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명시 감상

귀원전거, 기삼(歸園田居, 其三): 전원으로 돌아와서의 삶, 3... 도연명(陶淵明)

원회 choi 2013. 7. 15. 13:22

歸園田居(귀원전거) 其三(기삼): 전원으로 돌아와서의 삶.

 

種豆南山下(종두남산하): 남산 밑에 콩을 심었더니
草盛豆苗稀(초성두묘희): 잡초만 무성하고 콩 싹은 드무네.
晨興理荒穢(신흥리황예): 새벽에 일어나 김매러 나갔다가
帶月荷鋤歸(대월하서귀): 달빛을 등지고 호미 메고 돌아온다.
道狹草木長(도협초목장): 길은 좁고 초목만 길게 자라
夕露沾我衣(석로첨아의): 저녁 이슬에 내 옷이 다 젖는구나.
衣沾不足惜(의첨불족석): 옷 젖는 것 쯤 아까울 건 없다.
但使願無違(단사원무위): 다만, 내 바램이 어긋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시(詩)는 도연명(陶淵明)의 "귀원전거(歸園田居) 6"중에

"세번 째 시(詩)"이다.


서기 405년 41세 때 도연명(陶淵明)은

평택현(彭澤縣) 현령직(縣令職)을 그만두고  전원(田園)으로 돌아와
남산 밑 밭에 콩을 심고 새벽부터 밭에 나가 하루종일 김을 매고는
달빛 받으며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는 시(詩)에서 "옷 젖는 것이야 아까울 것 없다.

다만 이내 소원만 빗나가지 않길 바란다"
정성으로 가꾼 농사가 잘 되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있슴을 알 수 있다.


새벽부터 어둑어둑한 저녁까지

밭에서 애쓰고 수고한 곡식에 대한 애정은
농부라면 모두가 똑 같은 간절한 바랩일 것이다.

 

요즘이야 여러 종류의 제초제가 나와서

풀 뽑고 김매는 일은 거의가 사라져버린 옛 추억 같은 일이 됐지만,
20여 년 전만해도
농사일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은 곡식을 덮을 정도로 금새 자란
잡초을 뽑는 김매기가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비탈진 이랑을 기어가며

하루종일 뙤악볕을 이고 호미질로 잡초를 뽑는 고된 작업은

예전에 농사를 지어 본 분들이라면 고개를 설래설래 내저을 정도로

농부들에겐 노동 이상의 사실상 고문에 가까운 고통이었다.

 

일 년 열두 달 때 맞추어

자연(自然)의 순리(順理)에 따라 행해야 하는 바쁜 일이기에 으름을 필 수도 없다.

 

따라서 농부란 부지런하고 끈기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인내의 직업이다.
시인(詩人)은 이런 고된 일을 자청해서 몸소 실천하며 살고 있다.

 

"田園將蕪胡不歸(전원장무호불귀)"
"전원이 황패해지는데 내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라고
소리치고는 벼슬자리를 미련없이 내던지고
전원(田園)의 삶속으로 돌아왔던 그다.
그리고는 이웃한 농부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며 농사에 대해 묻고 배우면서
진정한 농부가 되었다.


바로 이런 점이,
당시 신분(身分)과 계급(階級)이 철저했던 지식인 관료사회에서는
상상키 어려운 파격적인 일로,
그를 진정으로 존경하게 만드는 소탈한 삶의 모습이기에
오늘날까지도 폭넓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고 보여진다.


이와 같이 전원(田園)에서 땀 흘리는 부지런한 삶은
도화원(桃花源) 같은
소박한 이상사회(理想社會)를 그려낼 수 있었던 윈천(源泉)이 되었다고 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