘째 연에서

위의 세 가지 전고(傳古)를 묶어서 시(詩)에 인용을 했다.

 

아무튼 윗 시(詩)에서 장건(張騫)은

황제(皇帝)의 명(命)을 받들어 뗏목을 타고 하늘에 갔는데,
두보(杜甫) 자신은

당시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이란 비록 하급(下級)이지만 벼슬자리에 있었으면서도
촉(蜀)에 피난을 와 제구실을 못하고 중도 하차한 격이니
헛되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 하여"허수(虛隨)"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8월은 해석에 따라서
가을을 나타내는 추(秋)8월로 보기도 하고,

두보(杜甫)가 기주(夔州)에 온지 8개월 째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시제(詩題)에서도 알 수 있듯 추(秋)가 정확성이 더 높다.

 

"화성(畵省)"이란 말은 상서성(商書省) 벽에

옛날 성인(聖人)과 열사(烈士)들의 형상(形象)을 그려놓았기 때문에
화성(畵省)이라 불렀다.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이란 두보(杜甫)의 낮은 벼슬은

상서성(商書省) 관할에 속했기 때문에
본 시(詩)에서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리고 향로(香爐)는 향을 피우는 화로를 말하며,
당시는 관리가 숙직을 할 때 시녀(侍女) 두 명이 향로를 가지고 와서 관리의 의복을
향내가 배도록 하기 위해 옷을 널고 밑에다 향을 피웠다고 한다.
따라서 두보는 원래대로 하면

상서성(商書省)에 근무하면서 향로에 자신의 옷을 쬐어야 하는데,
그는 지금 변란(變亂)을 피해 상서성(商書省)을 떠나 기주(夔州)에 와서

배게를 베고 잠이나 자고 있으니
상서성(商書省) 근무와는 아주 어긋났다는 표현의 귀절이다.

 

이상으로써 나름대로 시(詩)에 나오는 전고(傳古)를 풀었는데

이해가 되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두보(杜甫)는 윗 시(詩)에서 몸은 기주(夔州)에 피난 와 있으면서도

마음만은 늘 장안(長安)의 황제(皇帝)를 향한 충성심(忠成心)이

시(詩)에 가득 담겨 있슴을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달빛의 이동을 통해

순식간에 흘러가는 속절없는 세월에 대한 무상함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