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千年)을 담은 물... 제천 의림지
의림지(義
두 시간을 넘게 운전을 하니 잠시 쉬어가고 싶다.
박달재에서 보이는
건너편 절벽 끝에 앉은 작은 암자(庵
충북 제천시(堤川市)에서 북쪽으로
약 3km 정도를 올라가면 용두산자락에 자그마치 1천 살 먹은 저수지(貯
와~우~~!!
세상에~!
이곳보다 아름다운 다리를 내 본적이 있던가~??.
그림 같은 저수지에... 환상적인 폭포...
중국(中國) 강남(江南)의 고풍스런 원림(
나도 한 컷~ㅎ
의림지(義林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貯
신라(新羅) 진흥왕(眞興王) 때 우륵(于勒)이 처음 제방을 쌓았으며,
700년 뒤에는 고려(高麗) 현감(縣監)이던 박의림(朴義林)이 견고하게 증측했다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의림지(義林池)"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세월이 흘러 조선(朝鮮) 세조(世
정인지(鄭麟趾)가 다시 한번 증축을 한다.
그후로도 1910년과 1948년에도 보수공사를 또 했다.
저수지 무너미 즉 물이 흘러내리는 수문(水門)이다.
비가 많이 오면 폭포처럼 흘러 넘친는데 아찔한 높이다.
시원한 폭포를 한번 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1972년도엔 대홍수(大
의림지는 룰레가 약1.8km의 아담한 저수지로
지금도 하류지역 논에 관계 용수를 공급하는 등,
1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용되는 고마운 저수지이다.
저수지 한 모퉁이엔 물놀이 배도 있다.
저수지 안쪽으로 쭉~뻗은 가지에 살구가 익어간다.
고것 참~!!
삼한(三韓) 시대(時代) 만들어진 저수지가 의림지(義林池) 말고도,
김제(金堤) 벽골제(碧骨堤)와 밀양(密
작년인가 가봤더니...
김제(金堤) 벽골제(碧骨堤) 터에는 기념관(紀
밀양(密
기록으로만 크기와 지명이 전해질 뿐,
자그마한 표석마저 없었다면 흔적조차 찾기도 힘들 정도였다.
삼한시대(三韓時代)라면 3~4세기 무렵으로
막 청동기(靑銅器) 문화(文化)를 지나 철기(鐵器) 문화(文化)가 뿌리내리는 시기로,
농경문화(農耕文化)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국가(國家)도 겨우 틀을 잡던 시기였으므로 한반도(韓半島)가 원시성(原始星)을 막 벗어나는 때이기도 하다.
의림지(義
그런데 자세히 보니 수입 어종인 팔뚝만한 베스(bass)와 손바닥만큼 커다란 불루길(bluegill)이 많다.
지금은 아마 빙어(氷魚)는 씨가 말랐지 않았을까~?.
이토록 아름다운 저수지가 아직도 이렇게 남아있다니...
와우~ 감동이다~!
아마도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지리적(地
왕버들이 물에 잠겨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청송(靑松) 주왕산(周王山) 옆 주산지(注山池)도 의림지(義林池)의 풍치만은 못하다.
멋드러진 운치와 아름다움 그리고 편리한 접근성 등등...
모든면에서 의림지(義林池)가 월등히 앞선다.
우리 민족성(民
적송(赤松)들의 우아한 멋은 의림지(義
가을날 커다란 만월(滿月)을 물에 띄우고 경치를 감상하면 더더욱 아름답다고 하는데,
짙푸른 하늘을 가득 담은 한낮 풍경도 그 못지않게 아름답다.
충북(忠北) 제천시(堤川市)에서
북쪽으로 약 3km 가량를 산속으로 올라가면
용두산자락 남쪽에 천년을 이어온 매혹적인 저수지(貯水池)가 있다.
내가 본 저수지 중 아름다운 저수지로는
중국(中國) 항주(杭州)의 "서호(西湖)"와
사천성(四川省) 청도(成都)의 "구채구(九寨溝)"가 있었는데,
그 다음으로 여기 "의림지(義林池)"를 꼽고싶다.
세월 먹은 고목이 무성한 점도
그들과 같거니와,
멋드러진 운치와 제방 주변의 풍경도 서로 닮아 있다.
다만 의림지의 규모가 작을 뿐이다.
역사책에 몇 줄 나오던 의림지(義林池)란 저수지(貯水池)가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둑방에 제멋겨운 짙푸른 소나무가 백살이 훌쩍 넘는다는 말에
숙연함마저 든다.
지금껏 정성들어 가꾸고 돌봐준 모든 이에게 감사하고 싶다.
이토록 아름다운 의림지(義林池)도
처음엔 알반 저수지와 다를바 없었을텐데...
천년(千年)이 넘는 세월과
제천 시민들 정성이 더해져 이런 멋진 풍광을 만들어냈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몽환적(夢幻的)인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