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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三江酒幕): 주모(酒母)는 간곳없고 객(客)만이 서성이다... (경북 예천)

원회 choi 2012. 1. 31. 09:21

 

경상북도 예천군가면

낙동강(洛東江)과 내성쳔(乃城川) 그리고 금천(錦川)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삼강(三江)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옛 모습의 주막(酒幕)이

얼마전까지 문을 열고 있었다.

오래전 "KBS 6시 내고향"이란 프로에서 우연히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촌로의 주모가 나룻배로 오가는 길손에게 막걸리주전자와 커다란 배추전를 안주로

주막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고 참 신기하고 정겨웠던 기억이 있었다.

그 정감 어린 삼강주막(三江酒幕)을 오늘 갔다.

 

날씨가 무척이나 춥다.

그야말로 거시기에서 호두알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어제까지도 포근하던 날씨가 뭐에 삐졌는지 오늘은 완존 겨울한파로 돌아섰다.

강가에 돌아앉은 초가삼칸 주막집...

TV서 보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가 반갑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옆으로 고속도로 같은 반듯한 철다리가 놓여

나룻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방 두 칸에 부억 한 칸과 부억 천장누다락방 한 칸...

 

그리고... 각진 안방 입구에 나루터쪽으로 한 평 남짓한 툇마루가 놓여있다.

얼마나 많은 길손들이 여기 앉아서 탁배기잔을 기울였을까~?.

 

수도없는 술국과 배추전을 끓이고 붙여냈을 옹색한 부뚜막...

 

그리고... 그리고...

정말로 나를 감동시킨 저 벽에 그어진 외상장부들...

 

 부뚜막에도... 찬장 옆에도... 그리고 나뭇간에도... 

외상값 목록이 빗살무늬글로 빼곡이 적혀 있다.

주모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에

길손이 주머니에서 툭 건네주는 동전 몇 닢을 탁배기값으로 받았을 테고,

그도 없는 나그네는 언젠가 다시 들리는 날 주구마~ 하곤

제갈길로 훌쩍 떠나갔을 것이다.

 

하~!

그것도 한 두번이지~

없는 살림 어케 풀칠하라고...

고육책으로 혼자만 아는 글자를 머릴 짜내 만들어

이렇게 주모만이 아는 암호 같은 글로 장부를 대신 해 벽에다 적어 놓았다.

"그나저나 저기 적힌 외상 먹은 손님들 외상값은 다 갚은겨~?."

 

초가삼칸 그리고 옹색한 살림살이...

불과 얼마전까지도 몇 몇 양반집들 빼곤 거의가 그렇게...

그렇게들 살았었다.

 

두 평 남짓한 안방엔 언제부턴가 수많은 사람들이 아름아름 다녀가면서

빼곡한 낙서를 남겨놨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살아온 삶의 온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나루터 주막...

허리 한 번 못 펴고 살아온 삶이지만,

제비새끼처럼 올망졸망한 자식들을요~

작은 둥지방에서 장성으로 키워 다들 출가시켰단다.

 

그리고 세월 속에 늙어간 주모는 어느날 한많던 세상을

학처럼 훨~훨~ 날아갔다.

그런데 난 지금...

가을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앙상하게 늙어가던 지난날 주모가 그립다...

저 방문을 열고 반쯤 찌그러진 양은주전자에

두툼한 배추전이 쟁반 가득 들어올 것만 같은데...

한겨울 매서운 냉기의 강바람이 한지 바른 문살을 사정없이 두둘기며 지나간다.

 

 

TV에서 본 후덕한 인상과 골 깊은 웃음이

 주막 안에 아직도 생생하건만...

진짜 주모는 가고 없고...

어디서 흘러 든 자인지...

연고 없는 객이 자릴 잡고

알량한 입담과 주모 행세로 방문객 주머닐 털어간다.

 

 세월 속에 늙어 간 회화나무 세 그루여...!.

너희들은 또렷이 알고 있겠지...?.

누가 외상값을 떼어 먹었고...

또 누가 주모와 정분(情分)이 나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았는지...

그리고...

한 세상 고단하게 살다 간 골 깊은 주모(酒母)를...

나보다 더 그리워하고 있겠지...

 

                                                                                                          -- 삼강주막(三江酒幕)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