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우기북(夜雨寄北): 비 내리는 밤 북쪽의 아내에게 부치다... 이상은(李商隱)
이상은(李商隱)
얼마전에 소개한 그의 시(詩)"매미(蟬)"에서 생(生)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몰락한 가문(家門)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 끝에 스물 여섯살에
당시 조정(朝廷)의 실력자였던 영호초(令狐楚)의 추천을 받아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관직(官職)에 입문했다.
그러나 우,이(牛,李)파벌의 당쟁(黨爭)에 휘말려
결국에는 정쟁(政爭)의 희생양이 되어 정치적 뜻을 이루지 못했던 불우한 인물이기도 하다.
치열한 당쟁(黨爭)의 회호리에 휘말려 평생을 실의와 낙담으로 살아온 삶을
시가(詩歌)에 반영하다 보니
그의 시(詩)에는 번민(煩悶)과 우수(憂愁)에 잠긴 내용이 유독 많다.
그리고 치열하기까지 한 구상(構想)과 풍부한 상상력은
우미(優美)하고 낭만적(浪漫的)인 색채가 농후하며
아름다운 품격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이상은(李商隱)은 당(唐)나라 말기(末期)의 시인(詩人)인
두목(杜牧)의 뒤를 이어 만당(晩唐) 시단(詩壇)을 화려하게 장식한
유미주의(唯美主義) 시인(詩人)으로 예술적 성취는 매우 크다 .
"만당(晩唐)"은 중국 당(唐)나라 때
시(詩)를 짓는 격식이 변하고 바뀌는 것에 따라,
초당(初唐), 성당(盛唐), 중당(中唐), 만당(晩唐)의 네 시기로 나눈 것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시기를 말한다.
또한 "유미주의(唯美主義)"는
미(美)의 추구를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문예(文藝) 사조(思潮) 일컷는 말이다.
특히 그의 연정시(戀情詩) "야우기북(夜雨寄北)"은
그의 또다른 명시(名詩)"무제(無題)"와 함께
고전(古典) 연정시(戀情詩)의 백미(白眉)로 꼽히며,
화려한 수사(修辭)를 동원하여
미려한 연정시(戀情詩)의 정형적(定型的) 틀을 확립한 시인(詩人)이 바로
이상은(李商隱)이다.
그러나 그의 시(詩) 대부분은 지나치게 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많이 인용하고
난해한 시어(詩語)들을 구사하여 어렵기로 유명하나
몽롱하고 아름다운 운율(韻律)과 미려한 표현들은,
읽을수록 무한한 심미적(審美的) 정취를 느끼게 하는 매력이 깔려 있기도 하다.
그의 시어(詩語)및 수사기법(修辭技法)은
만당(晩唐)에서 송(宋)나라 초기의 시인(詩人)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
북송시대(北宋時代)에 생겨난 한 갈래 문예(文藝) 사조(思潮)였던,
대우(對偶)와 전고(典故)를 많이 써서 감상적이고 화려한 시(詩)를 쓰는
"서곤파(西崑派)"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夜雨寄北(야우기북): 비 내리는 밤 북쪽의 아내에게 부치다.
君問歸期未有期(군문귀기미유기): 그대는 돌아올 날 묻지만 아직 기약 없구려.
巴山夜雨漲秋池(파산야우창추지): 파산에 밤비 내려 가을 연못 넘친다오.
何當共剪西窗燭(하당공전서창촉): 언제쯤 함께 서쪽 창가에서 촛불심지 자르며,
卻話巴山夜雨時(각화파산야우시): 파산의 밤비 내리던 때를 얘기할 수 있을려나...
- 주(註) -
파촉(巴蜀)은 중국에서도 변방(邊方) 오지에 속하는
서쪽 땅 옛 촉(蜀)나라 지역을 이른다.
그 외진 곳에서 작가(作家)는 낮은 벼슬살이를 하느라
아내를 파촉(巴蜀)에서 먼 북쪽인 장안(長安)에 두고 홀로 떠나 와 있다.
편치않은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지내는 터에
이밤 따라 왠 가을비가 이리도 극성스레 내리는지 연못이 불어 넘친다.
파산(巴山)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노라니 한없이 외롭고 서글퍼지며
오늘밤 유독 아내가 무척이나 그립다.
아내는 편지마다 언제 오느냐고 늘 물어오지만...
언제라고 시원스레 대답해 줄 수가 없으니...
착찹하고 답답한 심정 늘 안타깝다.
언제쯤에나 우리 함께 촛불 밝히고 긴 긴 밤 지세우며,
파산(巴山)에 밤비 내리는 밤 쓸쓸한 이 심정을...
옛 이야기 하듯 주고 받을 날 있으려는지 아득하기만 하구나...
비 내리는 가을밤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는 이상은(李商隱)의 심정이 절절이 배어나는 애틋한 연시(戀詩)이다.
시어(詩語)가 평이(平易)하고 담담하지만
그 속엔 시인(詩人)의 안타까운 속 깊은 정(情)이 진하게 흐른다.
본 시(詩)는 왠지 두보(杜甫)의 시(詩) "월야(月夜)"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시(詩)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시작(詩作)에는
일반적으로 동일한 글자의 중복을 피하는 것이 상례(常例)이나,
이 시(詩)는 짧은 절구(絶句)인데도 불구하고
한구(句)에 "기(期)"자를 두 번 되풀이해 "기약(期約)"을 강조 했으며
제2구와 제4구에서는 "파산야우(巴山夜雨)"를 중복 사용했다.
그러나 전혀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으니
그 기교(技巧)는 가히 이상은(李商隱)의 독보적(獨步的)인 표현이라 하겠다.
이 시(詩)는 밤(夜)이라는 시간적 상황과 파산(巴山)이라는 공간적 상황,
그리고 비(雨)라는 매체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아내에 대한 애정(愛情)의 깊이를 잘 표현한 시(詩)로
명시(名詩)로 꼽는데 손색(遜色)없는 수작(秀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