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령(張九齡) 678~740
당(唐)나라 때 소주(韶州) 곡강(曲江) 사람으로
자(字)는 자수(子壽)이며 일명 박물(博物)로 불렸다.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의 책사를 역임한 유후(留侯) 장량(張良)의
후손(後孫)이라고 전한다.
장구령(張九齡)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문장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다섯살 때에는 시(詩)를 지을 정도로 촉명하여 신동(神童)으로 불리기도 했다.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에 올랐으며
그 후 도모이려과(道侔伊呂科)에 급제하여 좌습유(左拾遺)을 역임하다가
좌보궐(左補闕)로 관직(官職)을 옮겼다.
재상(宰相) 장열(張說)의 추천을 받아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현종(玄宗) 21년에는 중서시랑(中書侍郞)을 지냈으며
뒤이어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그는 머리가 명석하고 일처리가 매끄러워
재직시에도 현명한 재상(宰相)이라는 평을 종종 들었다.
그러나 3년 후인 서기736에
이임보(李林甫)의 모함을 받아 재상직(宰相職)에서 물러나
지방으로 내려가 형주장사(荊州長史)를 지내기도 했다.
이임보(李林甫)는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를 연결시킨 막후의 인물이며,
안록산(安祿山)을 총애하고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둘러
당나라를 위기에 처하게 한 근본적인 인물이다,
장구령(張九齡)은 재상(宰相)으로 있을 때
안록산(安祿山)이 찾아와 만났는데,
이때 안록산(安祿山)의 사람됨이 거칠고 바르질 못해
후에 근심거리가 될 사람임을 간파하고 군법(軍法)을 어긴 그를
직위해제(職位解除)시키고 옥에 가두었으나,
이임보(李林甫)와 양귀비(楊貴妃)의 비호를 받던 안록산(安祿山)은
현종(玄宗)의 명으로 금새 풀려나 복권된다.
이에 장구령(張九齡)은 선친의 묘를 보살핀다는 핑게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그해 울분으로 얻은 화병이 일어 사망했다. 그의 나이 67세였다.
장구령(張九齡)이 죽고나서 얼마후 안록산(安祿山)이 난(亂)를 일으켜
당(唐)나라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에 현종(玄宗)은 장구령(張九齡)의 충언(忠言)을 무시하고
양귀비(楊貴妃)와 이임보(李林甫)의 말에 현혹됨을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현종(玄宗)은 그의 넋을 기려 장구령(張九齡)을
후베이성(湖北省) 징저우(荆州) 즉 형주의 대도독(大都督)으로 봉하고
시호(諡號)로 문헌(文獻)을 내렸다.
시호(諡號)는 죽은 후에 내려지는 호칭이다. 저서로 곡강집(曲江集)이 전한다.
望月懷遠(망월회원): 달을 보며 멀리 있는 님을 생각하다.
海上升明月(해상승명월): 바다 위로 떠오른 이 밝은 달
天涯共此時(천애공차시): 하늘 저 끝에서 님도 보고 있겠지...
情人怨遙夜(정인원요야): 그리운 님 긴긴 밤 원망하며
竟夕起相思(경석기상사): 밤이 새도록 나만 생각할 텐데...
滅燭憐光滿(멸촉련광만): 촛불 다 하니 아름다운 달빛 가득하고
披衣覺露滋(피의각로자): 걸친 옷은 이미 이슬에 젖는구나.
不堪盈手贈(불감영수증): 손에 가득 담아 님에게 보낼 수도 없으니
還寢夢佳期(환침몽가기): 잠들어 꿈속에서나 만날 것을 기약하리...
바다 위로 밝은 달이 떠오르니,
그대는 하늘 끝에서
이 시간 나와 같이 저 달을 바라보겠지...
정이 많은 나는
긴긴 밤이 원망스러워 그리움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오.
밤이 깊어 등불을 끄니
가득한 달빛이 아름다구나.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니 밤이슬에 옷이 축축해지네.
이 아름다운 달빛을 두 손에 담아
그대에게 보낼 수가 없으니...
꿈속에서나마 그대와 만나길 간절히 바랄 뿐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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