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의항(烏衣巷)... 유우석(劉禹錫)
유우석(劉禹錫) 772~842
자를 몽득(夢得)으로 쓰며
허난성(河南省) 뤼양(洛陽) 즉 낙양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설에는 장쑤성(江蘇省) 출신이라는 설(說)이 있기도 한데,
그리 정확성은 없어 보인다.
서기 795년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하여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로 있던
두우(杜佑)의 막료직(幕僚職)을 시작으로 관직(官職)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나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왕숙문(王叔文)의 정치개혁(政治改革)에 적극 가담했다가 실패하여,
왕숙문(王叔文)은 관직(官職)에서 쫏겨나고
유우석(劉禹錫)은 연주사마(連州司馬)와 낭주사마(朗州司馬) 등,
수도 장안(長安)에서 먼 남쪽지방의 말직(末職)으로 좌천(左遷)되었다가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겨우 조정(朝廷)으로 올라온다.
그 후 다시 기주(夔州)와 화주(華州) 등지의
자사(刺史)로 좌천되며 여러차례 부침을 반복하다가
만년(晩年)에는 태자빈객(太子賓客)을 끝으로 관직(官職)과 생을 마감했다.
생(生)의 전반(前半)에는 훗날 대(大) 문장가(文章家)가 된
젊은날의 유종원(柳宗元)과 의기투합(意氣投合)했었고,
후반(後半)에 들어서는 대시인(大詩人)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稹) 등과
가깝게 지내며 많은 시(詩)를 많이 지었다.
그의 시(詩)는 통속적이면서도 청신(淸晨)한 민요풍의 정조(情操)를 풍겨
중당시(中唐詩)의 또 다른 시풍(詩風)을 개척했다고 평가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사회 부조리를 우회적으로 고발한 시(詩)를
여러 편 남기기도 했다.
烏衣巷(오의항)
朱雀橋邊野草花(주작교변야초화): 주작교 주변엔 들꽃 만발하고
烏衣巷口夕陽斜(오의항구석양사): 오의항 어귀에는 석양이 비껴드네.
舊時王謝堂前燕(구시왕사당전연): 옛 시절 왕씨 사씨 저택 앞의 제비들
飛入尋常百姓家(비입심상백성가): 이젠 백성들 집에 예사로이 날아든다.
- 주(註) -
오의항(烏衣巷)은
오늘날 남경(南京)의 "진회(秦淮)"를 말한다.
진회(秦淮)은 남경(南京)을 지나서 양자강(揚子江)으로 흘러가는
운하(運河)의 이름으로,
기원전 진(秦)나라 때 만들어졌으며 운하(運河)를 중심으로
양 기슭은 옛 모습을 간직한 유람지로 유명하여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 명소이다.
후한(後漢) 말기 삼국시대(三國時代) 때 검은옷을 입은
오(吳)나라 군사들이 분주하게 드나들었다 하여,
오의항(烏衣巷)이라고 불렀으며
당시부터 권문세가(權門勢家)들이 터를 잡고 살던 번화한 거리였다.
본 시(詩)는 석양이 비치는 오의항(烏衣巷) 거리에서
현재의 황량하고 쇠퇴한 거리 풍경에 무상(無常)을 느껴며,
번영(繁榮)과 영화(榮華)를 누리던 옛날을 회상(回想)하며 쓴 시(詩)이다.
주작교(朱雀橋)와 오의항(烏衣巷)은 모두 육조시대(六朝時代)의 도읍(都邑)인
남경(南京)의 이름난 명승지(名勝地)이다.
지난날 오의항(烏衣巷) 거리에는 본 시(詩)에 등장하는 인물인
동진(東晉)의 개국공신(開國功臣)
"왕도(王導)"와 재상(宰相) "사안(謝安)"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이 거리를 중심으로 찬란한 영화(榮華)를 누리며 살았다.
그러나 옛 영화는 사라지고 오가는 사람 발길 끊긴지 오래이며...
집터엔 들풀이 무성하고 저무는 석양빛만 쓸쓸히 거리에 빛날 뿐이다.
작가(作家)는 이 쓸쓸한 오의항(烏衣巷)에서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무상(無常)함에 비애(悲哀)를 느낀다.
석양(夕陽)은 바로 작자(作家)의 쓸쓸한 감정을 대변하는
경물(景物)이라고 보여지며,
시(詩)를 통해 역사에 대한 회상만이 아니라 현실을 예리하게 꽤뚫고 있다.
그 옛날 권문세가(權門勢家)의 대 저택을 드날들던 저 제비가
지금은 일반 백성들의 집을 거리낌없이 드나든다는 표현을 통해,
제비의 주인이 세도가(勢道家)에서
평민(平民)으로 바뀐 역사적 흐름의 반전을 나타냈다.
이는 작자(作家)가 살고 있는 당(唐)나라 중엽(中葉)의
쇠락해가는 현실에 대한 은유적(隱喩的)인 통찰이며,
역사반전(歷史反轉)을 통해 권력(權力)의 덧없음을 시(詩)로써 탄식한 말이라 하겠다.
본 시(詩)에서 작자(作者)는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直說的)으로 표현하지 않고,
거리 풍경만을 과거(過去)와 현재(現在)를 대비시켜 묘사했지만,
시(詩) 내면에는
과거(過去)를 회상(回想)하며 현실을 통찰(洞察)하는
시인(詩人)의 고뇌(苦惱)와 감회(感懷)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작품(作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